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수 기자 = 영장 기각에 이어 집행유예. ‘130억대 비리’ 타이틀이 그럴싸했지만 싱겁게 끝났다. ‘변호발’이 아닐까. 피의자가 돈 많은 ‘회장님’이라 말들이 많다. 거물급 변호인이 앞장서 전관예우 의혹이 제기된다.
임오식 임오그룹 회장은 1970년 남대문시장 0.7평 구멍가게로 시작해 국내 주방업계 대표주자인 임오그룹을 일궜다. 코렐, 테팔 등 글로벌 주방용품의 국내 판권을 딴 게 발판이 됐다. 수저업체 화인센스, 냉동업체 임오냉동 등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2009년엔 모피로 유명한 진도를 인수했다.
자신하더니…
재벌 반열에 오른 임 회장은 검찰 수사 선상에도 올랐다. 2015년 6월 압수수색부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손준성)는 임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하고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임오그룹 본사와 서류창고, 서대문구 홍은동과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임 회장의 자택 등 7곳을 털었다.
검찰은 앞서 그룹 임직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임 회장의 비리를 확보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회사 회계자료 등을 확보한 검찰은 6월19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임 회장을 소환, 횡령 혐의와 관련해 구체적인 수법과 규모 등을 캐물었다.
검찰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해 7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혐의로 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발표한 비리금액은 130억원이나 됐다.
검찰에 따르면 임 회장은 2005∼2015년 회사 매출액을 부풀리고, 2008∼2013년 회사에서 근무한 적 없는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삿돈 13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명의 이전을 통해 그룹 소유 부동산을 빼돌리고 회계자료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당초 구속이 유력했다. 검찰은 자신만만했다. 확실하다는 표정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내부에선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며 “충분한 내사와 물샐틈없는 철저한 수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이 나왔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서울서부지법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재청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임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계는 물론 법조계마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전관예우’의혹이 제기됐다. 사법부와 사정기관의 ‘재벌 봐주기’행태가 도마에 올라 비리 기업인들에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와중에 벌어진 결과라 의아해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실제 <일요시사> 취재 결과 임 회장은 당시 거물급 변호인을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인공은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의 최교일 의원. 그와 함께 법원 출신 변호인도 임 회장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대검 연구관,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대검 과학수사기획관, 수원지검 1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서울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지냈다. 2011년 8월∼2013년 4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복을 벗고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서울 서초구와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영주에 사무실을 차린 그는 20대 총선(영주·문경·예천)에서 새누리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지금은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당시 최 의원의 법무법인 측은 임 회장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사실만 인정한 채 자세한 해명과 반박 등을 거부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임 회장을 변호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뭐 하려고 물어보냐”고 경계했다. 그는 “변호사는 어떤 사건이든 맡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전관예우 같은 건 없다”고 일축했다.
임오그룹 역시 공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회사 직원은 “답해줄 사람이 없다. 찾아보고 연락주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9개월 뒤, ‘설마’했던 상황은 현실이 됐다. 검찰은 “임 회장이 회사 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증거를 인멸해 수사기관까지 방해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양섭)는 지난달 17일 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임 회장의 혐의 중 일부만 인정한 재판부는 “수년간에 걸쳐 거액을 횡령하고, 이 금액을 차명계좌에 입금해 관리하는 등 죄질이 나쁜 점, 아직 피해 회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피해회복이 안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허위 지급한 29억원을 횡령하고, 그 금액을 차명계좌에 입금한 점만 유죄로 인정된다”며 “그중 약 9억원은 변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먼저 임 회장이 2005∼2006년 56억원 상당을 횡령했다는 혐의.
재판부는 “차명계좌로 입금됐다든지, 금액을 사용했다는 객관적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56억원 부분은 검찰의 기소 내용이 합리적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임 회장의 손을 들었다.
그가 2007∼2013년 회삿돈 23억원을 법인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개인 차명계좌로 입금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임 회장이 명의이전을 통해 그룹 사업장을 빼돌리려 했다는 혐의 역시 “검찰 증거만으로는 명의이전 사업장이라는 주장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범죄내용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허술한 증거
임 회장에 대한 2심은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검찰이 이대로 망신을 당할까. 또 다시 별다른 반전 없는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질까. 사라진 130억원을 두고 벌어지는 임 회장 재판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관예우 의혹’ 최교일 의원은?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은 TK(대구·경북) 출신에 고대 법학과를 나와 법조계에서 ‘MB맨’으로 분류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수사,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때 ‘봐주기’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공직자재산공개 당시 법무·검찰직 재산공개 대상자 가운데 가장 많은 120억원에 달했다.
특히 지검장 시절 전관예우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1년 검찰 출신 변호사 개업식에 참석해 후배 검사들에게 “도와달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2013년 CJ그룹 수사 땐 담당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상황을 확인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영주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걸린 ‘뻥 화분’으로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영풍그룹(고려아연)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방패막이’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2014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 이모씨의 마약 사건 변론을 맡아 구설에 오르더니 최근엔 ‘최순실 청문회’서 사전 모의 의혹에 휩싸여 국조특위 도중 위원직에서 사임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