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노순택은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서 열린 개인전 ‘비상국가Ⅰ’을 통해 분단 체제가 만든 남북한의 비틀린 긴장과 갈등상태를 사진 언어로 펼쳐낸 바 있다. 작품은 이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립아트센터 라비레이나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 ‘비상국가Ⅱ-제4의 벽’은 비상국가Ⅰ의 문제의식을 따르되 지난 10년 사이 새롭게 벌어진 사태들의 그늘을 비추는 신작 위주로 구성됐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은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봤어도 인식하지 못한 사회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사진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는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세월호 참사, 노동자 고공 농성, 광화문 촛불 시위 등 지난 10여년의 상황을 담았다. 특히 경찰력으로 상징되는 국가와 그에 저항하는 이들의 긴장을 곳곳서 느낄 수 있다.
사회를 보다
아트선재센터가 노 작가의 개인전 ‘비상국가Ⅱ-제4의 벽’을 개최했다. 관객들은 아트선재센터 2∼3층서 노 작가의 작품 2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전시에 맞춰 동명의 도록을 출간하고 큐레이터 토크와 아티스트 토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노 작가의 작업 세계에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전시제목 ‘비상국가’는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로부터 빌려온 개념이다. 슈미트는 나치 집권에 사법적 외관을 씌워준 인물로, 수권법 이른바 비상사태법 제정에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의 저작물은 좌우를 막론하고 근대국가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용산 참사·천안함·세월호
10년간 한국서 일어난 사건
노 작가는 비상국가라는 개념이 식민지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항구적 비상사태에 놓인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해왔다.
슈미트의 유명한 명제 “주권자란 예외적 상태서 결단할 수 있는 자며 헌법을 수호하려는 자는 헌정 밖에서 헌정을 수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군사쿠데타로 얼룩진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또 “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배신의 정치와 헌정 농단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는 유럽서 열렸던 비상국가Ⅰ보다 더 깊게 사회 내부를 비춘다. 두 전시의 시간적 간격 사이에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통치 시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근대국가가 자신의 권력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동원해 온 경찰력의 풍경을 담은 비상국가 시리즈의 새 작업과 더불어 ‘남일당디자인올림픽’ ‘검거’ ‘현기증’ ‘가뭄’ ‘가면의 천안함’ ‘강정-강점’ ‘고장난 섬’ ‘거짓으로 쌓아올린 산’ 등의 새 시리즈를 선보인다.
공권력-저항자 긴장
사회 깊은 내부 조명
제4의 벽은 연극 무대를 하나의 방으로 상정했을 때 배우와 관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뜻한다. 노 작가는 “어쩌면 남북한의 경계선은 서로의 극단적 연극 상황을 보여주는 제4의 벽은 아닌가”라며 “이 벽은 한국 사회 내부로도 향해 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사회 현실은 분명코 현실이되 믿기 어려울 만큼 연극적이어서 초현실,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적 무대와 벽의 안팎서 관객들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노 작가는 분단이 파생시킨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글쓰기를 병행해 왔다. 그 과정서 2012년에는 동강사진상을, 201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지난해에는 구본주예술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깊어진 작품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관장, 독일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한스 D. 크리스트,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신보슬의 협력 속에서 마련됐다. 특히 한스는 노 작가의 2008년 독일, 2009년 스페인 순회전을 기획한 큐레이터다. 핫제 칸츠서 출간된 <State of Emergency(비상국가)>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전시는 8월6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노순택은?]
1971년 3월1일, 서울생
▲전시
‘새’ 토탈미술관(2009)
‘비상국가’ 라 비레이나(2009)
‘비상국가’ 아트에이전츠 갤러리(2008)
‘비상국가’ 뷔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2008)
‘붉은 틀’ 갤러리 로터스(2007)
‘노순택 개인전’ 조흥갤러리(2006)
‘얄읏한 공’ 신한갤러리(2006)
‘분단의 향기’ 김영섭화랑(2004)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
제11회 동강사진상(2012)
올해의 독일 사진집상 은상(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