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사태> 반기문 ‘북미 라인’ 대해부

반기문 사단 5인이 움직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회고록 사태’가 정치권을 집어삼켰다. 회고록에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기권 여부를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했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있어 파장을 낳았다.

‘국기문란’이라는 여당의 주장에 야당은 ‘색깔론’이라 응수하며 치열한 정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야당에선 집필자인 송 전 장관이 반기문 사단 중 핵심인 ‘북미국 라인’이라는 점을 들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의도적인 ‘반기문 띄우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송민순 회고록 사태서 핵심은 과연 참여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하 결의안) 표결 기권을 결정하기 전, 북한 측에 찬반 의사를 물어봤는지 여부다. 만약 북한과 협의 후 기권 결정을 내렸다면 여당의 주장대로 사전 문의가 되는 것이지만, 참여정부 수뇌부에서 기권을 결정한 다음 북한에 이를 알렸다면 사후 통보가 되기 때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는 북한의 의사를 물어본 뒤 기권을 결정했다고 쓰여 있다.

회고록 사태
반 측근 기획?

회고록에 나온 결의안 기권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1월15일 송민순 장관 결의안 채택 주장 →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 기권 주장 → 문재인 비서실장 기권으로 합의해 노무현 대통령께 건의 제안 → 송 장관 거부 → 16일 노 대통령 주재 하에 5인 토론 → 18일 재차 토론했으나 합의 실패 → 김 원장 북한 측 의견 확인 제안 → 송 장관 제외 나머지 토론자 찬성 → 문 실장 북한 의견 확인하는 것으로 결정 → 20일 결의안 반대한다는 북한 입장 회신 → 노 대통령 결의안 기권 결정.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기획비서관과 공보담당비서관을 역임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경수 의원이 지난 16일 회고록 내용을 반박했다. 그는 “(결의안에 대해) 기권을 먼저 결정하고 이 사항을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 간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북에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결의안 채택 찬반 토론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년 10월2∼4일, 노무현-김정일)이 열린 지 40여일이 지난 11월 중순부터 유엔 결의안 표결이 있은 11월20일 사이다.

만약 회고록 내용대로 북한의 입장을 전달 받은 후 11월20일에 참여정부가 기권을 결정했다면 우리 외교사에 흠집이 남는 사건이지만, 김 의원의 말대로 기권을 결정한 후 북한 측에 사후 통보했다면 외교관계상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기 문란’이라며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공세에 나선 상태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포함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문 전 대표가 대한민국 주권을 포기한 국기 문란 행위”라며 몰아세우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문 전 대표의 해명과 함께 국정조사, 국회청문회, 특검, 검찰수사 등을 거론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회고록 내용의 진위 여부뿐만 아니라 집필에 숨겨진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외교가 속설로 본다면 송 전 장관이 논란이 될 지 모르고 회고록을 썼을 리 없다는 것이다. 앞서 송 전 장관은 “정치적인 의도로 (회고록을) 쓴 것이 아니다”라며 “책 전체 흐름을 봐야지 일부만 보면 안 된다”고 기자들 앞에서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더민주 측은 회고록에 문 전 대표에 대한 부분은 유독 의혹을 살 만한 내용이 많은 반면 반 총장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내용이 다수 실려 있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회고록서 문 전 대표는 크게 3가지 사건에서 부정적으로 기재돼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지난 2007년 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과 함께 ▲샘물교회 교인 탈레반 인질 사건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안 조정 등이 그것이다.

집필자인 송 전 장관은 샘물교회 교인 탈레반 인질 사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8월 초 탈레반 조직은 인질 석방 협상을 하려면 한국 정부의 신임장을 휴대한 대표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중략)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김만복 국정원장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신임장이라도 써 보내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비서실장과 백종천 안보실장도 찬성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중립이었다. 며칠 후 알게 되었지만, 이때는 남북 정상회담 일자를 비밀리에 막바지 조정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을 수도 있었다.’

