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비담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당나라와 고구려 간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상황을 주시한 연후에 백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면 굴러 들어온 땅을 내팽개치자는 말이오!”
뒤질세라 염종이 목소리를 높이며 가세했다.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선덕여왕이 침착하게 말을 꺼내자 유신이 춘추와 비담의 얼굴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섰다.
“전하,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말씀하세요.”
소탐대실
“첫째, 소탐대실이라 하였습니다.”
“소탐대실이라니?”
유신이 비담을 주시했다.
“비담 공의 말대로 지금 백제를 공격하면 우리가 승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전력으로는 국가 간 전쟁은 불가하고 고작해야 국지전이 될 터인데, 더욱이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면전을 한다고 하면 그동안 당에 입은 은혜를 생각해서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할 것입니다.”
잠시 사이를 두었다 말을 이어갔다.
“반드시 당나라에서 우리 신라에 원병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고구려와 백제라는 두 나라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형국에 직면하게 됩니다.”
알천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두 번째 이유로, 자고로 남의 초상에는 일을 도모하지 않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정상적인 관계라 할 수 없지만 의자왕의 첩은 첩입니다. 지금 의자왕이 상을 당해 상심에 젖어 있는 중에 그를 기회로 백제를 정벌함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백제 놈들에게 인륜을 들먹거리는 게요!”
염종이 목소리를 높이자 선덕여왕이 그를 제지하고 모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전력은 어찌됩니까?”
“현재로서는 비록 완벽한 승리를 기대할 수 없으나 백제와 전면전을 행한다 하더라도 해볼 만합니다. 하오나 우리만의 전쟁이 아닌지라 미래를 확단하기 힘듭니다.”
말을 마친 유신이 비담과 염종의 표정을 살폈다.
“그래서 치겠다는 거요, 말겠다는 거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어지는 반발에 유신이 여주의 표정을 살폈다.
아직도 유신의 말을 새기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소신은 무장으로 전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백제와 전쟁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대감들이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유신이 좌중을 둘러보며 힘주어 말하자 비담이 나섰다.
“전하, 신라군의 사기를 생각하십시오. 지난번 대야성 전투의 패배도 있고 우리 군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반드시 백제군을 침공하여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유신이 자리를 파하고 춘추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장군의 진정은 무엇입니까?”
유신이 즉답을 피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시오?”
“당연히 쳐야 하는데, 내색할 수 없어 그런 게 아닌가.”
“당연히 치다니요?”
“굳이 승리 여부를 떠나 우리 군의 전력을 탐색해볼 기회를 가져야 하고, 또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해서 실전 경험을 축적해야 하네.”
“그런데 왜 아까는.”
고구려-백제 전면전 움직임 ‘긴장’
김유신 상장군 임명…백제 공격 나서
“그래야 확실하게 침공할 게 아닌가. 만약 내가 침공하자고 했다면 비담이나 염종이 흔쾌히 동조해 주었겠는가?”
“다분히 그 사람들을 의식해서.”
말을 하다 말고 춘추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색하지 마시게. 어차피 저들이 서둘러서 일처리 할 터이니. 그때 슬그머니 동조해 주게나.”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시게.”
“부인 일은 안 되었습니다.”
자신의 딸 지소의 문제를 돌려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한번 만나보려 했네.”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제는 내 부인을 안방에 들이도록 해야지.”
“전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는지요.”
“절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그런가 보다 해야지.”
“한편 생각하면 참으로 안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야. 오히려 그편이 서로에게 이롭지. 자네 딸을 첩으로 데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사람인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인데 빠른 시일 내에 보내주도록 하시게.”
“그야 여부가 있을 수 없지요. 오늘이라도 당장 보내도록 하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양해를 구해야겠네.”
유신이 춘추를 주시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주저 마시고 말씀하시지요.”
“혼사는 조금 뒤로 미루었으면 하네.”
“편하신 대로 하시지요.”
“고마우이. 아무래도 지금 바로 혼사를 치른다면 전 부인에게 또 그 집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듯해.”
“충분히 이해합니다.”
결국 김유신은 의도대로 상장군으로 임명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 근처의 국경지대로 이동했다.
의자왕의 공백으로 인해 군기가 허술해진 틈을 이용하여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합천의 가혜진)ㆍ성열성(省熱城)ㆍ동화성(同火城) 등 일곱 성을 정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의자왕의 복귀
“전하, 이만 일어나셔야지요.”
“싫소. 내 이대로 부인과 함께 하겠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의자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사택비가 의자왕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있었다.
“정말이셔요, 전하.”
“그야 당연한 일 아니오.”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나면 어쩌시렵니까.”
“변고라니. 이 세상이 내 옆에 있는데.”
“나라 일 말이에요.”
“나라가 무슨 대수인가. 내게는 부인이 전부이거늘.”
의자왕을 간질이던 사택비가 정색하고 일어났다.
“왜 그러오, 부인.”
“몰라서 묻습니까!”
“시원하게 말해주오.”
“전하께서 계속 이러고 계시면 제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무엇이 되다니.”
“저로 인해 조정에 소홀하시면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저를 어찌 생각하겠는지요.”
“내게 그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소. 오로지 부인의 존재만이 중요하다오.”
“아니 되옵니다, 전하.”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