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블랙리스트 파문> MB 때 터진 스캔들 ‘총정리’

스타들 사찰한 진짜 이유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연예와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한쪽에서는 연예뉴스가 대형 정치 이슈를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런 생각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쪽도 있다. 최근 MB(이명박)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가 가수 이효리,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 등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치보다는 연예면에 잘 어울리는 인물들. MB정부는 왜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봤을까.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MB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가 청와대에 올린 일일 국내외 사이버동향 보고서를 열람 후 직접 작성한 메모를 공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사이버사는 2011∼2012년 MB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 등 유명인사 33명의 SNS 동향을 파악했다.

유명인사 동향 파악
이효리·이승엽 왜?

이 의원이 공개한 메모 속 유명인사는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홍준표 의원 등 여야를 넘나들었다. 여기에 가수 이효리·MC몽,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 배우 김여진, 개그우먼 김미화 등 방송·연예인도 대거 포함됐다.

이날 보도 이후 가수 이효리와 MC몽,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가 명단에 포함된 것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날 YTN라디오 프로그램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승엽 선수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고, 이효리씨도 아주 가끔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정도 수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간첩혐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국가기관까지 나서서 사찰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사이버사가 이들의 SNS를 들여다본 이유로 ‘국면전환용’ 뉴스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지난 1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서 “연예인의 동향을 파악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중에 연예인 사건에 쓸 소재가 있는지 평소에 파악해두는 용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MB(이명박 전 대통령)정부 임기(2008∼2013) 동안 국정원이나 사이버사가 대중 여론을 파악하고 각계각층 인사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시 연예면을 도배했던 스캔들의 진짜 속내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갑작스레 ‘빵빵’ 터져 나온 연예계발 뉴스가 정부에 불리한 이슈를 묻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2008년= MB정부 첫 해, 연예면을 가장 뜨겁게 달군 건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었다. 9월에는 개그우먼 정선희의 남편 탤런트 안재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 달 뒤인 10월에는 국민배우 최진실이 자택서 목을 맨 채 발견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배우 옥소리의 간통죄 확정 판결도 2008년 12월에 있었다. 옥소리는 팝페라 가수 정모씨와 3차례 간통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간통죄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 여론이 많았고, 2015년 62년 만에 폐지됐다. 

간통죄 폐지 이후 유죄를 받았던 옥소리의 거취에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방송인 강병규 등 스타들의 억대 도박 파문도 불거졌다. 강병규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인터넷을 이용해 상습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그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26억원을 송금했고 도박을 하는 과정서 12억원을 날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치 이슈와 사건들
우연일까? 국면전환용일까? 의문↑

2008년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2월1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보름 전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됐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있던 해도 2008년이다. 

국민들은 30개월 이상의 소고기와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이 포함된 부분을 수입하지 않도록 재협상을 요구했다. 당시 SNS에 미국산 소고기 관련 글을 남긴 배우 김규리는 ‘MB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최근 확인된 바 있다.

삼성그룹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그룹 비자금 특검도 이 시기에 마무리됐다. 당시 특검팀은 이건희 전 회장에 징역 7년, 벌금 3500억원,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선고 공판서 모두 집행유예가 나왔다. 
 

최근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서 2008년 삼성 특검서 밝혀진 차명계좌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09년= 새해 벽두부터 배우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사건이 터지더니 한류스타들의 대형 열애설이 이어졌다. 최지우와 이진욱(2월), 현빈과 송혜교(8월), 장동건과 고소영(11월) 등이다. 세 커플은 남녀 모두 아시아서 인기가 높은 배우라 누리꾼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연예계 도박 파문
미국 소고기 집회

3월에는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과 함께 드러난 ‘장자연 리스트’가 전국을 놀라게 했다. 장자연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며 자신의 성접대를 받은 사람의 명단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명단에는 유명 일간지 고위 임원을 포함, 대기업 관계자, 드라마 PD, 대형기획사 대표 등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크게 일었다. 경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천명했지만 정작 실체를 밝히는 데 실패, 알맹이 없는 부실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2009년 하반기에는 배우 이병헌과 그의 전 여자 친구 권모씨 간의 스캔들로 연예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권씨는 “캐나다서 이병헌을 처음 만나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고 그의 권유에 따라 한국에 들어왔는데 버림받았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이병헌을 상습 도박 혐의로 고발했다. 


반면 이병헌 측은 오히려 권씨가 20억원을 요구하는 등 협박을 해왔다고 맞대응하면서 진실공방이 지속됐다.

2009년 가장 이슈가 된 사건은 단연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전방위 여론조작을 펼쳤다고 밝혔다.
 

TF에 따르면 2009년 6월 국정원은 ‘노 자살 관련 좌파 제압 논리 개발·활용계획’ ‘정치권의 노 자살 악용 비판 사이버 심리전 지속 전개’ 등 2건의 보고서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론에는 ‘본인 선택이고 측근과 가족의 책임’이라는 논리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장자연 리스트
두 대통령 서거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국정원은 보수단체를 앞세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취소해달라고 청원을 하는 등의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야권과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추모 열기가 형성, MB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된다는 판단 하에 고인을 헐뜯는 심리전에 나섰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2010년= 연예계 도박 문제는 여러 번 불거졌지만 2010년 방송인 신정환으로부터 불거진 원정 도박 파문은 그 파장이 남달랐다. 신정환은 추석 특집 방송을 포함, 여러 프로그램에 사전 통보 없이 불참했다. 

