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5) 이리의 탐욕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09 10:44:49
  • 호수 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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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해 수치를 감수하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상황 봐서 떠나겠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오.”

말소린지 콧김인지 사택비의 귀를 파고들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저는 항상 이곳에 있답니다.”

사택비가 의자왕의 가슴에서 놀던 손으로 가슴 전체에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 원이 그려지는 순간순간 의자왕의 가슴 안에서 충격파가 일었다.


“내 어리석은 소리했구려. 나 역시 항상 이곳에 있거늘.”

의자왕이 사택비의 행동을 따라하자 사택비가 고개를 들어 의자왕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무엇이오?”

“전하께서 소녀의 몸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마음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요.”

의자왕이 가슴에서 놀던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사택비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부인, 이거 아시오?”


“무엇을 말씀입니까?”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럴 수 없지요.”

“그렇소. 둘이 분리된다면 진정한 사랑으로 보기 힘들지요. 즉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싫어지고 반면 마음이 함께하면 몸은 자연히 사랑스럽게 된다는 말이오.”

“서방님은 저의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세요?”

말을 하며 웃는 사택비를 힘주어 안자 다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를 만회하려는 듯 사택비의 손이 의자왕의 목을 감쌌다.

“정말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사택비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듯 아니 조그맣고 예쁜 입술로 온몸에다 말을 하려는지 뜨거운 기운을 의자왕에게 내뿜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하인의 안내로 연개소문의 처소에 들어선 선도해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대인, 소문 들으셨습니까?”


“소문이라니요?”

선도해가 자리를 잡으며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을 연개소문도 잠시지만 따랐다.

“지금 이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인의 행동에 대해 미심쩍어 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 말은?”“너무 돌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개소문이 실소를 흘리며 선도해의 입을 주시했다.


“자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대인께서 자세를 낮추는 부분에 대해 혹여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 아니오.”

답을 하며 연개소문이 싱긋이 웃어주었다.

“행여나 저들이 우리 의도를 눈치 챌까 보아 그럽니다.”

연개소문이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선도해를 주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대인.”

“내 일전에 영류왕에게도 이야기한 적 있소만.”

“왕에게도요?”

“그렇소. 영류에게 왕과 신하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소.”

“그게 무슨.”

“과연 이리나 일부 버러지만도 못한 대신들이 차마 권력에 대해 생각하겠느냐 이 말이오. 그저 저놈들은 제 배부른 거 외에는 관심 표명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오.”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선도해가 말을 중간에 멈추었다.

“왜 그러시는 게요, 책사.”

“앞으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앞으로의 문제라.”

“지속적으로 탐하려는 그 못된 근성에 따른 소치 아니겠습니까.”

“지속적으로라.”

연개소문이 그 말을 곱씹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말씀해보시오.”

“어차피 우리는 대의를 위해 지금의 수치를 감수하는 중 아닙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오.”

연개소문 의심하는 이리
선도해 미인계 사용 제의

답을 하며 연개소문이 이를 갈았다.

“와신상담이라 생각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와신상담이라”

짧게 말을 받은 연개소문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놈들에게 말이오?”

“어차피 지금은 과정일 뿐입니다.”

연개소문이 다시 와신상담을 되뇌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소?”

“이리의 신임을 확고히 하는 게 이로울 듯합니다.”

“이리의 신임?”

“물론 그 아가리지요.”

연개소문이 아가리를 되뇌며 실소를 터트렸다.

“참으로 그 놈의 아가리 대단하오. 그만큼 넣었으면 벌써 찢어졌을 터인데 아직도 아가리가 건재하여 아가리질이나 하고 있으니.”

“그래서 말입니다.”

선도해가 말을 하다 말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오?”

“그래서 이번에는 색다른 걸로.”

“색다른 거라면.”

“어린 처자가 어떨까 생각합니다만.”

“뭐라!”

연개소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미인계를 쓰자는 말입니다.”

“그는 절대로 아니 되오!”

연개소문의 완고한 태도에 선도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비록 대의를 위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어떻게 그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에게 처자를 보낸다는.”

“하면.”

“물건이야 잠시 주인만 바뀔 뿐이지만 어린 처자는.”

말을 하다 말고 연개소문이 빙긋이 미소를 보였다.

“왜 그러시는 게요, 대인.”

“처자라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를 돌려 생각하면.”

“돌려 생각하다니요?”

“이리의 계집 역시 돈을 대단히 밝힌다 들었소.”

“그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요. 그리고 이리가 저리도 설쳐대는 꼴을 살피면 아마도 그 년의 입김이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이왕에 즐겁게 해주는 일 그 계집도 즐겁게 해주자 이거요. 물론 이리에게는 별도로 아부하면서.”

선도해가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연개소문의 얼굴을 주시했다.

“선 책사.”

“말씀하시지요, 대인.”

“비록 이 일이 대의를 위한다고는 하나 내 개인적인 문제 역시 걸려 있소. 그런 차원에서 나는 여하한 경우라도 남을 특히 가녀린 여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런 차원에서 책사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소.”

“대인의 생각 잘 읽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헤아려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오. 능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오.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역시 대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리의 계집에게 안사람을 통해 진귀한 보석을 보내려 하오. 아울러 그 보석만큼 우리의 신뢰가 영원히 변치 않으리란 점 상기시키고. 물론 다른 대신들의 계집에게도 보낼 생각이오. 그렇게 되면 그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생각하오.”

선도해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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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