도마 오른
기권 시점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안 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직통전화로 평양 현지팀과의 교신을 관리하고 있던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두 가지를 반영할 것을 요청했다. 하나는 ‘종전선언’ 앞에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을 강조하는 표현을 먼저 넣고 또 ‘3자 또는 4자’를 ‘직접 관련 당사자’로 (문구를) 바꾸자고 했다. (중략)

그런데 결과는 종전선언 문장 다음에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조항만 넣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3자 또는 4자’는 그대로 남았다.’

반면 반 총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우호적이다. 반 총장은 해당 회고록서 14개 일화에 걸쳐 그 이름만 총 35차례 등장하는데, 주로 6자 회담, 9·19 남북공동성명 협의 과정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는 부분에 등장한다.
 

특히 반 총장이 외교부장관으로 있던 2005년 9·19 남북공동성명 협의 과정에 대한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 작업(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북·미·중·일 외교당국과의 중재)을 하면서 분단관리와 통일외교에 대해 내 나름의 의식을 갖게 해주고, 또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여러 선배들이 떠올랐다. 어떤 난관도 깊은 물처럼 헤쳐 나가는 지혜를 보여준 반기문 외교부장관 같은 분들.’

여야 진실공방 국기문란 VS 색깔론
집필 의도는 과연…결국 반 띄우기?


지난 2006년 한미정상회담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반 장관을 만난 일화에서도 우호적인 내용이 두드러진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반 장관이 괜찮은 사람입니까?”라면서 농담을 던진 후에 반 장관을 보고는 “왜 그 자리(유엔사무총장)를 원합니까”라고 마치 면접을 보듯이 물었다.

반 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질문에)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의 성공 사례로 성장했는데, 이제 한국도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특히 유엔의 개혁에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부시가 듣고 싶은 핵심을 짚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회고록이 나온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국제 언론은 반 총장에 대한 혹평을 내놓은 바 있다.

보도된 내용을 보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 가디언지는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사무총장’, 미국 뉴욕타임즈는 ‘힘 없는 관측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유엔의 투명인간’, 포린폴리시는 ‘가장 위험한 한국인’, 워싱턴포스트는 ‘반 총장이 이끄는 유엔은 무능해지고 있다’고 평했다.

해당 소식은 지난 5월부터 6월 사이 집중적으로 국내에 전해졌다. 이후 복수의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 총장의 지표에 유의미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기문 대망론’은 허상이라는 반응이 퍼졌다. 야권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외국서 반 총장이 무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며 “미국의 한 상원(의원)조차 반 총장을 그렇게 평가했다. 특히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회고록은 국내외서 일고 있는 ‘반기문 무능론’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많은 부분을 할애, 반 총장이 과거 외교부장관으로 있을 때의 성과를 부각시켰다. 일각에서 의도된 ‘반기문 띄우기’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외교적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회고록이 때마침 등장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공격
반기문 칭송

더민주 문용식 전 디지털소통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전 장관이 회고록을 정식 출간하기 전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사전에 몇몇 기자들에게 보여줬다는 얘기가 있다“며 “자신의 발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외교관 직업의 특성인데, 외교관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장관까지 한 자가 회고록에서 ‘북한과 사전 협의’라고 표현한 부분이 논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송 전 장관은 반 총장의 핵심 참모그룹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다. 반 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로 다음날 점심을 함께 먹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회고록 사태 후 반 총장의 ‘북미국 라인’을 주목하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의 인맥은 외교관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그 중 북미국 출신들이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며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들이 캠프를 이끌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외교부 1차관 산하에는 ‘지역국’이라는 양자외교 담당·지원 부서가 있다. 지역국은 주재국 대사관 등을 통해 각국과 외교 관계를 다지며 여러 협력사업을 꾸려 나간다. 또한 관할 지역에 관한 외교정책을 수립하는가 하면 대사관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우리 외교의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그 중 북미국은 외교부 내 최고 핵심 부서로 뽑힌다. 외교관 고위직으로 성장하려면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국과 주미대사관을 거쳐야 하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미국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미국이 요직이니 외교관들이 그쪽으로 많이 가려고 한다. 우리가 외교적으로 가장 많이 의지하는 곳이 미국이지 않나. 미국 쪽 라인이 있어야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외교부 내 최고 실세라 봐도 무방하다. 청와대 인사들 중에도 북미국 출신이 많다. 외교관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북미국이 미국의 정보를 꽉 잡고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측근들 언제 어떻게 뭉칠까
싱크탱크 결성 초미의 관심

