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주주 오너 일가에 회사 차원서 고배당을 일삼는 ‘반칙’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배당 논란이 재연됐다. 변칙적으로 자행되는 ‘오너 곳간 채우기’는 좀처럼 멈춰지지 않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기획으로 고배당 논란에 휘말린 오너 일가를 짚어봤다.
부산·경남을 거점으로 하는 고속버스 운송회사 천일고속이 통 큰 ‘배당잔치’를 거듭하고 있다.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수백억대 배당금이 오가는 형국이다. 배당의 수혜는 대주주인 오너 일가를 향한다. 이사회 감시 기능마저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상식 파괴
2016회계연도 사업보고서 분석결과 천일고속은 주주들에게 약 114억원의 배당금을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1주당 배당금은 8000원이다. 이 같은 배당규모는 과하다고 평가받던 천일고속의 직전년도 배당금총액을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2015회계연도 기준 천일고속의 배당금총액은 약 85억원, 1주당 배당금은 6000원이었다. 2015년 185.02%였던 천일고속의 배당성향은 지난해 456.81%까지 치솟았다.
국내 상장사들이 평균적으로 10~20%대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총액)’을 나타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일고속의 최근 2년간 배당정책이 얼마나 과도한 수준인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배당성향은 두 배 이상 껑충 뛰었지만 배당금총액 증가율은 35.2%에 머물렀다. 이는 실적 악화 탓이다.
고속버스 운영을 주력사업을 하는 천일고속은 KTX, SRT 등 대체 교통수단이 늘어나면서 최근 수익성에 의문부호가 따르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천일고속은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주요 실적지표가 일제히 뒷걸음질쳤다.
특히 수익성의 척도인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61%, 45% 하락세를 나타냈다.
배당은 회사가 이익잉여금 중 사업에 쓸 자금을 유보한 뒤 주주가치 제고 차원서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천일고속은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서도 계속 배당을 늘리고 있어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천일고속 고배당 정책의 수혜를 온전히 누리는 대상이 오너 일가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천일고속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지분율 44.97%(64만2725주)를 기록한 박도현 사장이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박 사장에 이어 박주현 부사장(37.24%, 53만2253주)이 5% 이상 지분을 확보한 주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배당 8할 이상 오너 일가 몫
400% 초과한 미친 배당성향
이외에도 박 사장의 아버지인 박재명 전 사장과 동생 정현씨 앞으로 각각 1.22%, 2.31%의 지분이 있다. 오너 일가 지분율 총합은 85.74%(122만5467주)에 달한다. 배당금의 8할 이상이 오너 일가 4인에게 귀속된 것이다.
지분율을 토대로 계산한 지난해 오너 일가 배당금 수령액 총합은 약 98억이다. 박 사장이 51억4180만원으로 가장 많고 박 부사장(42억5802만원), 정현씨(2억6383만원), 박 전 사장(1억4008만원)이 뒤를 잇는다.
반면 천일고속 전체 주주수의 99.69%를 차지하는 소액주주들(1646명)은 회사 주식의 14.21%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수령한 배당금 총합은 약 16억2602만원에 그쳤다.
2015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당시 오너 일가 4인에게 귀속된 배당금의 총합은 73억5273만원이었다. 개별 지분율만 조금씩 변동이 있었을 뿐 4인이 보유한 주식수와 지분율의 총합은 지난해와 똑같았다.
올해 역시 고배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지난 5월11일 천일고속은 1주당 배당금 3000원의 '분기배당'을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1분기만 놓고 볼 때 배당금총액은 42억8100만원, 배당성향은 무려 3001.81%다.
분기배당 결정은 올해 1분기 실적이 악화된 가운데 내려진 조치였다. 1분기 매출은 139억원으로 지난해 144억원에 비해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2억원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됐다. 당기순이익은 9억원서 1억4000만원대로 대폭 축소됐다.
분기배당은 건 오너 일가가 쏠쏠한 배당금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배당금총액(42억8100만원) 가운데 36억7640만원이 오너 일가의 몫이다.
천일고속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배당을 거듭하는 것을 두고 증권업계는 오너 일가 증여세 재원 마련과 연결 짓는다. 천일고속 창업주인 박남수 명예회장은 2015년 4월 명의신탁으로 보유하고 있던 98만2944주(지분율 68.8%)를 실명 전환해 손자인 박 사장(37.1%)과 박 부사장(31.8%) 형제에게 전량 증여했다.
회사 주식을 물려받은 형제가 납부해야 할 증여세는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증여세를 납부하기 위해 천일고속이 지속적인 폭탄배당을 거듭한다는 분석이다.
진짜 노림수는?
공교롭게도 천일고속이 배당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무렵이다. 2011년 2년 이후로 약 5년 간 한 차례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천일고속은 두 손자가 차명주식을 넘겨받은 2015년 말부터 배당에 적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