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추적> ‘건국대 스캔들’ 학교 망친 비선 실세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2.11 10:46:28
  • 호수 1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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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최순실’ 그녀의 남자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 최순실 때문에 무너졌다. 건국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학교 관계자들은 김경희 전 이사장의 측근들, 이른바 ‘여왕의 남자들’이 학교를 망쳤다고 입 모았다. 그들은 어떻게 건국대에 손을 뻗었을까.

지난 10년 사이 건국대는 각종 사건·사고로 사학 비리의 온상이 됐다. 이 모든 일은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 재임 기간에 일어났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법인 평이사로 취임하면서 학교 경영에 참여했다.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동생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이사장 업고
학내 쥐락펴락

잘못된 첫 단추의 시작이었다. 그가 국내 11위 대학의 수장이 되자, 김 전 이사장의 측근들은 하루아침에 ‘여왕의 남자’로 신분이 상승했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은 “김 전 이사장의 측근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며 “바로 그들이 건국대를 비리 사학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설립자 유창석 선생의 가족 중 한 명은 “대학 이사장은 최고의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이사장과 휘하는 학교의 위상까지 추락시켰다”며 “그들 중 김 전 이사장을 등에 업고 학교 이권에 개입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특채의 이면]


최근 김 전 이사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기업인 윤모씨의 사위가 합격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고도 건대 교수에 채용된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포착됐다. 현재 재직 중인 A교수의 교수임용지원서에는 윤씨의 딸이 ‘아내(처)’로 표기돼있다.

그는 2003년 9월 건국대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했지만 1차 평가서 8명 지원자 중 6등에 그쳤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건국대는 특별채용 과정을 거쳐 A교수를 임용했다.
 

복수의 대학 관계자들은 “공개채용 1차 전형에서 탈락한 지원자가 곧바로 특별채용으로 임용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A교수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으며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A교수의 채용 과정서 석연찮은 점이 드러나자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기에 윤씨의 사위가 건국대 교수로 특채된 것일까.

그 관계는 김 전 이사장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학교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던 장모씨의 투서에 일부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일요시사>가 입수한 투서 중 일부다.

‘남편이 김 전 이사장을 알기 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게 변화가 왔고 김 전 이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김경희에게는 10년이 넘도록 사귀어 온 윤 회장(윤씨)이 있었으니, 그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윤씨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윤씨는) 김경희와 10년 이상 알고 지낸 부부나 다름이 없는 관계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측근들 각종 이권에 개입…숱한 의혹도
현 이사장 난감한 표정으로 ‘묵묵부답’


장씨는 윤씨의 지인이었던 남편이 김 전 이사장을 소개받았고 함께 골프를 치면서 내연관계로 발전했다고 의심했다. 이 과정서 장씨는 남편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09년 7월 대여금반환 소송을 벌였다. 소송 과정서 윤씨는 김 전 이사장에게 수 년 동안 10억원에 달하는 선물도 줬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 1995년 5월부터 2000년까지 명절이나 김 전 이사장이 여행을 갈 때면 수백만원씩 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이사장 딸이자 현 이사장인 유자은 이사장이 결혼할 당시 윤씨가 4000만원이나 준 것도 재판 과정서 밝혀졌다. 실제로 윤씨의 운전기사는 “김 전 이사장 집에 돈과 선물을 수도 없이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학교 관계자는 “A 교수의 채용 배경에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그것 말고는 현 사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수상한 비호

김진규 전 총장도 김 전 이사장의 측근으로 꼽혔다. 김 전 총장은 재임 시절 저지른 비리가 적발돼 현재 사기 및 횡령 혐의로 2014년 1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건설사 대표 박씨에게 400억원에 달하는 공학관 건설 공사를 수주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16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또 건국대와 대한임상정도관리협회서 19억여원을 횡령했다. 이외에도 카지노서 수십억대의 빚을 지는 등 도박 문제도 안고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김 전 총장)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회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무분별하게 주식투자를 하거나 카지노 도박에 몰두하는 등 장기간 무절제한 생활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장은 재임기간 동안 다섯 개에 달하는 총장직과 학교법인 산하 각 사업체에 겸직하며 각종 공사 등에 특정업체로 수의계약을 지시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 전 총장이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이사장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거래한 기업 회장
사위 교수로 특별채용

김 전 총장은 비리로 인해 이사회서 해임이 의결됐지만 김 전 이사장은 2012년 5월 그가 사표를 제출하자 징계절차 없이 면직으로 처리했다. 


학교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은 김 전 총장을 ‘공인’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김 전 총장은 자신이 김 전 이사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내세워 건설업체 등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 전 총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건설업체 대표 박모씨에게 “(나는) 건국대학교 이사장 김경희와 OO 관계다. 건국대 관련 업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인 자리서 두 사람이 ‘싸움’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2010년 7월경 예술의전당서 열린 대학인들의 행사에서 김 전 총장은 술에 취한 채 무대로 올라가 “김경희 어디 있어! 나와!”라고 주정을 부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건국대의 한 교수는 “두 사람이 싸웠다”고 말했다.

여전한 영향력

건국대 내에서는 장대수 전 건국대 노조위원장이 사실상 ‘학교 주인’이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대학 비선인 사실상 ‘최순실’ 역할을 했다는 것. 장 전 위원장은 김 전 이사장을 만든 장본인이다. 


김 전 이사장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김 전 이사장이 이사이던 시절 장 전 위원장에게 ‘나 좀 이사장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장이 건국대 수장이 된 이후 장 전 위원장은 학교를 통해 사익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가 체육부장이던 시절 건국대 이천스포츠 과학 타운의 유휴토지를 임대해 부대수입을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체육협회로부터 받은 경기력 향상 지원금이나 각종 지원금도 유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학교에 보고되지 않고 쓴 돈이 1억7900만원에 달했다.

장 전 위원장의 문제를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다. 여왕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2007년 장 전 위원장은 건국대 선수를 프로구단으로 진출한 대가로 3억원을 챙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3억원 중 1800만원은 학교 발전 기금으로 내고 나머지 2억8200만원을 가로챘다. 장 전 위원장은 당시 이 때문에 70일간 형을 살았다.

2011년 장 전 위원장은 학교를 그만뒀음에도 불구하고, 건국대 병원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케이플라워 대표인데 이 업체는 당시 건국대 병원 화환류 거래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장 전 위원장은 여전히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장 전 위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한 때 그 사람에게 충성하며 ‘이렇게 하면 학교가 망한다’고 충고도 했다. 그런데 내 말 안 듣다가 학교를 결국 말아먹었다”며 “김 전 이사장을 만든 게 나다. 개인 욕심에 눈이 멀어 딸까지 이사장으로 앉힌 거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사고 친 것은 있다. 반대파들한테 모함 당한 거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무슨 관계?

설립자 측 가족들이 김 전 이사장의 딸 유 이사장에게 “김진규나 장대수 같은 사람 내칠 수 있느냐”고 묻자 유 이사장은 당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아무 말도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장직을 박탈당한 김 전 이사장은 학교 경영 경험이나 능력이 전무하고 가정 주부였던 딸을 불법적으로 세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전히 김 전 이사장이 배후서 학교 경영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경희 측 입장은?

김 전 이사장은 묵묵부답이다. 입장이나 반론, 해명 등을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학교 측 관계자는 “물어봐야 하는데 답해줄 사람이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문자와 메모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건국대 측도 공식적으로 이런 의혹들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한 관계자는 “14년 전 이야기여서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 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김 전 이사장의 문제와 의혹들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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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