홍준표 ‘보신정치’ 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1.15 10:52:25
  • 호수 1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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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굴도 모자랄 판에 보수 텃밭 ‘셀프 입성’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당협위원장 공모서 홍준표 대표가 보수 텃밭인 대구 북을에 신청했다. 당 외부는 물론 내부서도 ‘셀프 공모’ 논란으로 뜨겁다. 당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험지는 고수하고 꽃길만 걸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당 일각에서는 ‘수도권 포기설’까지 제기되며 패배주의에 대한 우려가 새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표의 대구행은 보수주의 대신 ‘보신주의’를 택한 것으로, 한심하고 창피하고 민망하다.” 

한국당 박민식 전 의원은 최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 대표의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공모 신청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7일 홍 대표의 공모 신청 소식이 전해진 후 당 내부에서는 그가 ‘보신정치’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구행 선택
도대체 왜?

홍 대표는 자신의 SNS에 “마지막 정치 인생을 대구서 시작하고자 한다”며 “초·중·고를 다니던 어릴 적 친구들이 있는 대구서 마지막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 대구·경북(이하 TK)을 안정시키고 동남풍을 몰고 북상해 지방선거를 꼭 이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와 대구는 정치적 접점이 거의 없다. 특히 공모를 낸 대구 북구와의 인연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홍 대표는 1996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서울 송파갑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 후 2001년 동대문을로 지역구를 옮겨 내리 3선을 했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치러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돼 PK(부산·경남)서 활동했다.

경남 창녕 출신인 홍 대표는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이사해 중·고등학교(영남중·영남고)를 대구서 보낸 것 외에는 인연이 없다. 중·고등학교도 대구 달서구에 위치해 있어 공모한 대구 북을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는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74개 지역에 대한 당협위원장 공모를 진행했다. 서류접수 마감 결과 총 211명이 지원했다. 향후 조강특위는 서류심사를 끝낸 후 신청자를 대상으로 17일까지 ‘개별 심층면접’을 실시할 예정이다. 

심층 면접 후 이르면 19일쯤 선임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대구 북을 지역에는 홍 대표 외에 3∼4명의 추가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강특위 운영기준은 ▲현역·원외 충돌지역은 현역우선 ▲지역 당선 의원 당협위원장으로 선임 ▲지방선거 출마자도 당협위원장 가능 ▲당원권 정지 현역 의원 경우 직무대행 체제로 당협 운영 ▲컷오프된 당협위원장은 해당 지역 응모 불가(타 지역 출마시 조강특위 심사) 등이다.

이에 따라 공모 신청을 한 홍 대표도 조강특위 위원들과의 심층면접을 거치게 된다. 조강특위 측은 “당 대표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며 모든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공정한 평가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홍 대표가 공모서 탈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관측한다. 한국당 소속인 조강특위가 당의 수장을 면접서 떨어뜨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꽃가마 승차
비홍계 반발

조강특위서 밝힌 평가 항목들도 홍 대표의 무난한 면접 통과를 예상케 한다. 조강특위는 최근 향후 심층면접 과정서 대상자들을 상대로 6·13 지방선거 필승 전략과 조직 화합을 위한 비전 등에 주안점을 두고 면접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홍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지방선거 필승 전략과 조직 화합 비전에 대해 조강특위가 반대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홍 대표의 대구 북을 입성은 기정사실인 셈이다.

홍 대표는 대구 북을에 대한 욕심을 몇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앞서 지난달 29일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도 홍 대표는 “(당협위원장 공모가 시작되면) 그 때 할 것”이라며 “(대구 북을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의락 의원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가야 견제가 된다”고 밝혔다. 

대구 북을은 지난 20대 총선서 민주당 홍 의원에게 의석을 뺏긴 지역이다. 최근 양명모 당협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상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홍 대표의 공모를 2020년으로 예정된 21대 총선을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원외 대표인 홍 대표가 원내 무혈입성을 위해 대구를 ‘찜’했다는 주장도 있다.

