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영란법 이후…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①‘직격탄’ 업계 표정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52:45
  • 호수 1100호
  • 댓글 0개

줄줄이 폐업 “다 망하게 생겼다”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서민 주머니는 두말하면 잔소리. 구멍이 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지 오랩니다. 올해는 더한답니다. IMF 이후 최악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꿎은 ‘김영란법’이 타깃이 되고 있습니다. 이 법 때문에 경기침체가 더 심화됐다는 게 원망의 시선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연말도 지났고, 명절도 지났습니다. 각종 통계와 조사 결과, 그리고 본지 취재를 통해 ‘김영란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 봤습니다. <편집자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김영란법 시행으로 여러 업종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설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매출 급감으로 일부 업종은 고사위기에 직면했다. <일요시사>는 김영란법 이후 위기에 처한 업계 상황을 짚어봤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처음 제안했다. 지난 2015년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9월28일 시행됐다. 김영란법의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부패 청산을 기치로 내건 김영란법은 시행 초기부터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초상집 분위기

시행 반년이 지난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의 가이드라인 ‘3만원(식사 및 음식물), 5만원(부조), 10만원(부조)’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선 선물을 주력으로 하던 화훼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지난달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월1일부터 15일까지 전국 화원협회 1200개소의 소매 거래금액은 모두 1억302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1%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소매 거래금액도 28% 감소한 6억3520원에 머물렀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4개월간 꽃 소비가 눈에 띄게 위축된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화환이나 난 선물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서 김영란법은 화훼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모양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른 2005년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2만870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0년 1만6098원, 2015년 1만3000원을 기록해 10년 새 37% 급감했다. 같은 기간 화훼 생산 규모도 2005년 1조105억원에서 2015년 6332억으로 반 토막 났다.

앞서 서울 양재동 aT 화훼공판장은 출하물량이 줄고 경매단가가 떨어지자 경매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난 시장이 호전될 경우 난 경매를 원래대로 복구하려 했지만 김영란법이 겹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 시행 초기인 지난해 10월, 결혼 시즌임에도 꽃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줄었고, 연말연시, 인사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꽃집들은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 났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축하 난을 보내는 관행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화훼농가와 소매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예년에는 6500원에서 8500원 사이에 팔리던 국화 한 단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4000원대에 팔리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화훼업계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T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꽃 소비의 대부분이 경조사용·선물용인데, 기업과 금융권의 경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막연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일상에서의 꽃 소비를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훼업계뿐만 아니라 축산업계도 울상이다. 국내 축산업계는 대목인 설을 맞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은 상품을 내놓는 등 김영란법 맞춤 선물세트를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선물 5만원이 넘지 않는 4만9000원대 선물세트는 축산업계의 주력 상품이었지만 택배비를 포함하면 김영란법을 위반할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음식점, 화훼, 축산, 주류…
매출↓ 폐업하는 가게 속출

지난달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월2일부터 26일까지 롯데백화점 축산부문 설 선물세트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축산부문 매출이 3.1% 떨어졌다. 반면 수입산 축산품 판매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신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김영란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 국산 농수산물이 외면받고 수입 농수산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법의 취지가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류업계도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접대 문화가 자취를 감추면서 유흥업소의 매출이 감소해 맥주, 위키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김영란법은 성장가도를 달리던 와인 업계에도 타격을 입혔다.

다만 가격과 도수를 낮춰 소비자층을 넓힌 소주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후 외식업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주류업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도 김영란법을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일부는 생계까지 위협받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84.1%는 지난해 12월에 비해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고 답했다.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업계도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그나마 드나들던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다. 지난달 4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흥업소는 2만5000여개, 서울 지역의 유흥업소는 2500여개에 달한다.

특히 업소가 밀집된 강남은 현재 30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30여개 업체가 이미 문을 닫았다. 10여개 업체는 업종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서울지부회장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업계는 특히 올해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해에는 기업들이 이미 대형 공연에 대한 협찬금 책정을 마무리한 상황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분야 지원을 감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기업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 업계다. 은행·카드사들은 클래식 공연 협찬 비용의30∼50%를 티켓으로 환산받아 고객 초청이나 거래처 접대에 사용해왔다. 하지만 초대권을 받는 이들 중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상당수 포함될 수 있어 기업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현 공연업계의 흐름을 두고 원종연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기업과 제작자들이 김영란법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투자심리와 홍보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람객의 공연 문턱을 낮춰주는 초대권이 위축되고 비평가와 평론가 등에게 티켓 제공이 까다로워지면서 입소문을 내는 홍보활동의 어려움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역시 무리수?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9일 김영란법에 대해 “김영란법 취지에는 100% 찬성하나 3·5·10만원으로 규정된 제한 금액이 적절한지는 살펴봐야 한다”며 “법 취지는 살리고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는 줄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