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상황 봐서 떠나겠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오.”
말소린지 콧김인지 사택비의 귀를 파고들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저는 항상 이곳에 있답니다.”
사택비가 의자왕의 가슴에서 놀던 손으로 가슴 전체에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 원이 그려지는 순간순간 의자왕의 가슴 안에서 충격파가 일었다.
“내 어리석은 소리했구려. 나 역시 항상 이곳에 있거늘.”
의자왕이 사택비의 행동을 따라하자 사택비가 고개를 들어 의자왕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무엇이오?”
“전하께서 소녀의 몸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마음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요.”
의자왕이 가슴에서 놀던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사택비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부인, 이거 아시오?”
“무엇을 말씀입니까?”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럴 수 없지요.”
“그렇소. 둘이 분리된다면 진정한 사랑으로 보기 힘들지요. 즉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싫어지고 반면 마음이 함께하면 몸은 자연히 사랑스럽게 된다는 말이오.”
“서방님은 저의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세요?”
말을 하며 웃는 사택비를 힘주어 안자 다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를 만회하려는 듯 사택비의 손이 의자왕의 목을 감쌌다.
“정말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사택비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듯 아니 조그맣고 예쁜 입술로 온몸에다 말을 하려는지 뜨거운 기운을 의자왕에게 내뿜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하인의 안내로 연개소문의 처소에 들어선 선도해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대인, 소문 들으셨습니까?”
“소문이라니요?”
선도해가 자리를 잡으며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을 연개소문도 잠시지만 따랐다.
“지금 이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인의 행동에 대해 미심쩍어 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 말은?”“너무 돌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개소문이 실소를 흘리며 선도해의 입을 주시했다.
“자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대인께서 자세를 낮추는 부분에 대해 혹여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 아니오.”
답을 하며 연개소문이 싱긋이 웃어주었다.
“행여나 저들이 우리 의도를 눈치 챌까 보아 그럽니다.”
연개소문이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선도해를 주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대인.”
“내 일전에 영류왕에게도 이야기한 적 있소만.”
“왕에게도요?”
“그렇소. 영류에게 왕과 신하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소.”
“그게 무슨.”
“과연 이리나 일부 버러지만도 못한 대신들이 차마 권력에 대해 생각하겠느냐 이 말이오. 그저 저놈들은 제 배부른 거 외에는 관심 표명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오.”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선도해가 말을 중간에 멈추었다.
“왜 그러시는 게요, 책사.”
“앞으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앞으로의 문제라.”
“지속적으로 탐하려는 그 못된 근성에 따른 소치 아니겠습니까.”
“지속적으로라.”
연개소문이 그 말을 곱씹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말씀해보시오.”
“어차피 우리는 대의를 위해 지금의 수치를 감수하는 중 아닙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오.”
연개소문 의심하는 이리
선도해 미인계 사용 제의
답을 하며 연개소문이 이를 갈았다.
“와신상담이라 생각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와신상담이라”
짧게 말을 받은 연개소문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놈들에게 말이오?”
“어차피 지금은 과정일 뿐입니다.”
연개소문이 다시 와신상담을 되뇌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소?”
“이리의 신임을 확고히 하는 게 이로울 듯합니다.”
“이리의 신임?”
“물론 그 아가리지요.”
연개소문이 아가리를 되뇌며 실소를 터트렸다.
“참으로 그 놈의 아가리 대단하오. 그만큼 넣었으면 벌써 찢어졌을 터인데 아직도 아가리가 건재하여 아가리질이나 하고 있으니.”
“그래서 말입니다.”
선도해가 말을 하다 말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오?”
“그래서 이번에는 색다른 걸로.”
“색다른 거라면.”
“어린 처자가 어떨까 생각합니다만.”
“뭐라!”
연개소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미인계를 쓰자는 말입니다.”
“그는 절대로 아니 되오!”
연개소문의 완고한 태도에 선도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비록 대의를 위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어떻게 그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에게 처자를 보낸다는.”
“하면.”
“물건이야 잠시 주인만 바뀔 뿐이지만 어린 처자는.”
말을 하다 말고 연개소문이 빙긋이 미소를 보였다.
“왜 그러시는 게요, 대인.”
“처자라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를 돌려 생각하면.”
“돌려 생각하다니요?”
“이리의 계집 역시 돈을 대단히 밝힌다 들었소.”
“그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요. 그리고 이리가 저리도 설쳐대는 꼴을 살피면 아마도 그 년의 입김이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이왕에 즐겁게 해주는 일 그 계집도 즐겁게 해주자 이거요. 물론 이리에게는 별도로 아부하면서.”
선도해가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연개소문의 얼굴을 주시했다.
“선 책사.”
“말씀하시지요, 대인.”
“비록 이 일이 대의를 위한다고는 하나 내 개인적인 문제 역시 걸려 있소. 그런 차원에서 나는 여하한 경우라도 남을 특히 가녀린 여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런 차원에서 책사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소.”
“대인의 생각 잘 읽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헤아려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오. 능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오.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역시 대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리의 계집에게 안사람을 통해 진귀한 보석을 보내려 하오. 아울러 그 보석만큼 우리의 신뢰가 영원히 변치 않으리란 점 상기시키고. 물론 다른 대신들의 계집에게도 보낼 생각이오. 그렇게 되면 그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생각하오.”
선도해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