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수도 탈환’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1.02 10:36:12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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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된 홍정욱 카드 ‘어렵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대여(對與) 승리의 바로미터는 역시나 ‘서울시 탈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마지막으로 대가 끊긴 서울시를 기필코 수복하겠다는 각오다. 홍준표 체제는 승부수로 ‘홍정욱 카드’를 내걸었다. 그러나 당사자가 갑작스레 불출마를 선언,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과연 한국당은 어떤 후보를 내세울 것인가.
 

한국당은 지방선거 승리의 첫 단추이자 핵심인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당 지도부는 경선 가능성이 큰 대구시장, 경북도지사와 현역 단체장의 경쟁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 인천시장(유정복 시장), 울산시장(김기현 시장)을 제외한 전 지역에 인물을 영입해 단수 전략 공천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작된 전쟁
인재 영입전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확정 받은 홍준표 대표가 당을 지방선거 체제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홍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를 출범시키면서 본격적인 지방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홍 대표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서 “조강특위를 통한 조직혁신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라며 “이제는 정책혁신을 통해 국민들이 한국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 당무감사 결과 확정으로 62인의 당협위원장직 최종 박탈 등 체제를 정비한 한국당은 2기 혁신위원회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보수정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공들인 지방선거서 최종 성적표 역할을 할 곳은 서울시장 자리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서울시를 반드시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비록 서울은 홍 대표가 앞서 “지방선거서 6개 광역단체장(부산·인천·대구·울산·경북·경남)을 지켜내지 못하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친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의 상징성과 서울시를 민주당에 내준 과정, 그리고 서울시를 민주당에 내준 후 격노했던 홍 대표의 과거 등을 고려한다면 결코 여당에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다.

서울은 한국당 입장에선 상당한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당 소속이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서울은 보수정당의 새로운 성지로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오 전 시장은 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해 8월24일 최종 투표율이 25.7%에 그치면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에 미달했다. 

결국 오 전 시장은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이틀 뒤인 8월26일 자진해 자리서 내려와야만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한국당)서 오 전 시장의 주민투표 강행을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앞서 오 전 시장이 주민투표 강행으로 서울시장직을 내려놨을 때 격노했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홍 대표였다. 한나라당 대표였던 홍 대표는 오 전 시장이 사퇴한날 그를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고 맹비난했다.
 


홍 대표는 당시 기자들에게 “오세훈은 이벤트로 출발해 이벤트로 끝났다. 오세훈은 오늘로 끝”이라며 “이벤트 정치에만 매달리는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 정치인은 한나라당에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격앙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던 바 있다.

서울지역 당협위원장들과의 조찬간담회서도 홍 대표는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홍 대표는 간담회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어젯밤 10시쯤 오 (전)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냈다.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어떻게 개인의 명예만 중요하냐. 오 (전) 시장은 당이나 국가를 도외시하고 자기 모양만 중요시한다. 당이 어떻게 되든, 10월 재보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 식으로 하려면 혼자 정치하지, 왜 조직으로 하는가”라고 격노했다고 한다. 

당시 홍 대표 측은 오 전 시장이 당의 처지를 고려해 사퇴 시기를 늦춰주길 희망했으나 오 전 시장이 조기 사퇴를 강행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내려온 오
차지한 박

홍 대표의 격노는 비단 개인 간의 감정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명박정권의 청와대는 오 전 시장의 사퇴가 가져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재보궐 선거서 서울시장 자리를 민주당에 내줄 경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의 복심으로 통했던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자신의 SNS에 오 전 시장을 “남 생각 안 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냉혈한”이라며 맹비난했다.

결국 재보궐 선거가 열렸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원순 변호사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뒤 탄력을 받아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선서 승리해 범야권 단일후보가 됐고 최종적으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박 시장은 재선에 성공해 현재 3선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당은 당명이 두 차례(한나라당→새누리당→한국당) 바뀌는 와중에도 서울시를 수복하지 못하고 있다.

홍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당 내부에서는 홍 대표가 직접 영입 후보를 챙기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후보자 공천 구상을 상당 부분 가다듬었으며 유력 후보군까지 압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 가장 유력한 주자가 바로 홍정욱 헤럴드 회장이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 회장에게 당 지도부는 수차례 출마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회장은 ‘젊은’ 이미지와 계파에 속하지 않은 점 등 현 한국당 지도부서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본선 경쟁력이 없는 후보를 앞세워 경선을 치르기보다 젊고 능력 있는 이미지의 정치인을 영입해 미리 표심을 흔드는 것이 낫다는 게 한국당 지도부의 판단이었다.


대끊긴 서울시장 수복 강력 의지
보수 외면한 ‘독수리’ 어쩌나…

한국당도 홍 회장에게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타진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27일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한 홍문표 사무총장은 “(홍 회장과)대화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언론에 보도된 홍 회장 영입설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실제 영입으로 이어졌는지 여부에 대해선 “결과에 대해 지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다”며 말을 아꼈다. 이 때문에 홍 회장이 한국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홍 회장 출마설은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 28일 그는 자신의 SNS에 “최근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한 언론보도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국민과 국가를 섬기는 공직은 가장 영예로운 봉사”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 공직의 직분을 다하기에 내 역량과 지혜가 여전히 모자란다. 당장의 부름에 꾸밈으로 응하기보다는 지금의 내 자리서 세상을 밝히고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불출마 의사를 시사했다.


