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는’ 최경환 의혹들

터지면 묻히고 터지면 묻히고, 최경환은 웃고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정부 실세, 최경환 의원에 대한 의혹들이 수면 아래로 잠겼다. 당초 정권을 흔들 만한 사안이라며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 분야서 주목했지만, 이후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와 미르·K스포츠재단 등 다른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 주목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의혹을 밝혀낼 결정적 증거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정권 실세이기 때문인 것일까. 일각에선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취업 청탁 의혹이 새로운 전기를 맞기 전까지,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에 대한 의혹들 중 핵심은 ‘롯데그룹 50억원 금품수수설’이었다. 지난 7월경 <아시아투데이>가 관련 의혹을 보도하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 의원에게 50억원의 금품을 건넨 정황이 있다고 전했다.

준 사람 있고
받은 이 없다?

당시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와 특수4부(조재빈 부장검사), 첨단범죄수사1부(손영배 부장검사)가 신 회장에 대한 해당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보도내용에 따르면 검찰이 롯데그룹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자 신 회장이 그룹 내 핵심 수뇌부들 간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때 최 의원의 이름이 회의석상서 거론됐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에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그동안 우리(롯데)가 돈 뿌린 사람들이 뭔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그룹 내부인의 말이 인용됐다.

최 의원 측은 즉각 법적 조치에 나섰다. 그는 명예훼손 혐의로 해당 언론사와 관계자들을 총 3차례 고소했다.


최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거듭 밝히지만 롯데그룹으로부터 한푼의 불법자금도 받은 적이 없으며 검찰과 롯데그룹 측에서도 해당 언론사의 보도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이미 밝힌 바 있다”며 “앞으로도 허위보도가 계속될 경우, 법에서 정하고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침해된 권리 구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후 정치권에선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보도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 의원의 50억원 수수설은 현 정부의 최측근 실세가 직접 연루된 의혹이라는 점에서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매우 파괴력이 큰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비슷한 시점에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최 의원의 50억 수수설이 언론에 논란이 되고 있다”며 “첩보가 확실히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언론서 들은 것밖에 없다”며 사정당국이 신 회장의 측근으로부터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최근엔 검찰의 롯데 봐주기 수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법사위 소속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추궁하며 “검찰이 수사의지가 없다”고 질타했다.

50억원 수수설, 검찰 봐주기 의혹
정부-롯데 사드 빅딜? 거래 있었나

당시 노 원내대표는 검찰이 롯데그룹 핵심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서 50억원 수수설에 대해선 수사했는지, 최 의원을 고소인 조사했는지 등을 지적했는데 검찰은 “롯데 수사상황으로 볼 때 금품 수수설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만 답했다.


국감서 지적받을 정도로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갖가지 설이 난무한 상황이다. 항간에는 ‘사드 빅딜설’이 원인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감이 있기 전 노 원내대표는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세간에는 이미 롯데 비자금이 최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흘러갔다는 정황에 대해서 얘기가 많다”며 “사드 성주배치 관련 롯데 소유 골프장과의 거래선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 원내대표의 해당 발언이 나온 것은 지난달 22일, 사드 부지로 골머리를 않던 국방부가 기존의 경북 성주군에 위치한 성산포대가 아닌 롯데 소유의 성주 골프장에 사드를 배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던 때였다.

노 원내대표의 의혹 제기가 있은 후 재판부가 신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기각 하루 만에 국방부는 골프장을 새로운 사드 부지로 발표하게 된다. 이처럼 79일 만에 사드 최적지가 바뀐 사태에 대해 일각에선 정부와 롯데 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국방부는 다른 후보지였던 성주 수륜면 까치산과 성주 금수면 염속봉산에 비해 성주 골프장이 부지 가용성 평가기준에 보다 충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롯데 수사가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최 의원과 관련된 의혹 또한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50억원 수수설과 달리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취업 청탁 의혹’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줄곧 “최 의원의 청탁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박철규 전 중진공 이사장이 지난달 21일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열린 공판서 “최 의원이 자신의 지역사무소 인턴직원 출신 황모씨를 합격시키라고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최 의원과 박 전 이사장이 만난 건 지난 2013년 8월1일, 그해 6월 중진공에 지원한 황모씨의 채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박 전 이사장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국회 원내대표실을 찾아 “황모씨에 대해 여러 가지 검토했지만, 도저히 (자격이) 안 돼 불합격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최 의원에게 말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내가 결혼시킨 아이인데 성실하고 괜찮으니 믿고 써보라”고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쌓이는 의문들
갖가지 설 난무

결과적으로 황모씨는 4500명의 지원자 중 1차 서류전형서 2299등이었지만, 점수 조작 등을 거쳐 176등으로 통과했고 2차 인적성 시험서도 164등이었지만, 결국 36명의 합격자 안에 포함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더민주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박 전 이사장의 진술이 번복된 것에 대해 “처음 이 사건이 벌어진 당시 국회에서 관련자 증언과 이 사건 수사과정서 최 의원 측은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했다”며 “검찰도 문제다. 처음부터 꼬리자르기 수사로 일관했다. 실무자에게 모든 죄과를 미루고 최 의원에게는 계획된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대변인은 “최 의원이 자신의 인턴을 부정 취업시킨 의혹은 젊은이들의 헬조선 분노를 불러 일으켰으나, 검찰은 당시 박근혜정부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이었던 최 의원을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박 전 이사장의 진 한마디를 근거로 불기소처분 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손 대변인의 말처럼 검찰은 그간 ‘부실수사’ 의혹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7월 감사원이 중진공 수사 참고자료를 검찰에 보내면서 수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감사원서 보낸 참고자료에 최 의원의 이름이 빠져 의혹을 낳았다.
 


