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선정> 금주의 국감스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30 10:45:42
  • 호수 1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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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시작됐다. 추석 연휴를 뒤로 한 국회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 국감을 진행되며 16개 상임위원회(겸임 상임위 포함)서 701개 기관을 상대로 치러진다. 
 

이번 국감은 큰 줄기서 ‘적폐청산’ 대 ‘무능심판’의 대결 구도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이명박근혜정권 때 행해졌던 각종 비리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감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개혁과 적폐청산을 화두로 꺼내며 여당을 지원사격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의 지난 5개월간 무능을 심판하는 이른바 무심 국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5대 신(新) 적폐를 파헤쳐 국민들이 정부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강대강 대립에 국회 일각에선 파행으로 인한 ‘부실 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정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송곳 같은 문제제기로 눈길을 끈 의원들이 있다. <일요시사>가 금주의 국감스타를 선정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세월호 후 현장근무 승진 단 4명”

세월호사고 이후 해양경찰청 총경 승진자 42명 가운데 함정 근무 등 현장 근무자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4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 이후 현재까지의 총경 승진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승진자 42명 가운데 지방청 근무자는 10명뿐이었다. 이 중 함정 근무 직원은 단 4명에 불과했다.

세월호사고 발생 직후인 2014년 총경 승진자 3명 모두가 본청서 배출됐고, 2015년에는 6명중 4명, 2016년 10명 중 9명, 2017년 23명 중 16명이 각각 총경승진 당시 본청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 정원 총 9960명 가운데 본청 정원은 4.5%에 불과한 449명임을 감안할 때 본청의 승진인사 독점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해경의 주요 임무는 해양주권 수호, 해양재난 안전관리, 해양교통질서 확립, 해양범죄 수사, 해양오염 예방·방제다. 해양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은 해양경찰서장의 직책을 맡는 고위간부로서 현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필수적인 자리다. 

하지만 현장 근무자가 아닌 본청의 행정근무자가 고위직 승진을 독차지 하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승진자들이 과거 함정근무 경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본청 근무자 위주의 승진인사가 계속될 경우 본청서 근무해야만 승진할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된다.

총경 이상 해양경찰공무원은 해양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해양수산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에 인사 개선을 위해서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위 의원은 “지난 잘못에도 해양경찰청이 부활한 것은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국민안전을 위해 더욱 매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양사고 예방과 대처에 능력을 갖춘 직원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인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무위원회] 김성원 의원(자유한국당)
“저축은행…사실상 대부업체”

일부 저축은행들이 대출금리가 18∼27%에 이르는 고금리 가계신용대출에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대부업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예금보험공사의 2017년 2분기 저축은행 통계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총자산 기준 상위 10개 저축은행 가운데 절반이 총대출 대비 가계신용대출 비중이 40%를 넘었다.

특히 웰컴저축은행(63.0%), OK저축은행(53.2%), JT친애저축은행(51.7%)은 대출의 절반 이상이 가계신용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조사대상인 79개 전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평균 비중은 12%”라며 “업계 상위 저축은행일수록 고금리 신용대출에 의존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상위 10개사의 가계신용대출 평균금리는 24.4%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JT친애저축은행(22.61%)만 51억원의 당기순손실(2017년 2분기)을 기록했고 다른 저축은행은 모두 순이익을 기록했다.

김 의원은 “한때 서민금융기관이라고 불리던 저축은행이 이제는 대부업과 같은 사업방식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며 “저축은행의 평균 수신금리는 2% 내외인데 20%가 훌쩍 넘는 예대차로 가계신용대출에만 몰두한다면 ‘저축은행’이 아니라 ‘대부은행’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저축은행이 고금리 가계신용대출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제1금융권과 대부업계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이나 가계부채 증가문제와 중금리 대출 취급요구, 금리정책 변화 등 앞으로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며 “저축은행들은 이자놀이에만 급급하지 말고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한 치밀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금융당국도 금융업권간 경쟁이 시장에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위원회] 최경환 의원(국민의당)
“장애인콜택시 안전기준 미달”

서울시가 운영 중인 장애인 콜택시 437대 전부가 충돌 시 휠체어가 넘어지는 등 국제 안전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달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은 “장애인 콜택시시험평가서 휠체어 안전벨트 고정 장치가 ‘부적정 판정’이 내려졌다”며 서울시에 리콜 조치를 촉구했다.