당시 잠적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도박빚 때문에 필리핀에 억류돼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신정환 측은 카지노에 방문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광 목적이었고 여행 도중 뎅기열에 걸려 병원에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고의로 생니를 발치, 병역을 기피한 혐의를 받은 MC몽 사건 역시 2010년에 일어났다. 병역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MC몽은 정상적인 치료행위였다고 주장했으나 그가 입영을 연기하기 위해 허위로 증명서를 발급한 사실 등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2011년 4월 법원은 MC몽의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치과 치료에 대한 공포증,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치과의사들에 대한 진료 의견에 따라 정당한 발치였다고 판단한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MC몽의 치아를 발치한 의사가 그로부터 8000만원을 받고 고의로 치아를 뺀 사실이 밝혀지는 등 의혹을 남겼다.

7월에는 개그우먼 김미화가 자신의 SNS에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다”는 글을 올려 파장이 일었다. 당시 KBS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소송까지 제기해 과잉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로부터 7년 뒤 MB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연예계 인사의 퇴출을 지시하는 등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김미화는 이 명단에 포함된 인사다.

2010년 하반기는 마약 사건으로 얼룩졌다.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서 인기를 누리던 탤런트 김성민이 필로폰 투약 및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해외서 필로폰을 구입한 뒤 상습적으로 투약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개그맨 전창걸이 김성민에게 대마초를 건넨 혐의로 구속돼 연예계에 마약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김성민은 2016년 자살 기도 끝에 사망해 충격을 줬다.

2010년 제기한 블랙리스트
7년 뒤 사실로 밝혀지기도

2010년엔 북한 관련 이슈가 많았다. 2010년 3월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 장병 46명이 희생됐다. 정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을 꾸려 침몰 원인을 조사했고, 북한이 어뢰로 잠수함을 침몰시켰다고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천안함 침몰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남북한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후에도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 불신이 높아졌다.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국이 ‘휴전 국가’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북한의 포격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 영토에 대한 첫 포사격 도발이었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 병사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북한은 NLL(북방한계선)을 두고 ‘강도들이 그어 놓은 선’이라며 포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불법 사찰한 사실이 6월에 폭로됐다. 김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블로그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사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불법사찰과 증거 인멸에 관여한 지원관실 실무자 몇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해 축소·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1년= 4월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 소송 소식이 들렸다. 열애나 결혼이 아닌 이혼 소송이라는 점에서 온갖 억측과 의혹이 제기됐다. 두 사람의 소식이 전해지자 그 외 모든 이슈가 새카맣게 잊혀졌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태지와 ‘외계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사생활을 감췄던 이지아의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 사건은 지금도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로 꼽힌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팬들이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지드래곤은 “일본의 한 클럽서 이름을 모르는 일본 사람이 준 담배를 한 대 피웠는데 냄새가 일반 담배와 달라 대마초로 의심이 들었지만 조금 피운 것은 사실”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지드래곤이 상습 투약이 아닌 초범인 데다 흡연량도 적어 마약사범 양형처리 기준에 미달한 수준의 성분이 검출된 점 등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2011년은 연예계서 대형 이슈가 터진 것 이상으로 정치·사회 분야서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북한 김정일 시대가 끝났다. 김정일은 12월17일 오전 급병으로 열차 안에서 사망했다. 

김정일 시대는 1998년 김일성 주석 사후 13년 만에, 1974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 만에 막을 내렸다.

1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도 2011년을 달군 사건 중 하나다. 이 과정서 불법대출, 정관계 로비 부실감독·검사, 예금·투자자 피해 사례가 쏟아졌다. 일부 저축은행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전 예금을 불법으로 인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촉발되기도 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이명박정부 실세와 검찰 고위층에 구명 로비를 벌였다고 폭로해 정관계는 물론 검찰에까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폭로로 관련자들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았다. 

이국철 회장 본인도 구속됐지만 비망록을 통해 추가 내용을 폭로해 정국을 뒤흔들었다.

▲2012년= 연예인들의 열애, 결혼, 파경 소식이 잇따랐던 해였다. 배우 이병헌과 이민정이 열애설에 휩싸인 지 두 달 만에 연인 사이를 인정했다. 배우 지현우와 유인나도 연예계 공식커플이 됐고 배우 전지현도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손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반면 원조 한류스타였던 배우 류시원은 1년6개월 만에 파경 소식을 전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배우 전노민, 김보연 부부도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했다. 개그우먼 조혜련도 1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또 배우 공효진과 류승범, 가수 나얼과 배우 한혜진도 오랜 연애 끝에 이별을 택했다.

룰라 출신의 방송인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추문 사건도 터졌다. 고영욱은 2010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서울 자신의 오피스텔과 승용차 등에서 미성년자 3명을 총 4차례에 걸쳐 성폭행 및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3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했으며 지난 2015년 7월 만기 출소했다.

방송인 에이미가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도 2012년 일이다. 에이미는 4월 서울 강남의 한 네일숍서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같은 해 11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졸피뎀 투약 혐의로도 연이어 법적 처벌을 받으면서 결국 강제 출국 당한 바 있다.

7월에는 여자 아이돌 그룹 티아라 사건이 불거졌다. 멤버였던 화영의 왕따설이 돌면서 누리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당시 올림픽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티아라 관련 이슈는 전혀 묻히지 않고 오랜 시간 인터넷상을 오르내렸다. 티아라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겪었다.

열애, 파경…
누리꾼 관심↑

12월19일 치러진 대선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총집결해 양자대결로 진행된 대결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첫 여성 대통령 등의 기록을 세웠다.

앞서 11월에는 검찰 내부서 성추문 사태가 불거졌다. 10억원대 뇌물수수, 향응, 브로커 검사까지 잇따라 터진 내부 비리에 검찰이 침몰 직전까지 몰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로 위기를 타파하려던 한상대 검찰총장은 중수부장 감찰이라는 자충수로 ‘검란’을 자초했고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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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