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 특집> 미제사건 파일6 ①사바이 주점 살인사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34:32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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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많이 남겼는데…

기이한 죽음, 범인 없는 살인, 감쪽같은 실종…. 오늘도 대한민국에선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제아무리 과학수사라 해도 우리 주변엔 완벽한 퍼즐이 여전히 존재한다. <일요시사>는 지령 1100호를 맞아 잊히고 있는, 잊혀선 안 될 미스터리한 강력범죄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봤다. 아무도, 아직도 풀지 못한 미궁에 빠진 사건들. 그날로 돌아가 본다. <편집자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한국과 맥시코 간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20여년 전의 어느 여름날,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베테랑 경찰관조차 이렇게 잔인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 사건이 벌어진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용의자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일요시사>는 베일에 가려진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지난 1998년 6월14일 대한민국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경기가 열린 바로 그날 서울 신사동 한 단란주점에선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20대 남성 3인조로 추정되는 범인들은 단란주점 업주, 택시기사, 손님 등 3명을 잔인하게 살인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현장에 수많은 지문과 족적, 혈흔, 목격자들이 있었지만 끝내 범인을 잡는 데 실패했다. 사건 발생 후 15년이 지난 2013년 6월14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안 잡나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해당 사건은 그 잔혹성이 여타 범죄를 뛰어넘어 베테랑 형사들조차 지금까지 봐온 사건 중 가장 잔인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여주인 이씨는 허벅지와 등에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입 가장자리가 13cm 길이의 칼로 찢겨나간 상처도 발견됐다.

택시기사 고씨의 몸에서는 무려 17군데나 칼에 찔리고 베인 흔적이 발견됐다. 가장 끔찍하게 죽은 손님 김씨 여인은 목이 반쯤 잘렸고, 이마는 발로 짓밟힌 듯한 자국이 선명했다.


사건 당시 유일한 생존자 최씨의 증언을 통해 당시 범죄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최씨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김씨 여인의 지인으로 단란주점 근처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는 김 여인과 맥주 한잔을 하기 위해 사바이 단란주점을 찾았다.

여주인 이씨가 자신과 김씨에게 범인들이 있던 2번 방으로 합석하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최씨는 남자들 사이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껴 먼저 방에서 나와 1번 방으로 갔고, 김씨도 뒤따랐다. 이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방을 나온 최씨는 택시기사 고씨와 여주인 이씨가 용의자 3명과 카운터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것을 목격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최씨는 1번 방으로 돌아왔다. 이후 용의자 3명과 택시기사 고씨, 여주인 이씨가 1번 방으로 갑자기 들어왔다. 고씨와 이씨의 손은 결박된 상태였다. 고씨가 용의자들에게 말로 해결하자고 했지만 그들은 고씨와 이씨를 잔혹하게 구타했다.

용의자들은 겁에 질린 최씨와 김씨도 위협했다. 최씨는 옆구리에, 김씨는 목에 칼이 찔렸다. 이후 범인들은 피해자들의 생사 유무를 확인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최씨는 죽은 척을 해서 위기를 넘겼다. 최씨는 범인들에게 위협을 받을 당시 들은 말을 전했다.

그녀는 범인들에게 “남편이 지금 뇌수술 중이라 일을 못 해서 내가 식당에서 일해서 받은 일당 가지고 겨우겨우 먹고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때 한 범인은 “아줌마, 우리도 회사 잘려서 아줌마랑 같은 처지거든?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범인의 발언을 볼 때 금품을 노린 범죄로 볼 여지가 있지만 고씨의 상태를 보면 금품을 노렸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고씨는 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곗줄은 풀려 있었지만 시계를 가져가지 않았다. 또 고씨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있었지만 범인들은 금반지를 뺏지 않았다. 이 외에도 여인들의 손목에 차고 있던 금팔찌와 반지도 고스란히 남았다.

그러나 현금 일부와 신용카드, 귀금속 일부가 없어진 사실 때문에 경찰 측에서는 피해자들이 통장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는지 수사했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생존자 최씨 또한 범인들이 단순한 범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특히 용의자 중 한 명은 조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범인들은 식칼이 아닌 사시미칼을 사용했다. 당시 조폭들이 살인 무기로 회칼을 썼다는 점에서 용의자들의 조폭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전국이 월드컵에 취한 사이
술집서 잔혹한 범행 벌어져

당시 경찰들은 용의자들의 범행 동기를 금품 등 이익을 취할 목적이 아니라 애초부터 택시기사 고씨를 노린 청부 살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살인을 교사한 인물로는 여주인 이씨의 전 남편이 거론됐다. 사건 당시 이씨와 전 남편은 이혼한 상태였다.

이씨의 전 남편이 이씨와 가깝게 지낸 택시기사 고씨와의 불륜관계를 의심해 살인청부업자에게 살인을 교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남편은 그 무렵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청부를 할 여유가 없었다.

또한 혐의점도 찾을 수 없어 경찰은 전 남편을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두고 경찰은 범인들이 신문지로 지문을 닦은 점, 족적을 지우기 위해 물을 틀어놓고 나간 점, 지문이 묻었을 잔과 술병을 잘게 깨부수고 나간 점을 들어 계획적 범행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지난해 2월 <그것이 알고 싶다>서 프로파일링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전문가들은 계획적 범죄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일 가능성에 입을 모았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권일용 범죄분석팀장은 용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가 이미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용의자들이 단란주점에 3시간 동안 머무르는 사이에 여주인과 언니가 교대를 했다는 점, 이미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단란주점에 머물렀고 여기서 살인사건까지 일으킨 점으로 볼 때 계획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계획이 있는 살인범의 경우 신속한 처리와 증거 인멸이 현장서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의 경우 범인들은 이미 모든 범죄가 저질러질 때까지 자기 흔적들을 많이 남긴 상태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범행이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범인들은 일반인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즉, 과거에 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시신의 부검을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법의학과 교수는 시신의 형태를 들어 “살인을 처음 해본 것이 아니거나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이런 식의 범행은 힘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서울지방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도 범죄 형태가 잔인하고 대범하다는 점을 들어 일반인이 저지른 범행은 아니라고 말했다. ‘태환이법’으로 인해 2000년 8월1일 이후 일어난 미제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돼 범인을 잡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은 1998년 6월14일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못 잡나

이에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들은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총경 출신의 한 전직 경찰관은 “지금 이 사건이 18년 째 미제사건인데 그 사이에 이 자들이 이것보다 더 큰 범행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며 “그 이후로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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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