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선도해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
“막리지 대감께서는 백제가 당나라의 권고를 무시하고 신라의 당항성을 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신라가 당나라에 조공품을 바치는 중요한 거점인데.”
연개소문이 가만히 그 말을 새기다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백제의 진정을 살피고, 물론 턱도 없는 소리지만 생색만 내고 빠지자는 이야기입니다.”
생색 내기
“결국 말이 그리 되는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시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라에 있는 우리 세작들 바빠지게 생겼소이다.”
연개소문이 한마디 덧붙이자 웃음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하온데, 막리지 대감.”
웃음소리가 서서히 멈출 즈음 선도해가 은근한 투로 연개소문을 불렀다.
“또 있습니까?”
“이제 고구려가 당나라를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리라는 확고한 의지를 신라나 백제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러겠지요.”
“이제는 방식을 달리해야 합니다.”
“달리하다니요?”
“두 나라, 특히 신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당나라에 고할 거란 말이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무엇을 말이오?”
“당나라와 일시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전쟁을 준비하면서 어찌.”
“물론 당분간입니다. 그 방법이 의외로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신라 놈들의 고자질이 무색하도록 만들면서 내실을 기하자는 이야기로 들리오.”
“그런 연후에 당항성이 아닌 신라 국경 몇 군데를 건드려 당나라 놈들을 자극하고요.”
“거 김춘추인가 뭔가가 약속한 땅 말이오.”
답을 한 연개소문이 힘차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감, 이럴 수 있소!”
염종이 비담의 집을 방문하여 대면하자마자 목청부터 높였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그 무슨 소린가?”
비담이 차분하게 말하며 손짓하자 염종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 잡았다.
“소식 듣지 못하셨습니까?”
“무슨 소식 말인가?”
“지금 김춘추 이놈이 제 자리를 빼앗기 위해 장난치고 있다 합니다.”
“자네 자리를 빼앗다니! 무슨 소린지 좀 찬찬히, 상세하게 말해보게!”
“이놈이 김유신을 압량주 군주로 삼기 위해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뭐라!”
“아니, 대감께서는 이곳에 계시면서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셨습니까?”
염종의 힐난에 비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쥐새끼들이!”
“무슨 일인데요?”
이제는 염종이 차분했다.
“이 놈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근처에 가기만 하면 쉬쉬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결국 그 이야기였네.”
“그런데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까?”
“이 사람아. 정상인이라면 그런 추측이 가능하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는 달리 생각하고 있었네.”
“달리라니요?”
드러난 김춘추 속셈은?
김유신, 압량주 군주행?
“금번에 김춘추 그 놈이 고구려에 다녀오지 않았는가?”
“그랬지요.”
“호언장담하고 갔던 놈이 어떻게 돌아왔는가?”
“그야 빈손으로 돌아왔지요.”
“바로 그 말일세. 그래서 단순히 그 놈을 치죄하지 못하도록 모사를 꾸미는지 알고.”
“허허 참, 어찌 그리 안일하시게.”
염종이 말하다 말고 비담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이 사람아. 그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제 밥그릇도 챙기지 못한 놈이 어찌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가. 그게 가당키나 한가!”
“하기야 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그 짓거리하고 돌아다니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염종이 허탈한지 혀를 찼다.
“자네 자리를 빼앗아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든가?”
비담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며 염종을 주시했다.
“김유신을 중심으로 그곳을 군사요충지로 만들겠답니다.”
“군사요충지라니. 국경 부근도 아니고 경주 근처에.”
“그는 핑계에 불과하고 결국 그 두 놈이 이제부터 서서히 신라를 말아먹겠다는 속셈이지요.”
“신라를 말아먹는다!”
“경주 근처에서 병권을 장악한다는 의도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뱀눈을 한 비담이 염종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어느 정도까지 진행 중이라던가?”
“압량주에 있는 제가 어찌 상세한 내용까지 알겠습니까. 그저 김춘추 이 쥐새끼가 저를 쫓아내고 김유신을 앉히려 작업하고 있다는 정도지요.”
“그렇다면 이미 여주와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이야긴데.”
“여주와도 말입니까!”
“그러니 공론화 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허허, 참!”
“귀도, 생각도 얇으니 하자는 대로 또 솔깃했겠구먼.”
비담이 말하다 말고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두고만 보실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그런데 말이네.”
“말씀하시지요.”
“여자가 왕위에 앉아 있는 일을 어찌 생각하는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허면?”
혼란한 정국
“말도 안 되지요. 그동안도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갔는데 하는 짓거리가 그게 뭡니까. 만날 이상한 짓에만 신경 쓰는데다 퍼뜩하면 남에게 의지하려 들고. 여하튼 작금의 상황만 보아도 그렇지요. 신상필벌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라꼴이 뭐가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염종이 빈정댔다 소리쳤다 하면서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우리 전략을 새로운 방향으로 잡아야겠네.”
“새로운 방향이라니요?”
“여주의 치부를 드러내어 공략하자 이 말일세.”
“예를 들면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