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엔리코 룽기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장은 김민정의 작업을 두고 “자신을 강요하려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영혼의 깊이를 탐구한다”며 “그것이 지닌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돌연히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민정의 작업이 가진 세심함은 내게 기쁨을 안긴다”며 “섬세한 작업이 현대 세계의 속도를 거스른다는 생각이 나를 즐겁게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작가는 1970년대 중반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명망 높은 수채화가인 강영균 작가를 통해 미술을 접했다. 그는 여전히 김 작가의 정신적 인도자다.
김 작가는 동양과 서양의 예술적 흐름을 탐구, 한지 위에 먹을 사용해 선과 획을 긋거나 뿌린다. 또 향과 초를 이용해 섬세하게 태운 한지들을 풀칠하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섬세한 수공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한지와 불이라는 매체, 반복적인 수공의 작업은 형태적인 풍요로움과 깊이를 작품에 덧얹는다.
순환과 흔적
지난 1일부터 현대화랑이 열고 있는 김 작가의 개인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전에는 그녀가 사용하는 독특한 매체와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신중한 재료 선택과 한지를 태우는 섬세하고 몰입적인 과정, 끈기 있게 얇은 한지를 붙여 나간 콜라주 등 작품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집중과 사색을 반영한다.
김 작가는 “한지를 재료로 택한 건 가장 잘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처음에는 수묵으로 음악의 리듬감을 표현하다가 손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 촛불이나 향불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런 선에 몸을 맡겼다”고 밝혔다.
현대화랑에서는 ‘Pieno di Vuoto’ ‘Story’ ‘The Street’ 시리즈 등 김 작가의 작업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 총 3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독특한 매체와 작업방식
작품에 풍요와 깊이 더해
신작 ‘Phasing’ 시리즈는 한지 위에 먹으로 붓질을 한 후 그 위에 한지를 덧대 그 아래 비춰진 필력을 따라 한지를 태운 작품이다. 획을 그은 한지 위에 먹 자국을 따라 그을린 한지를 엇비슷하게 붙인 이 작품은 작가의 수작업과 한지 본연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 나무에서 종이가 나오고, 탄 나무로부터 먹이 만들어지는 반복적인 연대적 순환과 시간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검은 배경 위에 살짝 그을린 윤곽의 흰색 구형을 균등하게 배치한 ‘Order-Impulse’도 주목할 만하다. 원이 하나씩 더해질수록 앞에 만들어진 것을 잠식하면서 열린 형태의 나선형을 만들거나 혼란스럽게 구성된 선을 따라 진행한다.
그 결과 여러 층의 퇴적과 투명함이 상호작용한 일종의 추상적이며 다양한 세포를 지닌 유기체가 등장한다.
나무서 종이, 탄 나무서 먹
사물 본성에 경의를 보내다
Pieno do Vuoto와 Story는 휘황찬란한 색상을 입힌 작품이다. 전자는 풍성한 꽃과 비슷한 무늬로 표면이 가득 찰 때까지, 후자는 기하학적 질서에 놓일 때까지 채색한 종이를 각각 잘라내고 불에 태웠다.
한지의 앞면과 뒷면의 미묘한 색감 차이와 한지의 독특한 물성을 살리고, 리드미컬한 배열로 음악적인 느낌을 주는 Insight도 눈여겨봐야 한다.
김 작가의 반복적이고 사색적인 작업은 그녀의 작품서 중요한 부분이며 명상과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김 작가의 연작은 종이를 다루고 먹과 불을 활용해 만든 조합과 연속을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제한 없는 자유를 안겨준다.
종이를 선택하고 이를 끈기 있게 콜라주하고 세심하게 잘라내는 점, 종이가 타들어가는 것을 통제하는 점, 체계적이면서 열린 형태로 구성하는 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업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경의를 보이는 태도가 감지된다.
제한 없는 자유
엔리코 룽기는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지닌 무궁무진한 이해의 능력을 즐기도록 하고 그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예술이 품을 수 있는 위대한 야망일 수 있다. 김민정의 작업이 바로 그러한 영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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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은?]
▲개인전
화이트 큐브, 런던, 영국(2018)
종이, 먹, 그을음: 그 후, 갤러리 현대, 서울, 한국(2017)
Phasing, 패트릭 하이드 현대 미술 갤러리, 런던, 영국(2017)
Cendre & Lumiere: (Euvres de Minjung Kim, 아시아 미술 박물관, 이사회 부서 06, 니스, 프랑스(2017)
Oneness, 에르메스 재단, 싱가포르(2017)
Phasing, 폴케르 딜 갤러리, 베를린, 독일(2016)
김민정, 레슬리 삭스 갤러리, 산타 모니카, 로스앤젤레스, 미국(2016)
Traces, OCI 미술관, 서울, 한국(2015)
The Light, The Shade, The Depth, 룩셈부르크&다얀 갤러리, 카보토 팔라초, 베네치아, 이탈리아 (장-크리스토프 암만 큐레이터 기획)(2015)
오코, 뉴욕, 미국 (앨리슨 진저라스 큐레이터 기획)(2014)
코메터 갤러리, 함부르크, 독일(2014)
라파엘리 아르테 스튜디오, 트렌토, 이탈리아 (제라도 모스케라 평론글 수록)(2014)
룩셈부르크&다얀 갤러리, 제네바 살롱 드 아트, 제네바, 스위스(2014)
패트릭 하이드 현대 미술 갤러리, 런던, 영국(2013)
▲소장처
Phasing, 대영박물관, 영국
The Room, 대영박물관, 영국
Mountain, 대영박물관, 영국
Story, 아시아 미술 박물관, 프랑스
Female, 폰타치오네 팔라초 브리케라시오, 이탈리아
Story, 존슨 미술관, 코넬 대학교, 미국
Pieno di Vuoto, 유니크레딧,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