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드디어 일본 호빠에서의 첫 손님맞이가 시작됐다.
이미 만취상태의 그녀들은 거침없이 반말을 썼다.
■ 일본에서의 호빠 생활
나에게 존댓말을 써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샤워를 종용했고 서둘러 가게에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욕실에서 본 나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다. 참 그간 고생도 많이 했다. 수염은 제대로 깎지도 못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샤워실을 같이 쓰고 이제 앞으로 그들과 같이 먹고 함께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낯선 건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생각마저도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것이었을까. 샤워실 밖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해? 빨리 안 나오고.”
그렇게 해서 또다시 ‘타쿠시(택시)’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또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막막했지만 그냥 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서둘러 전단지를 손에 들려줬다. 길거리에 나가서 여자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그 전단지를 받는 여자들이 모두 한국여자들이었다. 선수들은 한국말로 그들에게 이야기했고 그녀들도 한국말로 응대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 일본이라는 곳에서 전단지를 돌리면서 나의 호빠 선수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말을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어느덧 밤 10시가 됐다. 마마가 이제 전단지는 그만 돌리고 업소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모두들 우르르 2층에 위치한 호빠로 뛰어올라간다. 그러더니 미팅이 시작된다. 분위기는 마치 군대 내무반 같다.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다리를 떨어서도 안 된다. 이 시간만큼은 군기가 바짝 들었다. 사실 나는 가게 내부를 자세하게 볼 틈도 없었다. 일본 공항에서 내린 뒤 정신없이 굴러다녔기 때문이다. 겨우 그제야 가게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는 좁았다. 한국만큼 큰 규모의 호빠가 아닌 듯 했다. 건물은 허름했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꽤 신경을 썼는지 괜찮아 보이기는 했다. 가게 중앙에는 스테이지와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라오케 시설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의 호빠와는 확연하게 틀린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은 대부분 각각의 룸이 따로 있다. 그 안에서 선수와 고객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일본 호빠는 개방적인 구조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냥 한국의 술집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의자들이 고급스러운 소파들이기는 하지만, 그냥 뻥 뚫려 있는 모습이 사뭇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김동이 나와서 인사해라.”
■ 초이스 없는 일본
갑자기 사쪼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잔뜩 긴장한 나는 엉거주춤 앞으로 나가 나이와 이름을 말했다. 군대에서 하는 관등성명을 대는 것 같다.
그 후에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일은 대충 새벽 2시가 되어야 시작된다고 한다. 한국 아가씨들이 술집에서 일을 마치고 이곳에 도착하는 시간이 대략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늘어져 있었는데, 누군가 빠르게 몸을 움직여 입구로 향하고 시끄러운 잡담소리가 들려온다. 마마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행동이 빨라졌다. 모두들 입구로 몰려가기 시작했고 일렬로 줄을 섰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여자들이 들어왔다.
“이랏샤이 마세~!”
누군가 선창을 하자 모두들 따라했다. 한국어로 ‘어서 오세요’란 말이다.
드디어 일본 호빠에서의 첫 손님맞이가 시작됐다.
흰색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오피스걸 스타일의 여성이 그날의 첫 손님이었다. 옆에는 값비싼 양복을 폼나게 빼입은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들은 함께 업소에 출근하는 것 같았다. 그게 바로 ‘도항’이었다. 선수가 손님과 함께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일본에 내렸을 때 사쪼가 나에게 했던 말이 바로 ‘도항’이었다.
그날 첫 도항을 한 선수는 ‘정우’라고 했다. 참 선하게 생겼다. 그리고 정말로 잘 생겼다. 당연히 이 가게의 에이스라고 했다. 사쪼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정우였다. 그만큼 많은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한국에서 팔려온 건 나 혼자 뿐이었다. 대부분은 자기 발로 이곳에 걸어 들어온 케이스라고 했다. 아예 한국에서부터 선수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온 친구도 있고, 그냥 유학을 왔다가 선수로 전업해 눌러앉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놀라웠던 사실은 이 업소의 사쪼와 한국에서 나를 일본으로 보낸 사채업자는 부부라고 했다. 당시에는 일본에 한국식 호빠가 큰 유행을 하고 있었고 일할 사람이 없었던 차에 나를 일본으로 보낸 것 같았다. 참 세상에는 별의별 부부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한국과는 사뭇 다른 일본 호빠 시스템이 궁금해졌다. 이곳에는 초이스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 지명을 하는 시스템이었고 테이블에서는 이른바 ‘헬퍼’라고 하는 사람이 한명 따라 붙었다. 갖가지 잡일을 해주는 보조 선수였다. 술을 몇 잔 들이키더니 그들은 곧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게임이야 많이 하지만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이 점점 불어났다. 전체 테이블은 7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석은 만석이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테이블에 들어갔고 경력이 부족한 경우라면 헬퍼로 들어갔다. 나는 그야말로 신병이었다. 굳은 자세로 자리를 지키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정우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런 일, 해봤어요?”
“네, 조금요, 한국에서 잠깐.”
그는 업소 내부를 쭉 둘러보더니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서브로 한번 해 볼래요?”
내가 앉은 테이블은 일행이 모두 세 명이었다. 이미 만취상태의 그녀들은 거침없이 반말을 썼다.
“못 보던 선수인데? 너 초짜냐?”
“네.”
그녀들은 그때부터 막무가내로 신고식이라는 걸 시켰다. 다시 뻘쭘하게 일어서서 이야기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