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59) 진군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1.20 10:49:00
  • 호수 1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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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을 잡아라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기어코 유신의 소리가 올라갔다. 그제야 신라군들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며 활을 내렸다.

“성충 장군, 제 수하의 결례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유신이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건네자 성충이 계백에게 눈짓을 보냈다.

의미를 헤아린 계백이 앞으로 나섰다.

“소장 계백이오. 군인으로서 귀 병사의 무례를 용서할 수 없었소.”


말을 마친 계백이 유신을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이어 성충과 함께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장군, 어찌할까요?”

백제 진영으로 돌아오자 계백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다 성충을 주시했다.

“일단 말미를 주겠다고 했으니 동태를 살펴보세.”

“과연 저들이 고구려에서 철수할까요?”

동태를 살피다


“당연히 그리할 일이야.”

“소장은 이해되지…….”

“우리가 신라로 하여금 고구려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명분을 주었네. 신라는 우리의 침공을 사유로 퇴각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게지.”

그 말을 되새기던 계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는 고구려에게 면을 세운 거구요.”

“그러이. 그리고 자네 저 김유신이란 자를 염두에 두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마도 언젠가는 우리와 특히 자네와 한번 숙명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네.”

“그야 지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그저 상견례로 간주해야지. 어차피 피차간에 전쟁을 치룰 명분이 없으니 말이야.”

계백이 방금 전 일어났던 상황을 되새기며 김유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나라의 이세적이 이끄는 병사들이 요수(난하로 중국 하북성 북동부를 흐르는 강)를 건너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연개소문이 즉각 고정의를 군사로 고연수와 고혜진을 장군으로 하여 오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안시성으로 가도록 조처했다.


고구려 군사가 안시성으로 가는 사이 사이 당나라 군사들의 이동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당의 선발대인 영주도독 장검이 호병(胡兵, 북방 오랑캐)을 거느리고 요수를 건너 건안성으로 진격하였으나 사전에 연개소문의 지시를 받은 건안성은 수성에 오로지하며 그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었다.

또한 수군을 거느린 장량은 동래(東萊, 발해 동쪽 지역)로부터 바다를 건너서는 후속부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육군을 이끌고 있는 이세적과 도종은 신성에 이르자 견고한 수성 체계를 갖추고 항거하는 성을 압박해서 고립시켜 놓고 곧바로 개모성 이어 백암성으로 진군했다.

이어 당나라군이 연개소문의 지시로 이미 소개된 개모성과 백암성을 거치고 요동성에 이르자 난관에 봉착했다.

당군이 지나친 신성은 물론 이미 소개시켰었던 개모성과 백암성의 군사들이 요동성으로 합류했던 탓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국내성(만주 길림성)에 있던 병사들까지 합세하자 당군의 여러 차례에 걸친 공략이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이세적은 당태종이 이끄는 주력군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 시점 당태종은 요택(遼澤, 요하 강가의 소택지로 요하는 중국 동북 지방 남부 평원을 관류하는 강)에 이르렀으나 이백여 리나 진흙으로 덮여 있어 사람과 말이 통과할 수 없었다.

결국 그곳에 흙을 덮어 다리를 만든 연후 그곳을 지나 요동성에 이르렀다. 

요동성에 도착한 당태종은 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북소리와 고함으로 심리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당의 치열한 공격에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응하던 고구려 군사들이 사전에 취해진 연개소문의 지시에 따라 서서히 안시성으로 이동했다.

뒤이어 요동성을 점령한 당태종은 그곳을 요주(遼州)로 삼았다. 

이세적·도종… 앞마당까지 전진
승기 잡은 고구려…도망친 당나라 

고연수의 지원군이 안시성 가까이 이르자 연개소문의 지시대로 안시성에 들르지 않고 내처 앞으로 나아갔다.

안시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멈추어 진을 치고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당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기세등등하게 진군해오던 당태종이 일순간 진군을 멈추고는 주변에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 고구려 군사들의 진용을 살피며 싸움을 자제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진지 앞에서 당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살피던 고연수가 당나라 군사들이 자신들의 위용에 머뭇거리는 것이라 판단하고 고혜진에게 다가섰다.

“당나라 오랑캐들이 우리의 위용을 바라보고 겁을 먹은 듯 보이는데, 이참에 우리도 공을 세워봅시다.”

“공이라.”

공을 세워보자는 말에 고혜진 역시 귀가 솔깃해지는 모양으로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고정의가 가볍게 혀를 찼다.

“군사께서 왜 그러시오?”

“이러니 막리지 대감이 나를 보낸 거 아니오?”

“무슨 의미요?”

“두 사람 다 경거망동 마시오. 명색이 당나라 태종이 진두지휘하는 군사들이오.”

“우리를 어떻게 보기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요!”

고정의가 목소리를 높이자 고연수가 핏대를 세웠다.

“어떤 식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전력 역시 세심하게 살피고 임해야 할 일 아니오.”

고정의가 다소 부드럽게 말투를 바꾸자 고연수가 고혜진을 바라보며 크게 헛기침했다. 

“당태종 역시 인물이오. 단지 당나라의 왕이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걸 왜 모르시오. 그 사람이 지금 당나라의 주력군을 모두 데리고 왔으니 함부로 대적할 수 없소. 그러니 우리는 군사를 정돈하여 싸우지 않고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버티면서 기습병을 나누어 보내 당나라 군사들의 군량 길을 끊는 것이 옳소. 양식이 떨어지면 싸우려 해도 할 수 없고 돌아가려 해도 길이 없으니 그때 공격하면 우리는 백전백승할거요. 그러니 잠시 참았다 그때 공을 세우도록 하시오.” 

고정의의 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어느 순간 고연수가 퉁명스럽게 그나마 답을 하고 자신의 군막으로 가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혜진 역시 고연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적의 계략

다음날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어지러운 기척에 고정의가 눈을 떴다.

급히 군막에서 나오자 고연수와 고혜진이 대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진군을 만류하나 두 사람은 들은 척 만 척하며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순간 고구려군을 맞기라도 하듯 당나라 군사들이 내처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고정의가 두 사람을 자제시키려던 행동을 멈추고 당군을 주시했다.

당나라 군사 중에 일부만, 기병들이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적의 계략임을 눈치 챈 고정의가 애써 진군을 만류했으나 오히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고구려 군사들이 속도를 더하며 기세 좋게 당나라 군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양군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자 달려 나오던 당나라 군사들이 전투하는 시늉만 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본진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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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