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들이’ 예능 정치 득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9.04 10:29:39
  • 호수 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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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정치인? 잿밥에 더 관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예능판서 펼쳐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정치인들이 2017년 예능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지도’ ‘친숙한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예능만큼 좋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예능을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만 볼 것인가. <일요시사>는 정치인 ‘예능 나들이’의 득과 실을 살펴봤다.
 

JTBC 대표 프로그램 <썰전>은 정치가 예능의 소재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올해로 방송 4년차인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이슈를 낳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기간에는 시청률 7% 이상을 기록하며 이슈의 발원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썰전을 통해 한 주의 현안을 밀도 높게 살피고 있다.

예능 소재로
주목받는 정치

올해 <썰전>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회차는 지난 3월16일 방송된 210회 방송이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당시 8.417%(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웬만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이상의 시청률이다. 3월11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의 여파가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썰전>이 배출한 현역 국회의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썰전> 초기 멤버로 출연해 인지도를 쌓았다.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끝내고 여러 대학의 강단에 올랐다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상임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기였다. 

<썰전>서 재치 있는 입담과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지난 20대 총선서 민주당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의원이 ‘방송출연→인지도 상승→국회 입성’의 좋은 예라면 강용석 전 의원은 인지도 상승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나쁜 예다. 

강 전 의원은 이 의원과 함께 <썰전>의 초기 멤버로 출연했다. 이내 이 의원과 합을 맞추며 예능 블루칩으로 발돋움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SNL>에도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따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상처가 크듯, 강 전 의원은 한창 주목을 받던 시기 ‘도도맘’과의 불륜 의혹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스캔들에 휩싸인 강 전 의원은 이후 모든 프로그램서 하차하며 정계 복귀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인지도 ↑
구설도 ↑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약일까, 독일까. 한마디로 ‘양날의 검’이다. 소탈하고 친숙한 이미지는 과거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권위적이고 부패한 모습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정계의 범위서 생각했을 때 대한민국에 만연한 정치 불신을 완화할 수 있다는 측면서 권장할 만한 행보다.

정치인 개인적으로도 예능 출연은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과거 불명예 퇴진을 했던 정치인에게는 재기의 신호탄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중의 호응을 얻어낸다면 정계 복귀는 더욱 쉬워질 것이 분명하다.

초·재선 의원에게는 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알릴 수 있는 무대다. ‘인지도 = 재선 가능성’은 수많은 시간을 통해 증명된 정치권의 공식이다. 방송 출연 횟수 증가가 재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의정보고활동에 제약이 큰 초선 비례대표에게 예능 출연은 지역구 의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썰전>뿐 아니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의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방송가도 이런 정치인의 니즈(needs)를 알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출연이 잦았던 컨셉은 토크쇼 형태의 방송이다. <썰전>도 이러한 형태의 방송 중 하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유창한 언변으로 장시간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이다.

특히 대선과 같이 중요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때 후보들은 이러한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을 선호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썰전>에 출연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의혹을 해명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에게 “나는 전 변호사님이 저보다 선배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문 대통령 외에도 안희정·이재명·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과거에도 MBC <무릎팍도사>에 안철수 후보, SBS <힐링캠프>에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출연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방송가 찾는 의원 급증, 블루칩
토크쇼 출연 여전, 전문성 어필

TV조선의 정치 토크쇼 <강적들>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고정으로 출연한다. 새누리당 유정현 전 의원을 MC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장제원 의원, 바른정당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방송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12일 방송서 장 의원은 자신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나 자신의 위치가 많이 변한 상황”이라며 “잃어버린 신뢰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발언한 것. 최순실 사태 때 ‘청문회 스타’로 거듭났던 그였지만 ‘자유한국당 복당 사태’ ‘아들 성매수 논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채널A <외부자들>을 찾는 정치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출연해 한나라당 전여옥 전 의원과 ‘여걸 대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지난달 22일 나 의원은 북핵 사태 해법에 대해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절대무기는 절대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며 전술핵 배치 찬성 입장을 밝히자 전 전 의원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 협의체가 없는 아시아서 이는 공허한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등 신경전을 펼쳤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유력 정치인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을 시작으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민주당 추미애 대표, 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손혜원 의원, 한국당 나경원 의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등이 연이어 출연했다.

