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선정> 금주의 국감스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16 10:20:14
  • 호수 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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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시작됐다. 추석 연휴를 뒤로 한 국회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 국감을 진행되며, 16개 상임위원회(겸임 상임위 포함)에서 701개 기관을 상대로 치러진다. 
 

이번 국감은 큰 줄기서 ‘적폐청산’ 대 ‘무능심판’의 대결 구도로 흐를 예정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이명박·박근혜정권 때 행해졌던 각종 비리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감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개혁과 적폐청산을 화두로 꺼내며 여당을 지원사격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의 지난 5개월간 무능을 심판하는 이른바 무심 국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5대 신(新) 적폐를 파헤쳐서 국민들이 정부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강대강 대립에 국회 일각에선 파행으로 인한 ‘부실 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정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송곳 같은 문제제기로 눈길을 끈 의원들이 있다. <일요시사>가 금주의 국감스타를 선정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민기 의원(더불어민주당)
“소아청소년 쇼크 환자 관리 부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알레르기 쇼크) 환자 중 소아청소년 환자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보건당국과 교육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통계의 격차가 커 학교 현장서의 아나필락시스 환자 관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민기 의원이 지난 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나필락시스 환자 중 0-19세 소아청소년 환자가 2012년 153명에서 2016년 389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환자수 대비 소아청소년 환자 비중은 2012년 16%서 2016년 39%로 10명 중 4명의 소아청소년이 아나필락시스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각 교육청별 식품알레르기 증상으로 인한 쇼크 발생 건수는 2013년 3건, 2014년 6건, 2015년 4건, 2016년 16건으로, 김 의원이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와 큰 차이를 보였다.

소아청소년 환자 급증으로 학교 및 보건 당국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건강보험공단과 교육부가 파악하고 있는 통계의 격차가 커 식품알레르기 보유 학생에 대한 학교현장 관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하다.

식품알레르기는 식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섭취한 후 발생되는 이상반응으로 특히 아나필락시스의 경우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지난 2013년 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학교 급식을 먹고 아나필락시스로 인해 사망한 사례가 있어 이에 대한 관리체계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해 4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서 축구를 하던 10살 김모군이 갑자기 쓰러졌다. 119 구급대가 출동해 긴급 이송됐지만 김군은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평소 우유 알레르기 있던 김군이 이날 학교 급식으로 나온 우유가 섞인 카레를 먹은 게 원인이었다. 카레에 섞인 우유로 인해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킨 것이다.

원인물질에 노출된 후 급격하게 진행하는 전신적인 중증 알레르기 질환인 아나필락시스는 단시간 내 급성으로 발병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으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김민기 의원은 “인천 초등학생 사망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확한 현황 파악과 함께, 쇼크 발생 시 교사 등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매뉴얼 보급과 대처방법 교육 등 사고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위원회] 박명재 의원(자유한국당)
“아직도 짝퉁이 판친다”

‘루이비통’ ‘롤렉스’ 등 해외 유명 제조사의 제품을 베낀 이른바 ‘짝퉁’ 상품이 지식재산권 보호 조치를 비웃 듯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적발된 짝퉁만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명재 의원이 지난 11일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2∼2016년 상표별 지식재산권 위반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식재산권 위반 건수는 총 1603건이었다. 이를 정품 가격으로 환산했을 시 2조8218억원에 이른다.

연도별 적발 금액은 2012년 9332억원(593건)에서 2013년 5749억원(374건), 2014년 5162억원(262건), 2015년 4653억원(193건), 2016년 3322억원(181건)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짝퉁은 대부분 중국서 만들어져 국내로 유입됐다. 지난해까지 5년간 금액 기준 전체의 90.3%인 2조5473억원어치(1341건) 짝퉁 명품이 중국에서 건너왔다가 세관 당국에 적발됐다. 이어 홍콩(1909억원, 108건), 일본(336억원, 44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브랜드별로는 같은 기간 루이비통이 밀수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정품 가격으로 2080억원어치를 차지했다. 롤렉스도 1951억원어치가 적발돼 상위를 차지했다. 이어 카르티에(1467억원), 샤넬(1446억원), 버버리(924억원), 구찌(748억원), 아르마니(458억원) 등 순으로 적발 금액이 높았다.

품목별로는 시계류가 9113억원(204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가방류가 6033억원(461건)으로 뒤를 이었다.