홍 회장은 한국당의 두 번째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앞서 홍 회장은 19대 총선에도 불출마한 바 있다. 

당시 홍 회장은 “18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 (19대 총선 불출마가)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고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며 “18대 국회의 일원으로 책임감을 느껴왔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할 때도 책임감을 느꼈다”고 언급했던 바 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정계 은퇴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많이 부족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떠난다고 봐야 한다. 뜻을 성실히 하는 것에 있어 생각에 간사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게 됐다. 홍 회장이 한국당의 ‘올드’한 이미지를 만회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 초 대선 패배 이후 당이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율을 우려하며 보수 진영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제기했을 때 홍 회장이 20∼40세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인물로 영입 대상에 오른 바 있다.

홍정욱 영입
해프닝 그쳐

민주당의 경계심도 높았다. 한국당 내에서 거론되는 서울시장 후보군 중 홍 회장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라고 봤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홍 회장이 가장 두려운 존재”라며 전제한 뒤 “젊으면서도 엘리트적인 면이 과거 대권주자로까지 분류됐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연상케 한다. 만약 한국당서 ‘젊은’ 홍정욱 대 ‘올드’한 박원순 프레임으로 끌고 간다면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굳이 박원순 시장이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당 내 서울시장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 중 홍 회장만큼 신선한 인물이 안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치적 성향 역시 중도보수로 확장성이 보장된 인물이었다. 정치권서 멀어져 있던 시간이 길어 친박(친 박근혜)·비박(비 박근혜) 등 계파에서도 자유로웠다. 본인도 정치권에 몸담고 있던 시절 계파주의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왔다. 

친박 대 친이의 대결이 한창이던 시절 홍 회장은 복수의 인터뷰서 “정치조직서 계파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경쟁을 통해서 발전해야지 정쟁으로가면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라며 “당과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서 당선됐다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한 그는 “무리와 함께 가는 철새보다 혼자 가는 독수리가 더 멋있다”는 말로 계파에 치우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현역 시절 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한국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한국당은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자칫 한국당 기피 현상으로 확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영입 후보군이 잇따라 러브콜에 고개를 내젓고 있기 때문이다. 

홍 회장에 앞서 한국당 부산시장 후보로 유력했던 장제국 동서대 총장과 경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잇따라 불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민주에 호재? 아직 몰라
낮은 시 지지율 변수로

한국당은 새로운 영입 대상을 찾아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2월 3주차 주간동향에 따르면 한국당은 서울서 2주차 대비 2.2%포인트 하락한 16.3%의 정당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 신예 입장에서는 한국당의 러브콜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한국당 내에서의 푸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대로 서울시를 포기할 수 없는 게 한국당의 딜레마다. 홍 회장의 이탈로 현재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군은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와 김용태 의원으로 좁혀졌다. 후보군의 양과 질에서 추가 영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앞서 한국당 내에서는 황 전 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비록 홍 대표가 지난해 9월 “다시 탄핵 선거가 될 수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기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하나 예의주시할 점은 홍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직접 나서는 그림이다. 본인의 출마 의사와 관계없이 정치권에서는 홍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을 높게 점쳐왔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지난해 11월 홍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서 그는 “민병두-홍준표 대결이든, 민병두-안철수 대결이든, 민병두-홍준표-안철수 3자 대결이든 상관없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인물난 고조
홍 대표 출마?

홍 대표는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추가 인재 영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난 홍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는 홍 회장 외에도 많이 있다”면서도 “인재난이 있는 건 당연하다. 야당에 들어오면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출마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하겠다. 새해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병수 VS 이종혁’ 부산 매치 막전막후

장제국 동서대 총장이 내년 지방선거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난달 26일 장 총장은 자신의 SNS에 “부족한 나를 평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라며 “오늘을 기점으로 저의 부산시장 출마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상 회자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장 총장 영입을 위해 다각도로 공을 들여왔다. 최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홍 대표는 “(서병수) 현 시장이 인기가 없으면 공천에도 붙이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신인과 현역 단체장 간 경선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장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온 바 있다. 

실제 최근 홍 대표는 장 총장을 만나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제국 불출마 선언
집안싸움 2파전 양상

그러나 장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으로 홍 대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더불어 한국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이 서병수 부산시장 대 한국당 이종혁 최고위원 간 대결로 좁혀지게 됐다. 

서 시장은 그간 재선의지를 꾸준히 밝혀왔지만, 홍 대표와의 갈등으로 한때 무소속 출마가 예상됐었다. 그러나 이번 장 총장 불출마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때 홍 대표와 설전을 주고받기도 한 서 시장은 지난달 22일 홍 대표의 대법원 무죄판결에 대해 “홍 대표와 이완구 전 총리의 대법원 무죄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홍 대표를 중심으로 보수가 대동단결하고 결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하는 등 그간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서 시장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존재한다. 대결 상대로 홍 대표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종혁 최고위원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홍 대표 측근인사로 분류되는 이 최고위원은 지역 국회의원 출신으로 최근 부산에 사무실을 내고 산악회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는 등 민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뒤 오는 4일 부산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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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