전문성→인간적
토크쇼의 변모

<냄비받침>은 앞서 토크쇼와는 컨셉이 다르다. 현안보다 정치인 개인의 인간적인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훨씬 대중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1일 방송된 손혜원·나경원 의원 편이다. 

당시 ‘정치인의 외모 비교’에 대해 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하느냐”고 손 의원에게 질문하자 “홍준표 대표보다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 의원이 “문 대통령보다 유승민, 안철수 후보가 내 스타일”이라고 덧붙이자 손 의원은 “취향이 이상하다”라고 가감 없이 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인의 자상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 <냄비받침>에 출연한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과거 민주당 추미애 대표에게 했던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추 대표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미인이었다”며 “그런데 2년 동안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등 기존 ‘스트롱맨’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친분이 있는 두 정치인이 동시 출격하는 형태도 추세 중 하나다. 최근 <냄비받침>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정치계 ‘남사친-여사친’으로 케미를 맞췄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12월 말 동남아 쓰나미 재난이 발생했을 당시 국회 시찰단으로 파견돼 8박9일 고락을 함께 나누며 동지 같은 관계가 됐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어 두 사람의 진솔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계기를 밝히는 부분에서 셋째를 출산할 당시를 회고했다.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회사 산행을 하던 중 산통을 느껴 출산했는데 회사 측이 “또 출산휴가를 쓰냐”며 화를 냈다는 것. 

워킹맘의 비애를 느낀 이 대표는 이때 정계 진출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노 원내대표는 사회자인 이경규와의 인연을 전했다. “이경규씨 친형과 잘 아는 사이”라고 운을 땐 그는 “이경규씨, 초등학교 때 많이 맞고 다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족·음악 예능까지 활동폭 넓혀
인기영합으로 재선? 부작용 우려

최근 방송가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방송 컨셉은 가족관찰 예능이다. 최근 SBS는 일주일 중 닷새 저녁에 가족관찰 예능을 편성했을 정도다. ‘가족+관찰’이라는 예능계 트렌드를 접목한 형태다. 유력 인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대표적인 가족관찰 예능 중 하나인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인 김혜경씨와의 알콩달콩한 평소 모습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발명을 얻은 이 시장이지만, 방송에서는 평범한 부부의 생활상을 보여줘 ‘성남 고길동’이라는 친근한 별명도 얻었다. 주말에 늦잠 자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이 일반 가정과 큰 차이가 없었다. 

휴가 때 제주도 풀빌라를 원하는 아내의 소망을 멀리하고 바다 배낚시를 하러 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그것과 같은 모습임을 보여줬다. 이 시장의 이 같은 예능 나들이를 지켜본 정치권 일각에선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대중성을 강화하는 행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가족관찰 예능 tvN <둥지탈출>에는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아들 기대명과 함께 출연해 정치인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유력 인사의 2세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는 SBS <미운우리새끼>의 컨버전(conversion) 형태다.

방송가의 파격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KBS 2TV <불후의 명곡> 측은 국회의원 특집을 방송한다고 밝혔다. 비록 KBS 총파업 사태로 녹화가 잠정 연기된 상태지만, 현직 국회의원의 가요 예능 출연 소식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 정당을 대표하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출연해 가수들과 팀을 이뤄 듀엣 무대를 펼치는 기획이다. 앞서 민주당 표창원 의원, 한국당 장제원 의원,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의 출연이 예정됐으나 표창원‧장제원 의원은 KBS 총파업을 지지하며 해당 프로그램 출연을 취소한 상태다.

이렇듯 예능 나들이에 나선 정치인을 두고 ‘폴리테이너 2.0’ 시대라도 한다. 폴리테이너(Politainner)는 정치인(Politician)과 예능인(Entertaniner)의 합성어다. 과거 정치권에 진출했던 연예인이 1세대라면 2세대는 정치인이 방송 프로그램을 누비는 것을 일컫는다.

