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조선 초기 화가인 안견은 신라의 율거, 고려의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은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서른 살 되던 해 복숭아밭을 노니는 꿈을 꿨고, 이를 안견에게 설명했다. 안견은 3일 만에 그림을 완성, 몽유도원도는 회화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석철주 작가에 의해 새롭게 되살아났다.
석철주 작가는 동양적 산수의 세계를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하는 동양화가다. 그의 대표작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서 제목을 따온 ‘신몽유도원도’. 신몽유도원도 연작은 심산유곡의 산수풍경을 꿈속처럼 아련하게 표현한다.
한국화의 정신적 근간인 기와 물아일체 사상의 맥은 이어가면서 지필묵으로 대표되는 동양화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서양화의 대표적인 재료인 아크릴물감을 통해 몽유도원도가 다시 태어났다.
동양과 서양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은 지난 11일부터 석 작가의 ‘도건 석철주 전’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현대 디지털 문화의 픽셀 구조서 영감을 얻은 중첩된 두 개의 막이 더욱 더 꿈같은 상태, 몽중몽으로 빠져들게 한다.
즉 현실과 환상을 매개하는 꿈과 안개라는 두 개의 장치를 현대적 어법으로 발전시킨 ‘석철주표’ 한국화가 탄생한다.
석 작가는 “재료와 기법은 달라도 수묵화의 정신세계는 그대로 가져왔다”며 “정신이 다른 것이 아니고 같은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16세 때부터 근대 한국화단의 거목, 청전 이상범 선생 문하서 그림을 배웠다. 이 시기에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고 삼라만상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며, 필요하지 않은 것은 넣지 않는다는 한국화의 정신을 배우고 익혔다.
동양 산수를 서양화 기법으로
아크릴로 그린 조선시대 걸작
미술대학에 진학한 건 20대 후반으로 보통에 비해 늦은 나이였다. 대학에 가서는 동서양 재료와 기법을 두루 익혔다. 화단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먹과 종이, 아크릴과 캔버스 작업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이름이 높아졌다.
그가 10년째 그려온 연작 신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겹겹의 여러 산봉우리들이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 몽롱하고 환상적인 화면을 드러낸다. 초록 물결이 산과 강을 휘감은 여름 산수를 비롯, 눈이 내리는 겨울 산수도 있다.
보통 서양화가 캔버스 위에 여러 물감을 차례로 올리는 것이라면 그는 바탕색, 그 바탕색과 다른 색의 물감을 캔버스에 올린 뒤 마르기 전에 지워버린다.
물을 담은 에어건과 마른 붓을 차례로 쓰며 지워내는 과정서 형상이 드러난다. 억지로 쌓아 만들기보다는 저절로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풍광이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젤을 이용해 망 처리를 한다.
몽환적이면서 현실적
마음 정화의 시간되길
그는 “아날로그서 디지털로 넘어왔으니 표현기법도 변해야 한다”며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옛날과 똑같은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정선서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여름철 민박서 잠을 자다가 방문 앞에 쳐놓은 모기장으로 바깥의 아침풍경을 봤을 때를 설명했다. “정말 아름답고 몽환적이었다”며 “제가 그리는 신몽유도원도 제작 기법이 그 당시 본 모기장과 그 바깥 풍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전시서 선보이는 신작에는 신몽유도원도 한편에 선명한 형태의 수석을 앉혀놓았다. 신몽유도원도의 몽환적이면서 꿈 같은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수석은 현실을 상징한다. 하나의 그림에 꿈과 현실이 혼재하는 것이다.
꿈과 현실
조은주 큐레이터는 “도건 석철주 전은 관람자의 상황, 시선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중용적이고 넉넉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전시”라며 “아날로그적이면서 깊은 맛이 우러나는 사계의 색감이 담긴 산수화를 통해 마음이 정화되길 바란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11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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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는?]
▲학력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경력
한국미술협회 회원
동연회 명예회원
전 영은미술관 입주작가
전 가나 장흥입주작가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
▲개인전
space CHoA
갤러리 필
고려대학교 박물관
세솜갤러리
서호미술관
아뜰리에 아키 인 베르사체
Beacon 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일본금산 갤러리
인화랑
박영덕 화랑 등 개인전 23회
▲수상경력
제2회 한국평론가협회 창작부문대상 수상(2010)
제6회 한국 미술작가상 수상(1997)
제9회 미술기자상 수상(1990)
중앙미술대전 연3회 특선(1979∼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