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확률상 지고야 마는 게임, 도박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인간쓰레기? 나, 김동이는 반드시 다시 일어 난다’
■ 도박으로 잃은 5억
그렇게 한 순간 좌초했던 나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이었던 배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200만원만 빌려주면 며칠 뒤에 400만원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며칠 만에 200만원이 갑자기 400만원이 된단 말인가. 그런데 배진이는 정말로 며칠 뒤에 400만원을 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또다시 주말에 2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고, 월요일날 300만원을 돌려줬다.
“야, 배진아. 너 어떻게 하는 거냐?”
처음에 배진이는 제대로 말을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배진이의 놀라운 재주는 계속됐다. 여러 번 물어본 결과 배진이는 ‘도박’을 한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경마였다.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그런 배진이에게 실망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박에 빠져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배진이가 경마장으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도박은 나쁜 것, 인생 패륜아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딱히 할 것도 없는 상태에서 머리나 한번 식히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는 택시에 몸을 싣고 있었다.
처음 본 경마는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사람들의 함성 소리, 그리고 짜릿한 배당금. 나는 처음 그곳에 간 순간부터 경마의 매력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문제는 돈을 잃어가는 횟수가 많을수록 점점 더 오기가 생겼다는 데 있다. 경마에 이어 경정, 경륜에까지 손을 뻗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도박장으로 출근을 하다시피했다. 그때만큼은 일을 한다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힘들게 술을 마셔가며 여자들과 떠드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처럼 생각됐다. 이렇게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어두침침한 밀폐된 방에서 그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만큼 돈을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통장 잔고는 점점 더 줄기 시작했지만 나는 마지막 남은 200만원을 들고 또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승률을 확신했지만 허탈하게도 남은 200만원마저 모두 잃었다. 나는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남은 것은 BMW. 승부욕이라는 것은 때로는 좋은 것이지만 또 때로는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차를 몰고 강원랜드로 향했다. 사북의 차가운 겨울만큼이나 내 마음도 얼어 있었다. 호스트빠 선수 시절 가끔씩 재미삼아 블랙잭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강원랜드는 나의 구세주인 것처럼 생각됐다.
‘이곳에서 그간 잃었던 돈을 모두 되돌려 받을 테다!’
물론 처음에는 제법 많은 돈을 땄다. 이런 식이라면 하루에 몇 백만원 따는 것은 일도 아닌 것 같았고, 그렇게 몇 달만 지나면 이제까지 잃었던 돈을 모두 다 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개월 후, 나는 또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얼마간 땄던 돈도 모두 잃어버리고 BMW마저 차대출로 날려먹었다. 사채업자에게 3000만원을 빌려 다시 강원랜드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돈도 모두 일주일 만에 잃고 말았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도박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누나에게 1000만원을 빌렸다. 결과는 마찬가지. 다시 열흘 만에 돈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수많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도박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떤 도박이든 결국 게임의 룰 자체가 지게끔 설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확률상 반드시 지고야 마는 게임, 그것이 바로 도박인 것이다. 그래서 도박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을 잃게 되어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도 돈을 잃기 위해 도박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5억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전부 다 잃고 난 뒤였다.
■ 에덴에서 YX클럽으로
모든 것을 다 잃은 내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박에 빠져 있었던 지난 1년간 나는 돈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까지 모두 잃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심정으로 한강을 찾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절망의 시간을 오갈수록 더욱 더 강렬하게 나의 뇌리를 자극하는 것은 ‘나, 김동이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자신감이었다.
지금 급한 건 빚부터 갚는 일이었다.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름 아닌 마이낑을 다시 받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그 누구도 나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때의 나는 ‘인간쓰레기’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행운의 여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청담동의 모 호스트빠 업주와 미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나보다 세 살 아래의 업주였지만 사업적인 수완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가 마이낑의 액수를 물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했다. 이제 나는 바닥이었기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이낑은 7000만원입니다. 물론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또 안 된다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자신감만큼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배포 크게 이야기했다.
“좋습니다. 그럼 김동이씨를 한번 믿어보도록 하죠.”
그가 운영하고 있던 청담동의 에덴이라는 호스트빠는 애초에 나이트클럽의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17개의 룸과 무대, 그리고 홀은 당시 국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공간을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어떻게 현재의 이 업소를 성공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였다. 장고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여성전용 나이트 클럽’이었다. 사업제안서를 들고 업주를 찾아가자 그는 반색을 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김동이씨!”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