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임박설’ 기습 북폭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9.11 10:30:00
  • 호수 1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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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거, 5분이면 충분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한반도 긴장의 끈이 팽팽히 당겨졌다. 폭주하고 있는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핵무기 완성만 바라보며 내달리는 중이다.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 상황. ‘세컨더리 보이콧’에 나설 것임을 밝힌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군사 옵션에 대한 여지도 남겼다. <일요시사>는 옵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북한 선제타격, 즉 북폭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번 핵실험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번에 터트린 수소탄이 기존의 원자탄보다 비단 폭발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핵실험 전 핵무기를 이용한 전자기펄스(EMP) 공격의 위력을 선전했다. EMP는 매우 강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전기·전자 기기나 인프라를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본토 위협
EMP 공격

북한은 “우리의 수소탄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주장했다.

만약 관영매체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에 대한 즉각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EMP를 통해 미국 본토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거리가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수준의 ICBM을 개발했으나 아직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핵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공기와의 마찰로 타 버리기 십상이라 목표지점을 타격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EMP는 이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 내에서 북한을 선제타격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NBC방송의 수석특파원 리처드 엥겔은 “미국은 여전히 북핵 프로그램을 수년간 후퇴시킬 기회의 창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군사적 공격을 의미한다”는 미 정부 관리들의 주장을 인용해 지난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어 “지금은 기회의 창이 열려 있지만 이 창이 닫히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외교해법이 실패하면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을 보유하는 불가역적 상황을 맞기 전에 군사공격을 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도 같은 날 MSNBC 방송 <모닝 조>에 출연해 “미국에는 2가지 선택이 있다”며 “군사력 증강과 미사일 방어를 통한 억제를 조합해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거나 선제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선제타격 가능성을 높다고 본 것이다.

공존 VS 공격
두 가지 선택

그는 “북한은 세계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만큼 필요하다면 북핵 프로그램을 위해 인민을 굶길 것이기 때문에 제재는 답이 아니다”라며 최근 부각되고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기업·금융기관 제재) 전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워싱턴 포스트>(WP)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그재그로 대북 정책을 취했지만 군사 옵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대북 군사 옵션을 거론해 궁극적인 협상 타결의 가격을 너무 올려버렸고 현재로써 협상은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술렁이지만 당장은 미국이 북한을 타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한 미국인 철수 등 타격을 암시하는 신호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자국민 대피를 시키지 않은 상태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 역시 주한 일본인들을 자국으로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때 한반도 인근 해역에 출동해 ‘4월 전쟁설’을 불러온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70)는 미국 샌디에이고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로널드레이건호(CVN-76)는 일본 요코스카에 머물러 있다. 주한 미군이 사용할 군수 물자가 부산항 등을 통해 들어왔다는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목전에 두고 있어 북폭을 원하는 미국 내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 트럼프 미 행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보다 현재 북폭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1차 북핵 위기는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다. 지난 1993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당시 미국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부분적인 정밀 폭격(surgical strike)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1년이 지나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금지선)이던 평북 영변 핵연료봉 교체를 강행하자 클린턴 미 행정부는 원자로가 있던 영변 지역 폭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대기권 진입 없어도…EMP 공포
미 언론 “불가역 상황 피해야”

당시 논의됐던 북폭 방안은 3가지였다. ▲영변의 핵처리 시설 타격 ▲영변지역의 다른 핵시설 동시 타격 ▲영변을 포함한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 타격이 그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현재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1차 타격 대상은 ▲북한 핵시설 ▲주요 탄도미사일 발사 및 저장 기지 ▲탄도미사일 제조공장 ▲북한 주석궁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함북 무수단리·평북 동창리 미사일기지, 함북 풍계리 핵시설, 황해 고암포 공기부양정기지 등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무수단리·동창리는 ICBM 발사장이 있어 주요 타격 대상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타격 대상 논의와 동시에 전투와 관계없는 주한 미국인 철수작업이 진행된다. 앞서 1차 북핵 위기 당시 레이니 주한 미 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자국 민간인을 철수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만약 미국이 민간인 철수를 하지 않고 북폭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엄청난 여론 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가뜩이나 러시아와 내통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비난받을 행동을 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다음 단계는 병력과 전력을 한반도로 보내는 일이다. 일본에 있는 로널드레이건호, 미국 샌디에이고의 칼빈슨호는 곧바로 한반도 동해로 이동할 것이다. 주일 미군과 신형 패트리어트(PAC-3) 요격미사일 포대 등은 부산항을 통해 입국한다.