폴리테이너 2세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입법기관 본업에 충실하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혈세를 월급으로 받는 국회의원이 예능 출연으로 가외수입을 버는 모습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가족예능 출연
집·일상 공개

무엇보다 자칫 정치를 ‘희화화’ 내지는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정치를 보다 친숙하게 여기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패널과 가십에만 집중하는 질문 등으로 현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들이 ‘이미지 세탁’을 위한 창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선후보의 공약, 정치인이 발의한 법안보다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정치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사항 중 하나다. 인기영합주의로 재선에 성공하는 정치인의 등장을 걱정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자유담’ 기동민 아들 화제
훈훈한 외모 “연예인 꿈 없어요”

tvN <둥지탈출>에 출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아들 기대명의 훈훈한 외모가 화제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의 이름을 따 ‘남자유담’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유담은 지난 대선기간 동안 연예인에 버금가는 외모로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남다른 외모를 가졌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연예계 진출을 노리고 방송에 출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7월10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서 “나는 연예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아무것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지금 평범한 대학생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직 연예인은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연예계 진출 노리고 방송 출연?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축

이어서 그는 “현재는 로스쿨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촬영하면서 오늘 하루 겪은 일을 공유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내일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들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한때 <둥지탈출>은 ‘연예인 세습’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력 연예인 2세들의 ‘자립 어드벤처’를 그리고 있어 방송사에서 대놓고 밀어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출연자 6명 중 연예인 지망을 꿈꾸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부모의 후광으로 쉬운 연예계 데뷔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제작자인 김유곤 PD는 발표회서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친구들과 살아보고 싶은 아이들을 선발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에게서 진정성을 봤다”며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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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20%대 지지율로 고전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에선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국면 전환용’이라고 꼬집었다. 개발 성공률 20%에 5000억원이 넘는 시추 비용을 베팅한 윤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서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희 시즌2 사업성 논란 동해 인근 석유·가스 도출 지역을 표기한 대형 스크린까지 동원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발표한 석유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극명한 평가가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쯤 윤곽이 나올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했던 안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53조원으로,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의 가치가 약 2260조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해당 소식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윤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대해 “확률이나 가능성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기대를 갖고 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고 첫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 기관이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과정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반면 야권은 ‘지지율 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석유·가스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물리탐사만으로는 정확한 매장량을 추정할 수 없고, 상업성을 확보한 ‘확인 매장량’ 규모가 실제 얼마나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 약 7년서 10년이 소요된다”고 꼬집었다. 조국혁신당의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윤 대통령은 보고를 듣자마자 바닥 수준인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보였느냐”고 지격했다. ‘1호 영업사원’ 대통령 그림은? 2260조원 잭팟? 관심 끌기용? 앞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10 총선 이후 지금까지 ‘20~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지난달 10일 발표한 ‘취임 2주년’ 지지율서도 24%를 기록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국민의힘의 윤상현 의원 등도 지난달 7일 진행된 ‘정부 2주년 평가’ 세미나를 통해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기조를 대통령이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남은 3년이 달렸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 성적은 더 비참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내부의 위기감이 상승한 분위기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함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서 ‘동해 석유’ 카드는 국민 여론을 반전시킬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오는 6~7일 공휴일 관계로 한국갤럽과 NBS(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용산에선 지지율을 만회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의 말대로 용산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 당까지 같이 타격을 입게 된다. 당정 모두 한숨을 돌린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박정희정부 때에도 시추를 착수했던 곳이다. 그러나 1975년 당시 시추공서 흘러나온 시커먼 액체가 ‘원유’라는 명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석유 발견 해프닝’으로 끝났다. 일각에선 ‘석유 매장’ 기대감이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석유의 실제 매장량을 알기 위해선 최소 5개(1개당 1000억원 소요)의 시추공을 뚫어봐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놓고 결과물이 없다면 국민적 반감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6년 1월 기자회견서 “포항서 석유가 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드러났다. 장밋빛 미래? 국면 전환용?