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배정철 사장의 인생은 ‘어도’ ‘기부’ ‘가족’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일식당 ‘어도’의 사장으로 20년 넘게 살았고, 20년째 기부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족을 위해 3000일 넘게 손편지를 쓰고 있다. 식당의 주인, 소외된 사람들의 후원자, 한 가정의 가장 등 1인3역을 하느라 정신없는 배 사장의 바쁜 인생을 들여다봤다.
점심시간을 피했지만 ‘어도’는 여전히 분주했다. 직원들은 손님이 빠져나간 자리를 정리하고 새 손님을 받기 위한 준비로 정신없었다. 배정철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으로는 재료를 손질하면서 눈은 손님을 좇느라 바빴다. 배 사장의 붉은 유니폼에는 ‘어도 조리부장 배정철’이라는 이름이 실로 새겨져 있다. 유니폼은 풀을 먹여 다림질한 듯 구김 하나 없이 빳빳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정갈하게 빗어 넘긴 모습에서 24년간 일식당 어도를 꾸려온 장인의 면모가 드러났다.
영원한 조리부장
1962년 전남 장성군서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배 사장은 가난과 싸우느라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생의 전환점은 32세, 어도의 주인이 되면서 찾아왔다. 배 사장은 이 시기에 결혼을 하고, 미국에 살고 있던 ‘엄니’도 모셔왔다.
막내아들의 요청에 어머니는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고 태평양을 넘어왔다.
“어릴 때는 결혼하고 엄니께 따뜻한 밥 한번 해드리는 게 소원이었다”며 “엄니께서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오래 사실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올해로 103세가 된 그의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셋,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어도 개업일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손님들과 약속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배 사장의 일과는 새벽 5시30분 수산시장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하루 동안 사용할 재료를 고른 후 어도에 출근한다.
최근에는 수산시장과 출근 사이에 운동시간을 끼워 넣었다. 헬스, 필라테스 등 매일 1시간30분 정도 운동에 투자한다. “운동은 일을 오래기 위한 수단”이라며 “강사들에게 ‘앞으로 20년 더 일해야 하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출근하고 난 뒤에는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뜰 때까지 쉴 틈이 없다. 경로당 노인들을 초청해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일을 한 달에 10회 정도 진행한다. 경조사 참석은 물론, 초밥이나 도시락을 만들어 보내는 일도 많다.
일요일에는 직원들이 쉬기 때문에 배 사장의 역할이 더 커진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시간을 쪼개 써야 할 정도로 바쁘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등 바쁜 시간을 피해 그의 집무실이나 다름없는 ‘1호실’서 20∼30분씩 쪽잠을 자는 게 휴식의 전부다. 지방과 서울을 동네 오가듯 왔다 갔다 하는 일도 빈번하다.
24년간 하루도 안 쉬고 식당 열어
가족과 시간 못 보내 미안한 마음
가족들이 서운함을 느낄 법한 일정으로 30여년을 살아온 셈이다. “누군가는 내 삶이 매우 특이하다고 말한다”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움직이는 삶”이라고 전했다. 이어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식당 문을 열기 때문에 가족들하고 마음 편히 놀러가본 적이 없다”며 “가족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가족들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손편지’.
배 사장은 인터뷰 도중 큰 가방을 하나 가져왔다. 가방 속에는 두꺼운 노트가 여러 권 들어 있었다. 한 권의 노트는 가족 한 사람에게 쓰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는 매일 아내, 두 아들과 딸, 어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다. 일정 때문에 그날 편지를 못 쓸 경우에는 다음 날 두 통을 쓴다”며 “3000일이 넘은 것 같다”고 자랑스레 얘기했다.
지난해에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묶어 <엄니는 102살>이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편지를 본 지인이 책으로 만들자고 몇 달을 요청한 끝에 이뤄진 일이었다. 책은 ‘애끓는 사모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를 향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했다.
배 사장의 어머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가 출근할 때 현관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고 한다. “엄니가 지난해에 비해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며 “그래도 출근할 때 나와보려고 하실 때마다 감사하다”고 했다. 어머니와 가족 얘기를 꺼내자 배 사장의 눈가는 금세 붉어졌다. 그러면서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어릴 때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면 의정부에 사는 엄니를 찾아가 그 옆에서 자곤 했다”며 “죽을 생각을 갖고 수면제를 사 모을 정도로 힘겨웠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내가 일할 당시만 해도 1년에 1·2번 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날도 너무 힘들어서 엄니를 찾아갔다”며 “새벽에 눈을 떠보니 엄니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제발 우리 아들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내 삶의 목표는 엄니를 모시고 잘 사는 게 됐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일상처럼 여겼다. 그런 어머니의 성품은 배 사장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학교, 병원, 장애인·노인 시설 등 그가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와 시설에 기부한 돈은 60억원이 넘는다. 고등학생 이상 자녀가 있는 직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식구들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사모곡 담은 <엄니는 102살>
3000일 넘게 편지 써서 전해
“불로소득으로 기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기부하는 돈만큼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겠다”고도 했다. 현재 배 사장은 식당서 나오는 모든 수입을 기부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 역시 그의 기부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봉사활동이나 도시락 만들기에 묵묵히 동참해주는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라며 “이들이 없었으면 어도는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후원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이루거나 건강을 되찾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또 그의 도움으로 병을 고친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에 감동하는 일도 많다고.
“편지를 보면 고맙다는 말뿐만 아니라 ‘나중에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겠다’는 말이 많다”면서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60억 넘게 기부
“지금까지 살면서 물질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도움을 무수히 받아왔다”며 “이제 와서 돈 좀 벌었다고 나 혼자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겸손을 표했다. 이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하는 게 나중에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다”며 “앞으로 20∼25년 일선서 일하겠다. 나중에 확인하러 와도 된다”고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