박명재 의원은 “지식재산권 위반 범죄는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범죄”라며 “관세청은 민·관 협력 단속을 통해 단속 실효성을 제고하고 지식재산권 사범이 많은 국가의 통관을 집중 단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노동위원회] 김삼화 의원(국민의당)
“타워크레인 사고는 예고된 인재”

추락사고로 5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타워크레인이 제조된 지 27년이나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노후크레인은 연이은 타워크레인 사고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삼화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노후크레인 운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크레인 중 연식이 20년 이상 된 노후크레인의 비중이 무려 2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섯 대 중 한 대 꼴이다.


특히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의정부시 낙양동의 크레인을 포함, 경기지역에만 20년 이상의 노후크레인이 총 381대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이은 크레인 사고의 주원인 중 하나가 노후크레인의 사용임에도, 관계당국이 이를 적발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가 중고크레인을 수입·인수해 새로운 건설기계로 등록할 때 국토교통부에 크레인의 연식을 속이는 방식으로 허위신고를 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이를 적발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타워크레인 검사 등 ‘건설기계 자체의 구조적 안전’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하고 있고 ‘검사 후에 설치해체 등 현장작업 중 안전’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에 김삼화 의원은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타워크레인 사고 중 상당수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사고”라며 “국토교통부는 적어도 연식이 20년 이상된 노후크레인에 대해 비파괴 검사 등 정밀검사를 통해 크레인의 안전성을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특히 “중고크레인을 새로 등록하는 과정서 업체가 연식을 속이는 이른바 ‘연식 사기’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철저히 적발해 엄단하고, 타워크레인 설치와 해체 등 현장 운영과정에서의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와도 긴밀히 협업해 타워크레인 공사현장에서의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국방위원회] 김종대 의원(정의당)
“우리군, 록히드마틴에 특혜 줬다”


우리 군이 차세대 전투기(F-X) 3차 사업의 입찰 자격도 안 되는 록히드 마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종대 의원이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국방과학연구소(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이하 ADD)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록히드마틴은 지난 2013년 3월17일 방사청에 ‘제5차 절충교역 제안서 수정본’을 제출했다. 해당 수정본에는 군 통신위성을 절충교역 항목으로 새롭게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록히드마틴은 2013년 2월 말까지 F-X 3차 사업 계약 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절충교역 비율 50%를 맞추지 못해 입찰 자격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방위사업법’과 ‘절충교역 지침’은 경쟁 입찰·거래금액 1000만불 이상일 시에는 계약금액의 50% 이상을 절충교역으로 추진토록 규정한다. 당시 록히드마틴은 절충교역 비율을 27.78%밖에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군 통신위성을 추가하면서 절충교역 달성률이 63.39%가 돼 입찰 자격을 갖추게 됐다. 

당시 군 통신위성을 절충교역으로 제시한 곳은 세 개 업체 중 록히드마틴이 유일했다.

당시 통신위성은 우리 군이 요구했던 절충교역 품목이 아니었다. 2012년 방사청에서 작성한 ‘F-X 사업 절충교역 협상방안’에는 군 통신위성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군 통신위성이 포함되기 전 절충교역은 기술 이전, 기술자료 획득이 주 대상이었다. 

군 통신위성 등 기존의 무기체계를 절충교역으로 도입하게 되면 품질을 검증하기 어렵고 후속 군수 지원도 원활하지 못해 부실화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군 통신위성을 절충교역 항목에 추가한 것이다.

이는 우리군이 아닌 철저히 록히드마틴에만 이득인 조치다. 제5차 절충교역 제안서 수정본에서 록히드마틴은 “군 통신위성은 방사청이 요청한 절충교역 비율 50%를 상당히 상회할 것”이라며 F-X 사업 수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우리군은 통신위성을 절충교역으로 도입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 연구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군은 2014년 9월25일 F-35A가 F-X 3차 사업 기종으로 최종 선정되자 군 통신위성 역시 절충교역으로 도입키로 확정됐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경쟁 기종이었던 F-15SE를 부결시키고 F-35A 도입에 힘을 쏟은 바 있다.

그런데 록히드마틴은 F-35A 계약이 체결되자 돌연 군 통신위성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우리군의 위성통신체계사업은 지난해 11월 재개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다. 뿐만 아니라 록히드마틴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업 지연에 따른 패널티 300여억원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종대 의원은 “F-X 3차 사업은 모든 과정이 록히드마틴의, 록히드마틴에 의한, 록히드마틴을 위해 진행된 것”이라며 “군 통신위성 사업 지연과 300여억원의 국고 손실은 군 통신위성을 절충교역으로 도입토록 강행한 배후 세력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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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