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지난 3일 <시사인>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인’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포항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며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유전과 가스가 매장된 게 사실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박정희 시즌2’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이렇게 바닥을 친 적은 없다”며 “오죽 급했으면 포항에 유전 가능성을 (윤 대통령이) 얘기했겠나”라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이날 <조갑제닷컴>에 “윤석열의 포항 앞바다 유전 가능성 발표와 박정희의 포항 석유 대소동이 겹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전 대표는 당시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하며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 등의 기사를 통해 포항에 원유가 매장돼있더라도 극소수이거나 경제성이 없다고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조 전 대표는 글에서 “박정희는 정유를 원유로 오인, 포항서 양질의 석유가 나왔다고 발표했다”며 “윤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 대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는 걸 보고 1976년의 일이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전 발견은 물리탐사가 아니라 시추로 확인되는 것인데 물리탐사에만 의존해 꿈 같은 발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실패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표는 이튿날인 4일에도 글을 올려 “140억배럴 초대형 유전 발견이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무리가 행해질 것이고 윤 대통령의 지도력은 희화화될 가능성이 대유전 발견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항 영일만 일대는 약 반세기 전 경제성이 낮다고 포기한 지역인데,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 것은 탐사기술 개발의 진전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현재로선 추정만 있을 뿐, 시추로 확인된 것은 아닌 만큼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서 물리탐사 자료의 심층분석을 수행한 ‘액트지오’(Act-Geo) 사에 대해서도 누리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액트지오 텍사스에 위치한 에너지 컨설턴트 회사로 엑손모빌, 토탈 등 주요 석유기업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명시돼있다. 액트지오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지도를 보면 이들이 의뢰를 수행한 지역 중 한국의 동해 부분이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액트지오는 빅터 아브레우(Victor Abreu) 박사가 설립한 ‘아브레우 컨설팅’이 그 모체다. ‘액트지오’ 무슨 회사? 액트지오의 설립자 빅터 아브레우 박사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서 탐사팀의 리더로 근무하며 남미 가이아나 지역의 리자-1 유정 외에도 카스피해, 가나 지역서 석유탐사를 주도했다. 또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라이스대학교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국제퇴적학회의(IAS) 의장과 퇴적지질학회(SEPM) 회장 등 지질학 관련 학술 단체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방한한 아브레우 박사는 윤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다는 발표가 나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동해안 심해 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브레우 박사가 당시 대표로 있던 분석업체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을 맡겼다. 액트지오는 자체분석을 거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석유공사에 전달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는 지난 4일 국내 매체와 인터뷰서 “(액트지오는)이 분야의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브레우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서 <연합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서 “한국의 SNS 등에서 액트지오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아브레우 대표는 “우리는 이 업계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며 “고객사로 엑손모빌, 토탈과 같은 거대 기업과 아파치, 헤스, CNOOC(중국해양석유), 포스코, YPF(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기업), 플러스페트롤, 툴로우 등 성공적인 기업들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액트지오에 대해 “전 세계 심해 저류층 탐사에 특화된 ‘니치’(niche·틈새 시장) 회사”라며 “전통적인 컨설팅 회사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의 사업전략은 작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건물을 소유하거나 여러명의 부사장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서 일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액트지오가 주로 심해의 석유 구조 존재를 확인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일을 수행한다. 핵심 분야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업 방식에 대해 “능력을 갖춘 석유 관련 지구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이 있는데, 여러 국가를 원격으로 연결해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도 침 흘린 영일만 또 천공 그림자가 보인다 윤 대통령이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을 깜짝 발표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당 원내대책회의서 “(어제)예정에도 없는 일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브리핑을 했다”며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발표 뒤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고 주장한 유튜브 영상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천공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에 올라온 영상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라는 제목의 영상 강연서 “우리는 산유국이 안 될 것 같냐. 앞으로 (산유국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며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도 주장했다. 천공은 “(과거에는)거기 손댈 수 있는 만큼의 기술도 없었고 척도도 안 됐고, 지금은 그런 척도가 다 일어나”라며 “대한민국 밑에는 아주 보물 덩어리로 대한민국은 이 한반도는, 인류서 최고 보물이 여기 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석유 개발 발표에 지난 4일 오전 석유·가스개발과 관련된 종목들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25% 급등하며 4만8000원대에 진입했다.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 1㎞ 심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와 석유공사는 올해 말 첫 시추를 추진하며 2026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시추공을 뚫게 된다. 시추선은 이미 확보된 상태며, 첫 시추 결과는 내년 3~4월에 나올 전망이다. 이정환 전남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비유하자면 현재는 병원서 초음파 검사만 한 상황이다. 의사가 혹을 발견했는데 암인지 물혹인지는 조직검사(시추)를 해봐야 안다”며 “시추 성공률은 10%를 밑돌기도 한다. 탐사 결과가 좋게 나와도 시추는 실패할 수 있기에 성공 확률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성공 확률이)20%가 맞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면서도 “지난해 영국서 시추 계획을 승인한 게 100건이 넘는데 그 가운데 상업화까지 갈 유전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각계 반응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들은 모두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발표 조사(지난달 7∼9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의 응답률은 11.2%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다. 그후 31일 발표 조사(같은 달 28~30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의 응답률은 11.1%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