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스터피자 신사옥 의혹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8.21 10:25:47
  • 호수 1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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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변경 않고 허가부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매봉산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이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산 29-51(임야 694㎡)에 대한 개발 및 건축허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신 구청장은 이 땅의 소유자인 정우현 전 엠피그룹(미스터피자) 회장에게 지난해 9월 개발 허가, 그해 12월 건축 허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입주민들은 왜 지차제의 처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강남구 도곡동 산 29-51는 정우현 전 엠피그룹 회장이 지난 2001년 2월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매입한 땅이다. 현재 정 전 회장 및 엠피그룹은 이 땅에 신사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지하 6층, 지상 8층. 엠피그룹은 지난해 9월 강남구로부터 개발행위 허가 처분을, 그해 12월 건축 허가 처분을 받았다.

신연희 작품?

강남구의 처분에 ‘도곡공원(매봉산)을 지키는 주민모임’(매봉삼성아파트, 타워팰리스, 포스코트아파트, SK리더스뷰 등 15개 아파트 입주민으로 구성)은 신사옥 예정부지 일대에 대형 현수막을 걸고 반대했다. 또 처분을 내린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개발 및 건축허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주민모임은 예상되는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한 주민모임 관계자는 “(신사옥) 건물이 들어서면 우리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아파트 입구가 넓지가 않아 교통이 불편해진다”며 “또 건물이 들어서면 매봉산 조망이 완전히 가린다. 입주민 중에는 매봉산을 보려고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강남구에서 건축허가를 내준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모임은 강남구가 처분을 내리는 과정서 국토계획법 등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해당 토지가 ‘도곡근린공원’ 사업부지로 고시돼 있었는데, 이에 반하는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지난 1971년 당시 국토교통부장관은 매봉산 일대를 도곡근린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도시계획시설 공원사업부지로 결정했다. 2000년 이 땅을 포함해 15필지가 개발행위허가 제한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이 땅을 2001년 2월 사들인 정 전 회장은 2002년 8월 강남구에 낸 개발허가 신청이 반려되자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04년 12월 강남구의 거부처분이 부당하다며 정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도곡동 산 29-51은 개인의 땅이며 강남구가 공권력으로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법원이 도곡동 산 29-51을 개인의 땅이라고 판결내렸지만, 2016년 5월 서울시가 내놓은 고시에는 여전히 이 땅을 공원조성계획 부지에 포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고시를 통해서만 지자체의 결정·변경 내용을 알 수 있는 입주민들은 이 땅이 공원으로 조성될 것이라 기대하기 충분했다.

이에 주민모임은 설령 이 땅이 사유지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더라도 강남구가 개발 및 건축허가를 내리기 전 잘못된 고시부터 변경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주민모임 관계자는 “고시에는 이 땅이 공원부지로 돼있었다. 고시는 관(官)이 민(民)에게 우리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주는 유일한 통로다. 그게 법적인 구속이 있든 없든지 간에 (고시가 안 되면) 행정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린 알 수 없다. (강남구는) 먼저 변경된 내용을 고시를 통해 알렸어야 한다”고 전했다.

입주민들 강남구청장 상대로 소송
서울시 배제…구청 “원래 사유지”

이 땅이 공원조성계획서 제외된다고 고시된 날은 올해 4월. 엠피그룹에 건축허가를 내준지 4개월여가 지난 시점이다. 

주민모임이 올해 3월 서울시 측에 문의한 결과 “도곡동 산 29-51에 대한 공원조성계획은 향후 입안기관인 강남구에서 요청시 변경 결정할 예정”라고 회신했다. 즉 올해 3월까지 강남구는 서울시에 변경 요청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모임 측은 이러한 사실이 국토계획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 주장한다. 동법 제58조 2항에는 ‘개발행위허가 또는 변경허가를 하려면 그 개발행위가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에 지장을 주는지에 관해 해당 지역서 시행되는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다시 말해 강남구는 서울시의 의견을 물어 허가를 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그건 잘못된 주장이다. 개발행위허가는 서울시에 의견 조회를 거칠 사안이 아닌 다 위임된 것”이라며 “입주민들은 그 땅이 공원기본계획상의 진입광장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나. 그건 서울시 공원과서 공원기본계획을 잘못낸 것이다. 허가가 난 땅은 원래부터 (정 전 회장의) 사유지였고 공원조성계획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고시가 잘못된 것을 변경하지 않고 허가를 낸 부분에 대해서는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도시계획시설 공원이라고 돼있으면 당연히 반려 대상이다. 도시계획시설 부지니까”라며 “그런데 우리가 확인했을 때는 공원이라고 뜨지 않았다.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조회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추후에 그 내용(서울시가 잘못 고시한 부분)을 확인했는데 그때 수정했다. 절차상의 문제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입주민들이 공원으로 조성될 것이라 기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입주민들은 잘못 고시된 것도 고시된 것이니 (그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고시가) 잘못됐더라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오히려 상대방(정 전 회장) 입장에서 재산권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주민모임 측은 강남구의 처분에 대해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3가지를 의심한다. 첫째 (상황이) 복잡해지니 알고도 안 했다. 우리가 고시를 보고 (이 땅이 공원조성계획서) 제외된 걸 알게 되면 (강남구청에) 찾아갈 것 아닌가. 둘째 엠피그룹이 독촉하니 빨리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허가부터 먼저 내줬다. 셋째 고시를 보지도 않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도대체 왜?

이어 그는 “강남구는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 고시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강남구는) 마치 자기들 일이 아닌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된다. 지자체는 주민의 대표기관 아닌가. 특히 민선 구청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 주민들의 입장을 들어줘야 한다. 엠피그룹 측 말만 들을 게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있고난 후 10여년 동안 미뤄왔던 것을 왜 지금에 와서야 엠피그룹의 요구를 다 수용해가며 허가를 내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재판 미뤄진 이유

가맹점에 불공정행위를 일삼은 혐의로 기소된 정우현 전 엠피그룹(미스터피자) 회장의 첫 공판 준비기일이 연기됐다.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와 연고가 같은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부가 변경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015년부터 형사합의부 사건 중 재판부 소속 법관과 변호인이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는 경우 해당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사건을 재배당하고 있다. 연기된 준비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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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