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 16대 임금인 인조 시절에 발생했던 병자호란과 관련해서다. 청나라에게 패한 인조는 한겨울에 남한산성을 나와 걸어서 삼전도(서울 송파)로 이동한다. 그곳에 도착한 인조는 청 태종에게 3배 9고두례(三拜九敲頭禮, 한 번 절 할 때마다 머리를 땅바닥에 세 번 부딪치는 행위를 세 번 반복하는 방식)를 행한다.
그 과정에 청 태종이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다시 할 것을 요구해 인조는 수십 번 머리를 부딪쳤고 급기야 이마가 피로 범벅되는 굴욕을 겪는다.
또한 항복의 대가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 수도인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8년여 동안 머문다.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우며 청나라의 발전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반면 봉림대군은 삼전도의 굴욕을 곱씹으며 오로지 복수의 칼날만 간다.
그리고 귀국해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이후 보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 청나라를 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일환으로 어영청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군비를 확충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를 위해 대동법을 실시해 세제를 개편하고 농사에 필요한 정책들을 시행하지만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한 대가 지불, 그리고 이어지는 흉년으로 백성들의 고통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북벌에 정신을 빼앗긴 효종은 송시열과 송준길 등을 중용해 안간힘을 쓰지만 민생파탄으로 인한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효종이 꿈꾸던 북벌은 그의 사망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삼전도의 굴욕서 비롯된 효종의 한은 그가 보위에 있는 동안 그를 북벌이란 허황된 꿈에 가두고 있었다. 명나라를 멸하고 중원의 패자로 등극한 강력한 제국을 상대로 무모한 꿈만 꾸다 결국 청나라의 코털도 건드려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주로 부정의 개념으로 작동되는 그 한(恨)을 필자는 발전의 원동력으로 간주한다. 그 한이 바로 인간,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철학 내지는 사상의 밑받침이 된다는 의미다.
광복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그 실례를 들어보자.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에 반평생을 보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그 한을 건국으로, 궁핍하기 그지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한을 산업화로, 군부 독재로부터 무수한 박해를 받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한을 민주화로, 끊임없이 정권의 핍박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한을 화해로 풀어낸다.
길게 살피면 이 나라 정치 지도자 네 분이 지니고 있던 한과 그를 척결해가는 과정에 오늘날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확신을 하게 된다. 즉 그분들이 지녔던 한이 그분들의 경쟁력으로 발휘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외쳐대는 적폐청산의 행태를 살피면 흡사 아버지 인조가 당했던 삼전도의 치욕을 잊지 못하고 청나라를 멸하겠다고 한 효종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한풀이의 중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 그러나 적폐청산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면, 또한 민생경제를 등한시한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