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수기? 뜨거운 분양시장

분양시장서 여름은 비수기지만 올해는 유례없이 성수기를 맞을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장마와 휴가철이 겹치는 여름엔 건설사들이 분양을 잘 하지 않지만, 지난해 말 11·3대책과 조기 대통령 선거 등의 변수로 분양을 늦춰온 단지들이 한꺼번에 분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6~8월에만 전국서 총 7만1087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6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20.3% 증가한 4만1282가구의 분양이 이뤄졌다. 특히 올 여름 분양하는 단지들 중에는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알짜 단지’들이 몰려 있어 여름 분양시장이 한층 더 달아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선호도 높은
알짜 단지들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첫째 주만 해도 전국 13개 단지서 아파트 총 9472가구가 분양에 들어갔다. 6월 전체 분양 물량은 4만1282가구에 이른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5월 분양 물량이 1만7000여가구에 그쳐 예년 수준(4만여 가구)을 크게 밑돌면서 5월 분양 예정 물량이 6월로 넘어온 탓이다. 물량뿐 아니라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알짜 단지들이 몰려 있다는 점도 여름 성수기의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분양에 나선 알짜 단지로는 서울 서초구 ‘신반포 센트럴자이’,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 강동구 ‘고덕 센트럴푸르지오’가 꼽힌다. GS건설이 신반포6차를 재건축해 공급하는 신반포 센트럴자이는 총 757가구 중 145가구가 일반분양된다. 효성이 공급하는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는 총 1140가구 중 687가구가 일반분양될 예정이다.

 

서울 내 가장 가파른 매매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강동구에선 대우건설의 고덕 센트럴푸르지오가 공급되는데 총 656가구 중 509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이다. 강동구의 경우 이미 분양한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에 이어 고덕 센트럴푸르지오, 연내 분양을 앞둔 고덕주공 3단지(4066가구), 고덕주공 5단지(1745가구)까지 대형 단지들이 줄줄이 신규 분양을 앞두고 있어 매매가 상승을 좌우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유례없는 7~8월 성수기 전망
조기 대선에 11·3대책 변수

6월에 비해 분양 물량이 줄어드는 7~8월에도 알짜 단지 분양이 이어진다. 서울 강남구 개포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해 2296가구 대단지로 재탄생하는 ‘래미안 강남포레스트’가 그중 한곳이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주공 3단지를 재건축해 공급하는 대림산업과 현대건설의 컨소시엄 단지도 분양 예정이다. 

강북의 아파트 매매가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마포서도 SK건설의 공덕 SK리더스뷰가 분양에 나선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8단지를 재건축한 한화건설 ‘노원상계 꿈에그린’과 롯데건설이 경기 의왕시에 공급하는 ‘오전가구역 더샵 롯데캐슬’역시 분양을 앞두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조기 대선이 치러지다 보니까 통상 봄 분양 때 나와야 할 물량들이 대선 이후로 미뤄진 데다 올 하반기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서둘러 여름에 분양하는 단지들이 많다”며 “최근 분양한 단지들이 분양 성적이 좋은 데다 정부가 8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해 규제가 나오기 전 ‘허니문’기간에 분양을 하겠다는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캉스 시즌을 앞두고 휴가도 즐기면서 휴양지 주변에 숨어 있는 유망 부동산 상품을 함께 둘러보는 ‘휴(休)테크’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올여름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는 관계로 더욱 관심이 높다. 
 

여기에 주 5일제 정착과 함께 주말 휴식을 위한 세컨드하우스를 찾는 수요자들도 늘어나 레저형 수익부동산이 틈새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레저형 수익부동산은 비수기에는 휴양레저용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성수기에 임대를 놓아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본인이 레저용 주택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임대해 수익을 올리기에 활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레저형 수익부동산으로는 콘도, 펜션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에는 관광지 중심으로 임대형 아파트나 레저형 오피스텔, 수익형 호텔 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방 휴양도시나 관광지 안에 있어 콘도나 별장처럼 사용하면서 임대사업도 가능하다. 레저형 오피스텔은 최근 부산 해운대 일대와 강원도 속초, 제주도 등지서 선을 보이고 있다. 


산과 강, 바다를 끼고 있는 국내 휴양지와 관광지 주변의 소형 아파트들도 틈새 수익형 부동산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서 가까운 경기도 일원과 강원, 부산, 제주 등 인기 관광지 근처의 소형 아파트를 사들여 본인이 사용하기도 하고 휴가철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단기 임대를 놓기도 한다.

잇달아 분양
어디 노려볼까

아파트라 이용관리가 수월하고 전원주택이나 펜션 등에 비해서 매입과 양도가 쉽다는 것이 장점. 경기도 양평, 가평 일원의 소형 아파트들은 관광지도 가깝고 교통편이나 레저 환경이 우수해 인기가 높다. 서울서 지척인 데다 중소형 아파트를 2억원 이내서 구입이 가능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교통망 확충 등 다양한 개발 호재도 기대할 수 있는 강원도에는 춘천, 원주를 비롯해 스키장이 밀집한 평창과 동해안을 따라 해수욕장 인근의 아파트를 눈여겨볼 만하다.

