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확신에 찬 연개소문의 표정에 모두 오백을 외치며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순간 선도해가 고구려와 당나라의 지형이 그려있는 지도를 펼쳤다.
이어 연개소문이 지형과 타격 지점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말 그대로 기습 타격입니다. 당나라의 수군 기지를 공격하고 곧바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양만춘이 가만히 그 말을 새기다가 미소를 머금었다.
“막리지께서 손수 움직이시어 당나라 오랑캐 놈들을 자극해서 고구려 영토로 유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말하였소. 당나라로서는 전혀 의외의 상황을 만들고 그들의 침입을 유도하여 고구려 영토 깊숙이 끌어 들일 참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토에서 적의 주력을 박살내고 끝까지 몰아붙여 저들을 끝장내겠소.”
“만약 저들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전운 감돌다
고정의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저들은 반드시 침공할 것입니다.”
“확신이라도 있습니까?”
“일종의 자존심이지요. 당태종이 본토까지 침범 당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본인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할 것이오.”
“하기야,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당태종이란 인물이 자존심이 강하다 합디다.”
선도해의 설명에 고정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결국 막리지께서 이번 참에 당태종을 잡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당태종뿐만 아니오. 방금 이야기한 대로 지금이 고구려 혼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그 과정에서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을 제물로 삼겠다는 의미요.”
연개소문이 주요 지휘관들에게 차후에 전개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해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고 최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요동반도로 이동했다.
그곳에 이르러 잠시 휴식 겸해서 바람의 흐름을 살피고는 한날 오후 드디어 배를 띄웠다.
육지를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행여나 일어날지 모를 멀미를 예방하고자 배와 배를 연결시켰다.
그 상태에서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며 가기를 하루가 흐르자 멀리서 산동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각 그곳에 멈추어 밤이 되기를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육지로 접근했다.
해변에 닿자 곧바로 당의 수군기지로 정찰병을 보냈다.
밤이 깊은 시각 정찰병이 적의 동태를 전했다.
고구려 군의 침입은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나대고 있고 병장기의 모습조차 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 말이 쉽사리 이해되었다.
수군,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그들이 행여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듯했다.
보고를 접한 연개소문이 해안을 따라 당의 수군기지로 이동했다.
기지 가까이 도착하여 살피자 정찰병의 말 대로 그야말로 흥청망청했다.
그 자리에서 적의 막사를 주시했다.
장군기가 흐릿한 불빛에 휘날리는 모습을 살피고 선도해와 중간 지휘관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 신호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개소문이 장군기가 흔들리는 막사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당나라 군사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현상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막사 가까이 이르자 문 앞에 앉아 졸고 있던 보초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연개소문을 주시하다 일어섰다.
“누구요!”
평소 낯이 익지 않은 연개소문의 출현에 적이 경계를 품은 듯 자세를 바로 했다.
“날세.”
뚜렷하지 않은 목소리로 답한 연개소문이 급히 병사에게 다가섰다.
병사가 가까이 다가선 연개소문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자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둘러보고는 바로 칼을 뽑아 병사의 목을 찔렀다.
고구려-당나라…일촉즉발 상황
움직인 연개소문…과연 결과는?
막 뭐라 말을 하려던 병사의 입에서 마치 술을 마셔 트림 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를 살피며 다시 신속하게 칼로 병사의 심장을 찌르고는 쓰러지는 병사의 어깨를 잡아 방금 전 앉아서 졸던 상태로 돌려놓았다.
이미 황천길에 들어선 병사를 바라보며 가벼이 혀를 차고 막사의 문을 슬그머니 젖혔다.
저만치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가까이 다가갔다.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고는 놈으로부터 술 냄새가 진동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혀를 차며 두 손으로 칼을 바로 세워 칼끝을 목젖에 올렸다.
가만히 놈이 호흡하는 모습을 살피다가는 숨을 들이 쉬는 순간에 그대로 칼을 밀어 넣었다.
잠시 뼈에 걸려 멈칫하던 칼이 이내 목을 관통하고 침대 바닥에 닿았다.
코 고는 소린지 목에 구멍이 나며 나는 소리인지 괴상한 소리가 놈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를 살피며 칼을 뽑아 다시 심장을 향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품에서 ‘대 고구려 막리지 연개소문 방문’이라 적힌 종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급히 막사를 벗어났다.
막사를 벗어나 주위를 살피자 검은 그림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하선하며 병사들에게 주문했었다.
기습타격인 만큼 소리 내지 말고 한 놈씩만 죽이고 신속하게 집결 장소로 이동하라고.
어둠속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집결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임무를 완수한 여러 병사들이 선도해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노고를 치하하고 빨리 배로 이동하라 지시했다.
“대감, 속이 후련합니다.”
군사들과 함께 바다로 나왔을 때 동풍이 불고 있었다.
선도해가 마치 바람에 얼굴을 내밀듯이 코를 벌름거리며 연개소문 곁으로 다가섰다.
“마찬가지요.”
“이제는 이세민이 직접 침공을 감행하겠지요?”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데.”
“마음에 걸립니까, 대감.”
선도해가 바다를 향하던 얼굴을 연개소문에게 돌렸다.
“워낙에 쥐새끼라 말이오.”
“그러면!”
선도해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책사. 우리가 이 날을 기다려 온 시간이 얼마요.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을 감행하여 반드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합시다.”
유신의 비애
김유신이 급히 말을 달려 춘추의 집에 도착했다.
슬금슬금 붙기 시작한 지소와의 사랑이 흡사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런 연유로 일주일이 멀다하고 압량주에서 경주까지 달려가 지소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집에 들어서자 춘추와 문희가 마중했다.
주위를 두리번 거려 보았으나 자신이 오면 멀찌감치서 말발굽 소리를 듣고 마중 나왔던 지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신이 급히 말에서 내려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오라버니, 축하해요.”
“처남, 아니 이제는 사위라 불러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여하튼 축하드립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들이신가?”
“오라버니, 무슨 일이겠어요?”
“무슨 일인데. 혹시 지소와 관련해서…….”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