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100억 재력가 살인사건 뒷이야기

악마 같은 아들이 유산도 부모도 삼켰다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지난 4월 평택에서 발생한 100억대 재력가 남편 살해사건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공개됐다. 평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는 듯 했지만 그 이면에 큰 아들이 감춰져 있었던 것. 이와 관련 검찰은 최근 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장남 김모(35)씨를 구속기소했다. 과연 이들 가족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평택 100대 자산 부부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극을 취재했다.

아버지 납치 살해하려는 모친 계획 알고도 방조
범행 전 상속 재산 확인해 저장하는 치밀함 보여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6월27일, 지난 4월 경기도 평택시에서 발생한 100억원대 재력가 남편을 둔기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인 사건과 관련해 장남 김모(35)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유산을 노린 김씨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살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돕거나 방조했다는 것.

경찰 수사 단계에서 참고인 신분에 불과했던 김씨는 사건시간 전후 김씨의 행적을 수상히 여긴 검찰이 보강수사를 벌인 끝에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타임머신 타고
사건 속으로

사건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4월17일 오전 9시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2층짜리 고급 주택에서 50대 부부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남편 김모(58)씨는 청테이프로 양손과 발이 묶여 있는 상태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린 채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아내 양모(58·여)씨는 대들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숨진 이들 부부 주변에서는 양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유서에는 “아들아 미안하다.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찰은 발견된 유서의 내용에 비추어 양씨가 남편을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사건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경찰은 김씨 집 출입구 쪽에 설치된 CCTV에서 양씨의 조카사위인 장모(32)씨가 동네 선후배 3명과 함께 김씨의 양팔을 잡고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확보했다. 또 CCTV에는 부인 양씨가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삽과 목을 매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끈 등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에 경찰은 장씨 등 4명을 검거해 범행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장씨 등은 김씨를 납치해 감금한 혐의는 인정했지만 김씨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크게 부인했다. 양씨가 범행 10일 전 장씨에게 연락해 “고모부가 때리는 것을 막아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범행 당일에도 “고모부를 집으로 데려와 달라”는 부탁에 김씨를 집으로 데려갔을 뿐 살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장씨 일행은 4월16일 찜질방에 머무르고 있는 김씨를 납치해 렌터카에 태워 팽성읍에 위치한 김씨의 집으로 끌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차 안에는 아내 양씨도 동승하고 있었다고.

당시 김씨 부부를 처음 발견한 장남 역시 이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수시로 ‘너희 아빠를 죽이겠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 한 것.

결국 사건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도 뒤따라 자살한 참극으로 정리됐다. CCTV 촬영 결과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 경기 평택경찰서는 4월26일 부인 양씨가 남편을 혼자 살해한 것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 또 경찰은 장씨 일행을 살인방조와 납치·감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감춰진 진실
장남은 뭘 했나


하지만 사건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했다. 사건 전후로 사망한 부부의 장남인 김씨의 행적이 수상했던 것.

이에 검찰은 범행 며칠 전 김씨가 어머니 양씨에게 골프채를 갖다준 점, 양씨가 남편을 납치하는 도중 아들과 접촉한 점, 김씨가 문자 기록을 삭제한 점 등에 의문을 품고 보강 수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김씨가 아버지의 재산 목록과 시가를 미리 확인하고 사건 직후에는 상속재산을 엑셀 파일로 작성하는 등 어머니의 살해 계획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컴퓨터에 부친 소유의 부동산과 이에 대한 공시지가 등이 적힌 파일이 저장돼 있었으며 자신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건 당일 범행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검찰의 이 같은 주장에는 김씨의 부친 납치를 도왔던 장씨의 진술도 한 몫 했다. 장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씨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묶고 있어라. 현장에 가겠다’고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에서도 양씨가 남편을 납치하면서 김씨의 집에 잠시 들른 사실은 드러났었다. 경찰은 양씨가 아들의 집에 들러 500만원을 받아 장씨 일행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나눠준 사실을 파악했지만 “500만원을 건네줄 당시 어머니의 범행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김씨의 진술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밝혀낸 사건의 진실은 ‘비극’에 가까웠다. 100억원대 재산에 눈이 먼 아들이 아버지가 살해되고, 어머니가 자살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패륜적 범행에 가담했던 것.

이어진 검찰 측의 발표 또한 충격적이었다. 검찰은 “당초 본 사건은 남편의 가정폭력을 못 이긴 부인이 남편을 납치·감금·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주된 동기는 남편이 가진 재산을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데 대한 분노였다”고 말했다.

억대 재산에 눈 멀어 어머니 자살도 말리지 않아 
부친이 폭력 휘둘렀다는 진술도 거짓으로 드러나 

실제 남편은 부인을 상습폭행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부인이 남편 재산을 노리고 범행 직전 남편을 회사와 집에서 쫓아내 사건 당시 남편은 찜찔방을 전전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검찰은 경찰이 살인방조 혐의로 구속송치한 조카사위 등 3명에 대해서는 김씨와 어머니의 살해 계획이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체포·감금 혐의의 수위를 낮췄다.

사건 발생 2개월이 훌쩍 지난 6월30일 취재기자는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았다.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2층의 고급주택이 참혹한 범죄의 현장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2개월이 지난 탓일까. 마을 주민들은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 했다. 하지만 사건 자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자와 만난 몇몇 주민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사건 이유가 가정폭력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죽은 남편은 온순한 편이었고 오히려 아내의 성격이 괄괄했다”고 말했다. 맞고 살 여성이 아니라는 것.


취재 도중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일례를 들어 설명했다. 택시기사에 따르면 양씨는 동네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놀다 자신의 집 앞 잔디밭에 공이 들어오면 아이들을 나무라고 공을 돌려주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자신의 집 앞에 말도 없이 주차를 했다는 이유로 해당 차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차를 빼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경우고 있었다고.

보통 성격이 아닌 그녀가 결혼 이후 맞고 살았을 리 만무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해당 택시기사는 “살해된 남편이 술을 마시면 욱하곤 했지만 평소에는 매우 온순한 사람이었다”면서 술을 마신 뒤 폭력을 휘둘렀을 가능성은 열어 놨다.

이어 이웃들은 부부의 죽음에 ‘재산 분할’ 문제가 엮여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전, 이들 부부가 ‘재산 분할’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는 것. 둘째 아들의 결혼식을 치른 직후 양씨는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분할할 것을 주장했지만 남편은 이를 반대했다는 것. 이 즈음부터 남편 김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을 나와 찜질방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괄괄했던 그녀
자살 택한 이유는

아직 이웃 주민들은 이들 부부의 장남인 김씨가 검찰에 구속된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와 관련 한 주민은 “평소 큰아들과 이들 부부는 왕래가 많지 않았다”면서 김씨가 부부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것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사건 현장을 돌아 나오면서 기자는 가까운 부동산에 들렀다. 해당 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바깥사람들과 왕래가 없던 사람들이라 속사정은 잘 모른다. 현재 집은 안 내놓은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큰 며느리가 들어와 살고 있다더라”고 덧붙였다.

최근 검찰에 구속기소된 장남 김씨의 아내가 들어와 살고 있다는 말에 가던 발걸음을 돌렸지만 굳게 닫힌 문 사이로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남편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부인 양씨가 남편에 대한 원한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평소 맞고 살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을 나가 살게 할 만큼 괄괄한 성격의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점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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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