미 육해공
한반도 집결

대규모 공군력 투입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동해로 투입되는 항공모함에는 F/A-18E/F ‘슈퍼호넷’ 전투기 40∼50대가 탑재돼있다. 주일 미 공군 및 미 해병대 전투기 다수도 투입될 수 있다. 미국이 동원 가능한 전투기는 200∼250여대로 추산된다.

지난 한미 연합잔적 당시 투입된 최신예 전투기 F-35B 편대도 예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대 속도 마하 1.8로 최대 항속거리가 2000㎞를 자랑하는 F-35B는 정밀유도폭탄인 GBU-31 JDAM 공대지 2발과 레이더 유도 미사일 AIM-120C 공대공 미사일 2발까지 장착 가능하다. 

무엇보다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갖춰 ICBM 발사장, 핵시설 등을 정밀 타격하기에 적합하다.


작전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하지만 크게 ▲김정은 제거 ▲핵심시설 파괴가 거론된다.

‘김정은 제거’는 북한의 ‘의지’는 물론 미래의 불안 요소까지 제거한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매력적인 수다. 그러나 실제 김정은을 제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한 소재와 동선 파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시작될 수 없는 작전이다. 

또 북한은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김정은 집무실과 노동당사 등 주요 시설을 지하 수백미터 깊이에 구축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김정은이 이 곳에 숨기 전까지 잡지 못하면, 작전은 사실상 실패하는 것이다.

제거에 실패했을 때 북한의 반격 및 전면전 발발이라는 역풍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통해 표적 제거가 얼마나 힘든 작전인지 학습한 바 있다.

공든탑 무너뜨려 테이블 앉힌다
김 표적 < 시설 타격 가능성↑

이에 실제 북폭이 실시되면 핵심시설 파괴 작전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군 핵심 시설을 정밀 타격해 미국을 위협하는 ‘수단’을 제거하는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온다는 게 이 작전의 궁극적 목적이다.

앞서 북폭 가능성을 높게 봤던 엥겔 기자는 “만약 미국이 북한 산악지대의 핵실험 장소를 타격한 뒤 즉각 ‘우리는 핵실험 장소를 타격했다. 더는 확전하지 않겠다. 하지만 북한이 서울을 공격한다면 매우 파괴적인 미국의 공격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면, 북한은 망설일까? 아무도 모른다”며 핵심시설 파괴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동의가 뒷받침됐을 때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만 봐도 북폭을 진지하게 논의했던 미국이 한국 정부의 반대로 무위에 그쳤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 “미국이 우리 땅을 빌려서 전쟁할 수 없으며 한국군의 통수권자로서 군인 60만명 중 한 사람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강력히 전달했다”고 서술했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중국 견제·아시아 균형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사드 배치처럼 한반도에 미국 전력을 배치하는 일은 한국 정부와의 협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군만으로 전쟁을 치르기 힘들다는 점도 미국의 독자적 군사 행동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북폭의 전조인 주한 미국인 철수도 결국 한국 정부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제거 VS 파괴
두 가지 전략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서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북폭은 실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선제타격을 암시해 왔던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톤도 한 단계 낮아진 상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 후 앤드루스 공군기지서 기자들과 만나 “그것(선제타격)은 미국 정부의 첫 번째 선택이 아니다”라며 “군사 행동을 제외한 다른 압박 수단을 먼저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볼 것”이라며 언제든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암시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홍준표의 마이웨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문재인정부의 대북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직접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7일 홍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서 “이 정부가 못하는 국제 북핵 관련 외교를 이젠 우리가 한 번 나서야 할 때”라며 “우리 의원단들이 북핵 전문가를 모시고 미국 조야에 가서 핵우산 의지가 있는지 그걸 확인해보러 1차로 떠난다. 조율이 되면 내가 미국을 가겠다”고 말했다.

중국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대사 측과 얘기가 거의 완료가 됐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지난 조기대선 때) 문재인 좌파 정권이 들어오면 한미일 공조가 붕괴되고 대북에 관한 정보 공유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그게 지금 현실화됐다. 5000만이 핵 인질이 됐다. 그래서 야당이라도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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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