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 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 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그래? 그럼 우리 민희씨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아, 과연 일본 호빠의 맛이라는 게 이런 건가?’
■ 팁만 1500만원?
두 번째 출근이다. 또다시 택시를 콜해서 부르고 가게에 가서 미팅을 하고 주의사항을 듣고 청소를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발 저번에 만난 손님과 같은 부류는 안 왔으면 좋겠다. 흔히 그런 여성들을 ‘진상’이라고 말한다. 한국에만 진상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곳 일본에도 여전히 진상이 있었다. 하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지 않겠는가. 그렇게 또다시 뻣뻣한 자세로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드디어 오늘도 첫 손님이 들이닥친다.
“이랏샤이 마세~!”
정우가 날 부른다.
“동이씨, 테이블 들어가죠?”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진상이 아닌, 착한 여자이기를. 내가 정우와 들어간 곳은 여자 손님 세 명의 테이블이었다. 정중히 인사를 했다. 20대 후반. 예쁘고 청순하게 생겼다.
‘아, 이렇게 예쁜 여자들도 일본까지 와서 술집에서 일하는구나.’
그 중 한 명이 유난히 말도 잘 걸고 관심도 보인다. 알고 봤더니 정우의 여자 친구였다.
“정우씨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히 계셔도 돼요.”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정우의 여자 친구라니 최소한 진상은 아닐 것이 아닌가. 정우는 우리의 관계 때문인지 더 이상의 서브를 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자신도 다른 테이블을 돌지 않았다. 다소 편안한 상태에서 우리들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정우의 여자 친구는 민희, 그리고 또 한 명은 초연이라고 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가게의 분위기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게임을 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고 술에 취한 흥겨움이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타 정우의 여자 친구인 민희에게 노래 하나를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은 노래를 잘 못한다며 정우에게 노래를 권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노래는 손님들에게 팁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선수들에게는 노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기도 한다는 것. 가게의 에이스인 정우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래? 그럼 우리 민희씨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여자에게 기대감을 주고, 그것을 여지없이 충족시켜 주는 정우의 세련된 스킬이 빛났다. 그는 말을 하나 해도 여자를 기분좋게 만들어 준다.
드디어 지마마가 스테이지에 나가니 다른 여성들도 모두 환호했다. 정우는 신나는 댄스 음악을 틀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빛났다. 얼굴 표정, 눈빛, 제스츄어 모두가 프로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우를 바라보는 여자들은 혼이 나간 듯했다. 그 순간만큼 정우는 모든 여성들의 영웅이었으며 스타였으며 동경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1절이 다 끝나갈 즈음, 드디어 젓가락에 꽂힌 팁이 날아들었다. 족히 1만 엔은 넘어 보였다. 정우는 그저 팁을 준 테이블을 향해 약간의 고개를 숙이고 씨익 웃어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테이블에서 5만 엔 정도의 팁을 던진다. 그런데 이게 여자들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나 보다. 애초 1만 엔을 주었던 테이블에서 이제 20만 엔을 주는 것이다.
■ 스케일이 다른 일본 호빠
한국 돈으로 200만원. 역시 정우였다. 업소의 모든 선수들은 정우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정우의 멋있는 모습에 대리만족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만원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우씨의 여자 친구였던 민희가 또 다른 선수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그가 쟁반을 들고 민희씨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 순간 좀 난감했다. 여자들의 질투심이 자극된 것 같아 그녀가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줄 알았다.
“왜요, 가시게요?”
민희는 그저 살짝 웃으며 지갑을 꺼내들었다. 친구 초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도 별 반응이 없었다.
‘나 참, 이거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정우는 변함없이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민희씨의 지갑에서 엄청난 돈이 나왔다. 나중에 세어보니 200만 엔. 당시 환율로 한국돈 1500만 원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많은 팁을 줄 때 그렇게 쟁반을 이용했던 것이다. 돈은 쟁반에 수북하게 쌓여져 정우에게 전달됐다. 그제야 정우는 기쁜 티를 냈다. 가게는 뒤집어졌다. 엄청난 대박 팁이 터진 것이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 나왔고 가게는 떠나갈 듯이 들썩였다. 한국의 호빠에서도 이런 일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아, 과연 일본 호빠의 맛이라는 게 이런 건가?’
나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한 번에 주는 엄청난 팁의 액수에 놀랐고 그런 것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정우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여자들의 자존심 싸움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의 자존심 싸움은 이토록 무섭고 집요했다. 착하게만 보였던 민희씨였지만 에이스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큼은 대단했다. 사실 에이스도 자존심이 높지만, 에이스의 여자 친구는 자존심이 더욱 높다. 그런데 그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에이스를 남자 친구로 가지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셈이다.
노래를 마친 정우는 멋있게 스테이지를 걸어 내려왔다. 정우야말로 왕자였다. 나는 그렇게 다시 일본 호빠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면 꼭 승부를 봐야 하는 성격이 서서히 발동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그러한 성격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월급날이었다. 이제 어느덧 호빠 생활도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월급날 내가 받은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마이너스 만 엔’이었다. 원인은 도항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항은 한 달에 총 다섯 번은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 번에 3만 엔씩 까이게 된다. 한 달에 한 번도 못했으니 15만 엔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 월급으로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다가는 10년이 지나도 이 생활을 그만둘 수 없을 듯했다. 말 그대로 나는 노예에 불과한 신세였다. 사쪼는 그런 나를 늘 비아냥거렸다.
“넌 여기서 평생 일해야 겠다. 넌 왜 그렇게 쑥맥이냐? 남들처럼 해보란 말이야, 남들처럼.”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