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그러니까 1960년 대 중후반에 일이다. 당시 점심시간 무렵 수업이 파하면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학교 근처에 있는 야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앞서 야산으로 향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북한서 바람을 이용해 남으로 날려 보낸 삐라(전단)를 줍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우리가 북한보다 경제사정이 훨씬 월등하지만, 당시에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전을 전개하지 못한 데에는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때문이었는데, 대신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심리전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전단을 날려 보냈다.
그런 연유로 정부에선 전단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고 개인이 전단을 발견하게 되면 곧바로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다. 혹시라도 민간인이 전단을 소지하고 있다 적발되면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받곤 했다.
그런 상황서 어린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에 앞서 전단을 줍기 위해 야산으로 향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전단을 5장 정도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월간 잡지인 <어깨동무> 한 권을 줬기 때문이었다.
<어깨동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들을 위해 창간한 잡지로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경제 사정이 열악했던 당시에 잡지를 사서 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전단을 주워 책과 교환하고는 했었다.
이와 관련해 발생했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시선을 현재로 돌려보자.
요즈음도 산이나 들판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단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날을 생각하며 호기심에 몇 번 주워 상세하게 살펴본 바 있는데 북한이 제작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부했다.
북한을 가장한 남한의 이적단체들이 의도적으로 제작해 살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이와 맞물려 남한서도 보수단체와 탈북자단체 등 민간이 주도해 북으로 전단을 날려 보내고 있다. 물론 북에서 남으로 전단을 날려 보내는 데 대한 보복 차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자칫 불필요한 우발적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를 통제할 방안을 모색하라고.
이전에 민간단체가 풍선에 북한 체제 비판 등을 담은 대북 전단을 실어 북쪽으로 날려 보내면 북한 측이 풍선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사포를 쏘고 이에 우리 측이 대응 사격을 하는 과정에 군사적 긴장감이 극대화된 일을 그 이유로 들었다.
설령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해불가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대한민국 아니 남한 지역에 살포되고 있는 삐라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문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그를 모르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알고도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의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