당시 감사원은 “누군가의 청탁을 받고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뽑았다”며 박 전 이사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만 기재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 또한 박 전 이사장의 “청탁은 없었다”는 주장과 감사원 참고자료를 수용, 최 의원을 간단히 서면조사한 뒤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인사 청탁을 했다는 최 의원은 수사선상서 제외된 반면, 청탁을 받은 중진공 관계자들만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도마에 오른
검 수사 의지

이는 지난해 12월경 임채운 현 중진공 이사장이 검찰수사를 앞둔 중진공 인사총괄 권모 실장을 회유하려는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정부 실세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당시 녹취록에는 임 이사장이 권 실장에게 “감사원 보고서에 나온 것만 진술해라” “최(경환)가 힘이 있어야 우리를 지켜준다. 최 부총리가 살아야 한다”는 등 최 의원이 관여된 정황이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박 전 이사장과 인사총괄인 권 실장만 재판에 넘긴 상태다.

박 전 이사장이 말을 바꿈에 따라 검찰은 최근 중진공 취업 청탁 의혹과 관련해 재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사건을 맡고 있는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해당 사건을 형사1부에 배정, 최 의원의 부당 지시에 대한 진위 확인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 측은 “박 전 이사장의 증언의 진위 여부 등을 수사기록과 함께 면밀히 검토 하겠다”라며 “추가수사의 성격으로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국감서도 중진공 취업 청탁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 국감에선 여야가 국감 시작 직후부터 30분간 팽팽한 설전을 펼쳤다. 더민주 박광온 의원은 “박 전 이사장이 그동안 해온 진술을 번복하고 최 의원의 인사 청탁 사실을 증언했으나, 최 의원은 (지난해) 9월 기재위 국감과 10월 본회의 대정부질문서 인사 청탁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했다”며 위증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진공 취업 청탁 논란되다 조용
미르에 집중…서별관도 물 건너가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은 “외압과 관련해 (최 의원) 출석도 안 된다고 하는데, 최순실·최경환 두 최씨는 ‘언터쳐블(untouchable)’인가”라고 비꼬았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이 기재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 지정을 받을 당시 기재부 장관이 친박인 최 의원이었기에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 국감에서는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청년광장, 청년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의원과 관련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쳐지기도 했다.

최 의원은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 일명 서별관 청문회의 증인 명단에도 빠져 한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도록 결정한 청와대 서별관 회의의 핵심 참석자 중 한 명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이와 관련해 결정권은 청와대와 기재부, 금융당국이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구실만 했다고 진술한 상황이다. 당시 기재부 장관이자 경제부총리였던 최 의원이 출석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최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증인 채택에 여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출석은 없던 일이 됐다. 결국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민유성 전 KDB산업은행 회장 등이 출석한 상황서 이틀간 청문회가 진행됐고, 익히 알려진 것처럼 ‘맹탕’ 청문회라는 오명 하에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역시 친박좌장
정권 끝나면?

이에 국감 때 야당 측에서 해당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야당의 화력이 집중되면서 서별관 회의 이슈는 잠잠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5일에 있은 기재위 국감에서 몇몇 의원들이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에 대한 계획을 물었을 뿐, 의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과연 오는 12일로 예정된 기재위 국감서 서별관 회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관심에서 멀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물류대란' 국감 쟁점들
고개 숙인 회장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세계 물류대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조 회장은 지난 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여야 의원들로부터 대주주 책임론, 알짜재산 빼돌리기 의혹 등에 대한 집중 질문을 받았다.

당시 조 회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대주주로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국민과 한진해운 임직원들에게 할 말은 없는가’ 등의 질문이 쏟아지자 연신 고개를 숙이며 “굉장히 죄송하고 깊이 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 40년간 한진해운은 세계 7위 선사, 태평양 노선에서는 세계 3위권 선사로 올라섰지만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던 2009∼2014년 사이 경영이 부실해졌다”며 “한진해운이 가졌던 네트워크와 영업권 등을 제가 인수해 다시 궤도에 올려놓으려 했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과 종업원에 대해 깊이 사죄를 올린다”고 말했다.

다만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은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형 글로벌 선사들과의 저가 운임 치킨게임에 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진해운 회생을 위해 대주주인 대한항공과 그룹 계열사 등이 최선의 지원을 다했으며 한국 해운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피력했다.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의 회생 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조 회장은 “현대상선은 자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한진해운은 자회사가 없었고 파산 직전이었기 때문에 한진그룹이 인수해 2조원 정도의 자금을 투입했던 것이고, 살리려는 노력은 현대상선 이상으로 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한진그룹 내 육상운송 계열사인 ㈜한진이 자금 지원을 명목으로 한진해운이 보유한 해외터미널과 영업권 등 알짜재산을 빼돌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시 자금이 급했고 한진해운이 보유한 터미널을 매입하려는 곳은 없어 강매하다시피 ㈜한진이 떠맡게 됐던 것”이라고 부인했다.

‘한진해운을 살리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답할 입장은 아니지만, 누가 경영을 하든 국가 해운업을 위해서는 살려야 한다”며 “빠른 시일 내 회생을 시킨다면 한진해운이 보유한 영업망과 네트워크 등의 무형자산의 보존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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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