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이 보위에 앉아있던 시절에 일화다. 당시 과거 제도에 따르면 시험관들이 급제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세 사람의 답안을 임금에게 보이고, 임금이 그들의 답안을 검토해 그 중에서 장원을 뽑도록 돼있었다. 그 과정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글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영춘추관사 하륜(河崙)·지춘추관사 정탁(鄭擢)·예조 판서 설미수(?眉壽)에게 명하여 독권(讀卷, 답안을 읽고 검토함)하게 하였다. 하륜 등이 대책(對策, 과거시험의 한 과목 또는 그때 작성하는 문장) 3통을 골라서 대언인 탁신(卓愼)에게 주어서 바치면서 “장원(壯元)은 신 등이 가히 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하니 임금이 “세 시권(試券)의 잘 되고 못 된 등급은 어떠한가?”하자 탁신이 대답했다.
“두 시권은 서로 비슷하고 하나의 시권은 조금 아래입니다.”
임금이 “내가 집는 것이 장원(壯元)이다”하고 두 시권을 바치도록 하여 능숙한 솜씨로 그 하나를 잡으니 바로 정인지(鄭麟趾)였다.』
당시 과거제도는 문과와 무과에 한해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의 3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초시는 전국서 실시되는 제1차 관문으로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치루는 과정이 복시다. 그리고 복시를 통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시가 실시됐다.
전시는 임금이 직접 참석해 복시서 선발된 문과 33인, 무과 28인의 합격자들을 재시험해 등급을 결정하는 시험으로 시제(試題)는 임금이 직접 출제하기도 하나 대개는 독권관이 출제해 왕에게 보고한 다음 시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상기서 기술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게 되는데 정인지가 장원으로 급제되게 된 내용을 살피면 그저 쓴 웃음만 나온다. 또한 이방원의 호방한 모습이 은근히 눈에 그려진다. 여하튼 소위 ‘이방원의 찍기’로 장원급제한 정인지는 조선 초기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문재인정부가 대학 입시제도 즉 대학수학능력 평가제도에 대해 메스를 들었다. 현재의 상대평가 제도를 폐지하고 전 과목에 대해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특히 한 단체는 “수능이 전 과목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변별력이 상실되어 대입 제도로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는 사실상 폐지되고 수시, 특히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대폭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전 과목 절대평가로 정시가 없어지면 흙수저 아이들과 뒤늦게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 재수생 또는 검정고시생은 역전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필자로서는 절대평가 자체가 난해하기 그지없다. 절대평가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개개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과 비교해 성적의 위치를 부여하는 상대평가 방법과 구별된다.
그런데 독단적으로 기준을 세워 절대평가를 실시하겠다니 무슨 소리인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방원을 예로 든 게다. 그냥 이거저거 따지지 말고 절대 왕조 시대에 태종 이방원이 행했던 것처럼 손 가는대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