여름철 해양스포츠와 겨울 스키시즌의 수요를 고루 확보할 수 있고, 1억원 안팎서 구입할 수 있는 초소형 아파트도 적지 않다. 부산의 광안리나 해운대 인근의 아파트들도 바다 조망과 가까운 해수욕장이 장점으로 꼽히는데 상대적으로 아파트 분양가가 최근에 많이 올랐다.

휴가를 이용해 관심이 가는 부동산을 살펴보려면 미리 현장서 확인할 사항들을 체크리스트로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현지 지인 또는 주민이나 중개업소 등을 통해 실제적인 정보와 조언을 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거리상 직접 관리하기 어려우면 현지에 적당한 관리 업체가 있는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투자 여부를 검토할 때는 휴양지, 관광지로서의 입지와 관광객 수요가 충분해 임대 사업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두루두루 많은 곳을 골라야 공실 위험이 적고 임대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콘도리조트 형태의 호텔인 경우 500만원대 실속형 상품은 물론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급형까지 임대수익까지 얻을 수 있는 상품 등이 잇달아 나오면서 실수요는 물론 투자자까지 가세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저렴한 실속형 상품의 등장이다. 대개 풀구좌(2명에게 공급)로 나오는 단독주택형 고급 리조트서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다구좌(여러 사람에게 공급) 상품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레저와 임대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상품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계약자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문관리업체가 호텔로 운영해 임대수익을 내는 것이다.

요즘 레저형 수익부동산의 또 다른 특징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으로 해당 콘도리조트·호텔뿐 아니라 골프장이나 워터파크(물놀이장) 이용 혜택을 주는 것이다. 레저형 수익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주의해야 사항이 적지 않다. 시행사(개발업체) 능력과 운영 주체를 잘 따져봐야 한다. 시행사의 자금력 등이 떨어지면 공사 자체가 멈출 수 있고, 회원제 분양권의 입회금을 돌려받기도 어렵다. 

휴가철 불구하고 열기 후끈
레저형 수익상품도 주목

회원제의 경우 대개 7년, 10년 등 기간 만료 후 입회금을 모두 돌려받는다. 리조트호텔은 특히 관리운영회사의 능력이 중요하다. 운영 노하우가 없는 회사가 맡으면 운영 수익을 내기 힘들다. 호텔이나 리조트는 짓는 것보다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투자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완공 후 운영 주체가 어디인지, 믿을 만한지 등을 꼭 따져봐야 한다.

수익형 호텔에는 관광호텔과 분양형 호텔이 있다. 관광진흥법을 적용받는 관광호텔은 부대시설의 수준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공중위생관리법과 건축법 적용 대상인 분양형 호텔은 부대시설에 대한 기준이 없다. 

분양형 호텔은 투자자가 직접 운영 관리할 필요가 없고 임대주택처럼 직접 임차인을 구하는 번거로움도 적다. 위탁관리를 맡기기 때문이다. 객실별로 등기분양도 받을 수 있다. 중도금 무이자 대출 등으로 투자 부담도 적다. 연 수익률 확정 보장을 내건 곳도 많다.
 


숙박시설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투자자는 해당 시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중도금 대출과 연간 이용기간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텔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객실 점유율과 부대시설 활용으로 나뉜다. 제주의 경우 객실 점유율이 80%를 웃돌기도 한다.

하지만 호텔 매출은 객실 점유율 55%, 부대시설 45% 정도로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 객실 점유율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관광객 등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해야 한다. 부대시설에는 연회장·식당·피트니스센터 등이 있다. 

부대시설을 운영자가 직접 관리하는지, 아니면 일반에 매각하는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객실 점유율이 다소 낮더라도 부대시설 매출이 안정적으로 발생해야 투자자에게 적정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과잉으로 경쟁이 심화될 수도 있다. 제주서 분양을 했거나 준비 중인 분양형 호텔은 20여 곳에 달한다. 시류에 편승한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체들이 제시하는 수익률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해당 지역의 객실 이용료가 과다 책정됐을 수도 있다. 1년이 지난 뒤 확정수익 보장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도 확인 사항이다.

분양형 호텔은 위탁법인에 모든 임대관리를 맡기고 객실 매출에 따른 수익을 지급받는 형태다. 호텔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운영업체가 성패를 좌우하는 이유다. 투숙객 유치능력이 좋은 위탁업체를 고르는 것이 투자 포인트다. 

아직 허니문
“빨리 털자”


한 전문가는 “레저형 수익 부동산은 무턱대고 찾아 나서기보다 사전에 지역 개발 재료나 분양 정보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떠나면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다”며 “실제 현장이나 실물을 보고 확인해 봐야 할 체크리스트를 미리 작성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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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