홍 대표가 원내 입성을 노릴 이유는 충분하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리더십 공고화를 위해 원내 입성이 필요하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반드시 현역 국회의원만 할 수 있도록 국회법 제104조에 규정돼있다. 

그 외 예산안, 상임위 업무 등에 제약이 따른다. 필연적으로 원외 인사는 원내에 비해 정치적 활동폭이 좁다.

자존심이 강한 지역구 의원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도 원내 입성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계파 수장으로서 정치적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지역구가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친홍(친 홍준표)계의 확장성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 원외서 머물고 있는 홍 대표의 위치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홍준표 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까’에 대한 의문이 친홍계로의 ‘줄서기’를 가로막는 요소라는 뜻이다. 여러 부분서 홍 대표의 대구행은 총선 출마를 위한 전조로 읽히기 충분하다.

당협위원장 공모 ‘무혈입성’ 예고
비홍 “사실상 수도권 포기” 쓴소리

홍 대표가 견제 대상으로 언급했으며, 현 대구 북을 현역인 민주당 홍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서 “홍의락을 견제하기 위해 온다는 말은 궁색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굳이 대구서 지역구를 맡을 이유가 있느냐”며 총선 출마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홍 의원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대구에 내려와 실패했듯이 홍 대표는 ‘홍문수’가 될 것”이라고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뒤 대구로 내려와 민주당 김부겸 당시 후보에게 패한 김 전 지사에 빗대 홍 대표를 ‘홍문수’로 표현한 것이다.

홍 대표의 공모를 두고 당내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친박(친 박근혜)계 김태흠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입장문을 통해 “홍 대표의 대구 셀프 입성에 기가 막힌다”며 “당 대표라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낙동강 전선 사수작전이 아닌 인천 상륙작전을 도모해 전세 반전을 꾀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는 “(홍 대표가) 누구라도 원하는 당의 텃밭 대구에 안주하겠다는 건 당 지지 기반 확장 포기와 다름없다”며 “이렇게 해서 인재영입이 가능하겠는가. 당의 구성원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박민식 전 의원도 같은날 기자회견서 “솔선수범해야 할 당 대표가 제 한 몸 챙기겠다고 선언한 셈”이라며 “대장부가 아닌 졸장부의 약아 빠진 꼼수”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말 당무감사 결과 부산 북·강서갑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했다.


총선 불출마
그렇다면 왜?

앞서 홍 대표는 당무감사 결과를 근거로 현역 국회의원 4명을 포함해 전체 30%에 달하는 당협위원장들의 직위를 박탈한 바 있다. 당시 직위를 잃은 당협위원장들에게 내세웠던 명분이 바로 ‘인적쇄신’이었다.

홍 대표는 자신의 SNS에 “탄핵과 분당과정서 급조된 당협위원장이 70여명에 이른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옥석을 가리고 정비하지 않으면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당협위원장 정비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체의 정무판단 없이 계량화된 수치로 엄격히 블라인드로 결정했다”며 “조속히 조직혁신을 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지방선거 준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랬던 홍 대표가 한국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대구행을 택하자 당내에 잠재돼 있던 불만이 봇물처럼 표출되는 양상이다.

당 외부서도 홍 대표의 대구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당 경남도당(위원장 안혜린)은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홍 대표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신청은 차기 총선 당선 가능성만 염두에 둔 비겁한 결정”이라며 “한마디로 정치 생명 연장만 노린 노추(老醜)”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당은 홍 대표에게 “앞장서서 험지로 뛰어들라”고 제안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서 “(홍 대표의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신청은)수도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홍 대표가 의원을 해보지 않은 대구에 당협위원장을 신청한 것은 수도권이 가망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심층면접 예정됐지만…막을 자 없다
대구시당 두 팔 벌려 환영…줄서기?