대표적으로 반 총장이 북미국 출신이다. 그는 주미국 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를 지낸 뒤, 외무부 미주국장(외교부 북미국의 전신, 1996년 북미국으로 명칭 개편)을 지냈다. 이후 외교통상부 차관을 거쳐 참여정부 7대 외교부장관에 임명됐다. 회고록을 쓴 송 전 장관은 외무부 북미과장, 미주국 북미심사관, 북미국장 등을 두루 역임한 뒤 반 총장 후임으로 참여정부 8대 외교부장관이 됐다.

‘반기문의 남자’라고도 불리는 윤여철 청와대 의전비서관 또한 북미국 출신이다. 북미국 서기관이던 지난 2001년, 뉴욕 유엔본부에 파견돼 당시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을 맡았던 반 총장을 보좌했다. 지난 2006년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된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8년여 동안 반 총장의 일정을 관리하는 등 동고동락했다.

윤 비서관은 반 총장의 가족과도 막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외교부로 복귀했으며 지난 2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상당히 드문 사례로 일각에선 이를 통해 박 대통령과 반 총장 사이에 ‘인적 핫라인’이 개통됐다고 해석했다.

반 총장의 ‘오른팔’로 통하는 김숙 전 유엔대표부 대사도 대표적인 북미국 출신 인사다. 외무고시 12회를 나온 김 전 대사는 외교부 북미국장, 국정원 1차장, 주유엔 대표부 대사로 부임하는 등 반 총장과 지근거리서 일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 또한 주요 북미국 인사로 꼽힌다.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 참사관,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을 거쳐 지난 2003년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외교 각서 초안을 미국 측에 보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는 외교부가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제외하고 미국과 합을 맞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14년까지 외교부 북미1과장을 맡았던 장욱진 유엔사무총장 보좌관은 반 총장의 최측근으로 물리적 거리로는 반 총장과 가장 가까운 인사다. 장 보좌관은 북미1과장을 역임하던 중 휴직하고 유엔으로 넘어갔다. 지난 2000년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차관일 때 그를 수행했으며 지난 2004년 반 총장이 장관에 취임한 뒤에는 비서관으로 일했다.

“반기문 캠프
이끌 사람들”

정치권에선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곧 싱크탱크를 출범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때문에 소위 ‘반기문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 5인방이 싱크탱크서 뭉칠지도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후배 외교관들을 중심으로 ‘반기문 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문의 ‘유엔 라인’
대권 불씨 피울까?

북미국 출신 이외에도 반 총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좌한 유엔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상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북핵외교기획단 단장은 유엔사무총장 비서실에서 7년 넘게 근무하며 반 총장을 보좌했다. 그는 당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일을 <유엔본부 38층-유엔과 반기문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냈다.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은 외무고시 12회로 김숙 전 유엔대표부 대사와 함께 기수 핵심 인사로 꼽힌다.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을 지냈으며 지난 2006년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했을 때 특별대사를 맡아 선거운동을 총괄한 바 있다. 당시 당선을 도운 다른 외교관들은 외교부로 복귀한 반면, 김 차장은 외교부를 퇴직, 유엔으로 옮겨 비서실 차장, 특별보좌관 겸 개혁담당 사무 차장보 등을 맡아 활약했다.

가까이서 보좌한 인사들 주목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출신들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또한 반 총장의 핵심 측근 인사로 전해진다. 그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4일 뉴욕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 야당 의원들이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1946년 유엔총회 결의에 위반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모든 유엔총회 결의는 권고적 성격의 결의”라며 “결의에 ‘퇴임 직후’라는 표현이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있다. 유엔사무총장을 지내고도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고 대선에 출마한 사람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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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