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83년생, 내년이면 서른 중반에 접어드는 젊은 작가 배윤환은 동년배들이 미술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을 때에도 회화에 매진했다. 25m 캔버스 두 개를 연결해 만든 높이 2m, 폭 50m의 작품 속에는 의미 없는 이야기부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정치기사, 재미있는 우화까지 녹아있다. 제작 기간과 전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완전히 펼치지 못한 그 작품은 앞으로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한 배윤환의 행보와 닮아있다.
갤러리바톤은 오는 20일부터 작가 배윤환의 개인전 ‘숨 쉬는 섬’ 전을 선보인다. 현대미술 매체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드로잉에 충실히 매진하며 회화의 의미와 가능성을 확장해온 배윤환이 대규모 신작 회화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자동기술법에 기반을 두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그려나간 초대형 작품 ‘숨 쉬는 섬’을 주목할만하다.
자유로운 섬
배윤환의 캔버스는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살아 숨 쉬는 생물과 비슷하다. 상상과 욕망 그리고 화가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에 담았다. 배윤환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아 캔버스에 얹어두고, 캔버스는 그것을 완전히 흡수해 새로운 형상을 창조한다.
머릿속에 무작위로 떠오른 이미지를 선별해 손닿는 대로 채워가며 규정된 캔버스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자신을 제약하는 모든 것을 화면에 흩뿌린 그의 작품은 결국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숨 쉬는 섬으로 다시 태어난다.
회화의 의미와 가능성에 몰두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고 흡수
그의 머릿속 사고체계가 오롯이 담긴 대형 페인팅 두 점을 포함한 신작들은 오일 파스텔, 아크릴 등 서로 다른 재료와 화면으로 구성된다. 작품의 이미지와 색감은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돼 형상의 절정을 담는다.
배윤환은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책 <나무 위의 남작>을 읽고 주인공 코지모와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무 위의 남작>은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칼비노의 대표작이다. 작품의 주인공 코지모는 12살이 되던 해 나무에 올라가 평생 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간 표면적인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다. 원치 않는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어 나무 위로 몸을 피한 것. 하지만 이는 직접적인 계기일 뿐 코지모의 마음 속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권위적이고 시대에 뒤쳐진 아버지로 상징되는 귀족사회에 대한 환멸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가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응시한다. 그에게 나무는 회피하고 은둔하는 장소를 넘어 한걸음 떨어져 세상을 관망하게 하는 매개체다.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 나무
세상을 관망하는 매개체 ‘섬’
코지모의 나무는 배윤환의 섬과 유사하게 작용한다. 배윤환의 섬은 작가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캔버스 수십 개가 놓인 작업실의 모습이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공간이다. 또 더 나아가 그의 삶이기도 하다. 그는 섬의 의미를 정의하고 섬에 관한 모든 것을 상상해 작품에 담는다.
이번 전시서 배윤환은 엉뚱한 상상을 줄지어 이어나가는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작업 과정서 자신을 옭아매는 걱정과 우려를 최대한 배제한다. 켜켜이 쌓아둔 감정의 꾸러미를 비워내고 덜어내는 과정서 현재와 과거의 감정이 교차한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모든 요소를 캔버스 위에 이어붙이고 떨어뜨리길 반복한다.
모든 상상을 담아
작가는 “각각의 캔버스는 생각을 흡수하는 섬이자 그것을 태우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배 한 척과 같다”며 “섬이 숨 쉬는 동안 계속해서 생물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작가 자신조차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에 자유로움을 담았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복합적인 서사 구조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은 작품을 대거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시는 내년 1월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배윤환은?]
1983년 출생
▲학력
경원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2011)
청주 서원대학교 미술학과 졸업(2008)
▲개인전
‘숨 쉬는 섬’ 갤러리바톤, 서울(2017)
‘서식지’ 두산갤러리, 서울(2017)
‘능구이 같이 들개 같이’ 스페이스 오뉴월, 서울(2015)
‘기름 붙일 곳을 찾는 사나이’ 스페이스몸 미술관, 청주(2014)
‘Was it a Cat i Saw ?’ 한국문화 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서울(2014)
‘Black Gymnasium’ TV12, 서울(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