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잔을 든 연개소문이 우렁찬 소리로 외치자 일제히 잔을 들었다.
“불행하게도 일부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고구려 혼을 좀 먹어 부득불 일을 도모했었다. 나 연개소문은 고구려 사람이다. 이제 나 연개소문은 오직 우리 고구려의 혼을 지키는 일에만 신명을 바칠 것이다. 또한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도 고구려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별개가 아닌 한 몸으로 떼어놓을 수 없는 팔과 다리나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자, 이 술을 당나라 놈들의 피로 생각하고 모두 한 번에 비워내자!”
돌아온 사신
모두가 함성을 내지르고 잔을 비워냈다.
잔을 비운 연개소문이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감, 왜 장수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셨는지요?”
말단 병사들과 부자지간처럼 혹은 형제처럼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잠시 쉬는 사이 선도해가 다가섰다.
“병사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소. 바로 직속상관들이 곁에 있으면 술 맛 나겠소?”
선도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연개소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또한 막리지께 직접 충성심을 유도하고요?”
“책사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일석이조 아니오.”
연개소문의 청에 따라 보장왕이 당나라에 보낸 사신 일행이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궁궐에 들어갔다.
궁에 들자 이미 도착한 선도해와 함께 보장왕이 사절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갔었던 일은 잘되었는가?”
보장왕에게 가볍게 고개 숙이고 사절 단장인 주탁에게 말을 건넸다.
“대체로 대감의 전략이 성공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대체로라니?”
“당 태종이 대감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라, 미친놈일세.”
“대감께서 영류왕을 죽이고 새로운 권력을 중심으로 당나라와 적대관계를 형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 요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경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정벌하겠다는 엄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라니!”
“그런데 잠시 후 당나라가 아니라 거란족과 말갈족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게 하겠다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거란과 말갈. 그래서 쳐들어오겠다는 말인가 뭔가?”
연개소문이 보장왕과 선도해를 번갈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장손무기라는 신하가 만류하고 나섰고 결국 없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장손무기, 그놈 이름 값하네.”
말을 마친 연개소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장손무기의 말을 경청하고는 ‘먼 나라를 위로하는 일은 전대 제왕의 아름다운 법이요, 대를 잇는 의리는 여러 왕대의 옛 규례이다. 고구려 국왕 장(臧)은 재능과 생각이 아름답고 민첩하고, 식견과 도량이 치밀하고 바르며, 일찍이 예절과 교육을 익혀 덕망과 의로움이 알려졌다. 처음 번방(藩邦, 오랑캐 나라 또는 제후국)의 왕업을 계승하여 정성을 먼저 드러냈으므로, 마땅히 작위를 더하여 예전의 사실을 인정하여 상주국 요동군왕 고구려왕을 준다’ 하였습니다.”
“허허, 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일세.”
“여하튼 저희 전략은 성공한 셈입니다.”
“그러면 되었군. 그래, 도교 문제는?”
“당태종이 그와 관련해서 상당히 흡족해 했습니다. 게다가 도사 여덟 명과 노자의 도덕경을 보내주었습니다.”
“도덕경이라면 도가의 경전 아닌가?”
당나라 사절단 귀국…드러난 의도
근심 커진 선덕여왕…신라 대책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태종이란 놈이 무슨 의도로 그리 친절하게 대했다는 말인가?”
“명분을 살리겠다는 의미 아닐까요?”
가만히 대화를 경청하던 선도해가 나섰다.
“오랑캐 놈들 주제에 명분이라니요?”
“그럴수록 명분에 치중해야지요.”
“하기야 근본이 그러니.”
연개소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장왕을 바라보았다.
“막리지 대감, 당에서 온 도사들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
“전하, 책사로 하여금 그들을 한 군데에 모아 놓고 감시 겸 함께 연구하도록 하심이 가한 줄로 아룁니다.”
“그러면 그리하도록 하시지요.”
연개소문이 미소 지으며 선도해에게 시선을 주었다.
“선 책사, 그 놈들이 행여나 그를 빙자해서 세작 노릇 할지 모르니 각별히 유념하시오.”
“물론입니다, 막리지 대감!”
염종이 당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다음날 조정회의가 열렸다.
물론 염종의 임무에 대한 결과를 보고 받고 그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염종 공은 경위를 설명해 보세요.”
좌석이 정리되자 선덕여왕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염종이 편치 않은 표정으로 헛기침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태종을 직접 알현하고 백제가 그간 대야성을 비롯하여 사십여 개의 성을 빼앗은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울러 고구려와 연합하여 입조하는 길을 끊으려 한다는 부분도 말씀드리고 군사를 보내 구원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야 이미 모두 아는 일이고,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알천이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자 춘추가 아무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염종이 기세등등하게 신라를 떠나던 날 마치 춘추가 그랬던 것처럼 달랑 맨손으로 당나라로 향했다.
이미 당나라와는 순조로운 관계이니 만큼 반드시 일을 성공시키고 돌아오겠다며 호언장담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춘추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충고를 곁들였었다.
비록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국가 간의 관계 특히 병력을 움직여야 하는 일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를 세우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이미 춘추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염종은 오기를 부리며 무시하고 당으로 들어갔었다.
당나라의 우려
“당나라 황제가 먼저 우려를 표했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로부터 침략 받는 일을 매우 애처롭게 여겨 자주 사신을 보내 그를 지양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백제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소?”
“아닙니다. 그리고는 신라의 대책을 물었습니다.”
“대책을 묻다니요. 어떻게?”
“구원을 요청하는데 오히려 대책을.”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