최 의원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서 실시된 휠체어 탑승객 안전장치 시험평가 결과 차량 충돌 시 휠체어 이동량 기준 초과, 차량 내 충돌, 휠체어가 넘어지는 등 휠체어 탑승자의 안전에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설공단의 장애인 콜택시는 그랜드 카니발과 그랜드 스타렉스 등을 임의개조한 차량이다. 현재 437대가 운행 중이며 하루 평균 탑승 인원은 3654명이다.

하지만 교통안전공단 실제 차량 시험평가에선 휠체어 이동량 200㎜ 초과, 차량 내 격벽 충돌 등이 발생했으며 후방 휠체어고정 장치가 풀리거나 바닥이 파손돼 국제 표준화 기구(ISO) 기준에 부적합했다. 

휠체어 단품 시험평가서도 휠체어 이동량이 200㎜를 초과했고 휠체어가 넘어져 유럽 기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재 서울시엔 장애인 콜택시 선정 때 차량 실내 안전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 기준이 없는 상태다.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차량 개조 시 연료장치, 전기·전자장치, 차체 및 차대 등에 대한 안전기준 평가가 있어야 하지만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는 게 최 의원의 지적이다.

여기에 장애인 콜택시 운영 기관인 서울시설공단이 ‘부적정’ 사실을 파악하고도 한 달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부적정 사실이 지난달 21일 열린 교통안전공단과의 ‘제6차 특별교통수단 등 휠체어 이용자 차 실내 안전장치 기준검토 의견수렴 협의체’에서 제기됐음에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콜택시의 고정 장치, 차량 변형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제작사측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
“구조했더니 면허 없다고 고발”

#1. 한 대학병원서 응급구조사로 근무하는 경력 8개월차 A(27·여)씨는 지난 5월 환자 보호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로부터 지시를 받고 환자의 호흡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동맥혈가스분석(ABGA)를 실시했으나 현행 의료법상 응급구조사는 ABGA를 할 수 없게 돼있다. 결국 A씨는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검찰에서 수사 중이며 병원에선 퇴직한 상태다.

#2. 다른 대학병원도 최근 지자체 보건소로 민원이 접수돼 곤혹을 치렀다. 이 병원 응급구조사가 업무범위가 아닌데도 심전도 측정을 실시했다는 게 민원인의 주장이다. 병원 측은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측정은 간헐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나 의료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응급의료업무에 종사하는 응급구조사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고발당하는 사례가 빈번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비합리적으로 제한돼 응급환자의 생명은 물론 응급구조사의 직무수행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응급구조사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재난을 겪은 후 응급의료체계 구축과정에서 1995년에 탄생했으며 2017년 현재 2만9000여명의 응급구조사가 소방구급대, 해경, 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응급의료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범위가 제한적이어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윤 의원에 따르면 개념상 응급의료는 환자상태의 파악과 적절한 처치, 중증도 분류 등이 환자 개개인에게 총체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기도유지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기 이용한 호흡의 유지 ▲포도당, 수액 등 약물투여 등 14개로 업무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응급구조사의 의료행위나 의료행위 보조업무는 규정된 업무범위를 벗어나기 일쑤다. 응급구조사가 응급상황에서 전문의의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고 윤 의원은 지적했다.

윤 의원은 “전문의나 응급실 전담의사의 구체적인 의료지도 하에서는 응급의료보조업무가 가능해야 한다”며 “14년 넘게 보완이 없었던 시행규칙의 개정 등을 통해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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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