홍 대표는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대구 지역 ‘총선 불출마’를 선언, 대구행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최근 대구 엑스코서 열린 대구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그는 “(당협위원장 공모는)대구를 근거지로 해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지 대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라며 “다음 총선 전에 그 지역구(대구 북을)는 훌륭한 대구 인재를 모셔다 놓고 출마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홍 대표의 불출마 선언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은 홍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한 자리서 “홍 대표가 (총선에)출마하고 안 하고는 대구 시민들의 손에 달려있다”며 “당 대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홍 사무총장은 복당파 중 대표적인 친홍계 인사로 분류된다.
 

한국당 소속 대구 북구 지역 광역·기초의원들도 홍 대표의 대구행 비판 여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대구시의원 5명을 비롯해 북구의원 15명 등 한국당 소속 광역·기초의원 20명은 대구시당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대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고 지역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의 부재로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지역 민심을 중앙에 제대로 반영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한국당 혁신과 조직 쇄신을 위해 당협위원장 재선정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서 홍 대표가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에 거론되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당 김상훈 대구시당위원장은 “현재 한국당에 대구를 대표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정치지도자가 부재하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이라며 “시당위원장의 입장서 당 대표가 여기(대구)에 기반을 두고 지방선거를 전력 진두지휘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대표는 사심이 없는 정치인”이라며 “당 대표가 지방선거 앞두고 한국당 우세지역 안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대구시당 및 광역·기초의원들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지역정가 일각에선 ‘홍준표 체제 줄서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발적인 반응이 아닌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임명장을 받으려는 속내가 이면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해당 입장 표명이 홍 대표의 대구시당 신년교례회 참석 바로 직전에 나왔다는 점도 줄서기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TK는 홍 대표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공을 들여온 지역이다. 지난해 3월 대구 서문시장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대선 기간 중 TK를 자주 찾아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한 바 있다. 새해 신년인사회 첫 방문지도 대구였다. 

이 자리서 홍 대표는 사실상의 ‘지방선거 출정식’을 치렀다.

의문 투성
결국 대선?

이는 최근 대구 민심이 흔들리고 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CBS대구방송>이 <영남일보>와 함께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대구 성인남녀 8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4포인트) 결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은 대구시장 후보 적합도서 41.5%를 기록해 17.5%를 기록한 2위 권영진 현 대구시장을 압도적으로 따돌렸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즉 홍 대표가 ‘TK 수성전’을 위해 대구행을 택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유한국당 미래는?
도로 새누리당 되나

탄핵 정국 당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떠났던 바른정당 의원들이 속속 한국당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바른정당 김세연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 9일,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며 탈당했다.

김 의원은 탈당한 직후 곧바로 입장문을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그간 지역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 온 당원 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한국당으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1일 청주서 열린 충북도당 신년인사회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차를 타고 (한국당) 충북도당으로 내려오면서 남 지사와 거의 4년 만에 처음으로 통화했다”며 “‘언제 (한국당으로) 오나’라고 물으니 남 지사가 ‘주말경에 갑니다’라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바른정당 의원 이탈
속속 친정으로 복귀

그러면서 홍 대표는 “또 한 분의 광역단체장도 올 준비를 하고 있다”며 “그분들은 참 정치감각이 빠르다. 당이 안 될 것 같으면 절대 오지 않는데 될 것 같으니까 모여드는 것”이라고 말해 추가 복당 인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한국당 복당 분위기에 바른정당 지도부는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최근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서 “개혁보수의 길을 끝까지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아무런 희망과 비전도 없는 한국당으로 돌아간 결정”이라며 “창당을 했던 동지이자 당 대표로서 매우 유감스럽고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탈당이 예상됐던 바른정당 이학재 의원과 박인숙 최고위원은 잔류했다. 이 의원은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서 “바른정당에 남아 통합신당 출범에 힘을 보태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박인숙 최고위원도 “이 의원의 선언이 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썰물이 밀물로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며 사실상 잔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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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