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박근혜 대권행보<밀착탐구>

<대물>이 박근혜야? 박근혜가 ‘대물’이야?

 
“여러분 정치인은 미워해도 정치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를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종영된 고현정, 권상우 주연의 SBS 수목 정치드라마 <대물>.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극중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서혜림(고현정 분)은 5년 임기를 마치면서, 국민에게 ‘정치를 사랑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서혜림은 국가를 남편과 자식처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됐다.

선거 저변에 깔린 시대정신 읽어야 청와대 입성
‘경제’ 아닌 ‘복지’로 포문 연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경제 성장’을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후보자시절 본인을 ‘경제대통령’으로 칭하며, “지난 10년간 무너진 나라경제를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분배를 강조한 진보정권 10년의 경제 지표에 실망한, 중도 및 서민 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됐다. ‘경제 살리기+물가안정’이라는 구호에 표를 준 것이다. 이렇듯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당선자들은 저변에 깔린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그것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구시대 정치 청산’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3김 정치 청산’보다 파괴력이 있었다.

사실상 대선 출정식
이대로 2012년까지 갈까

드라마 <대물>의 주인공인 서혜림은 드라마에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이라며, “지금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있는 복지예산부터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국가의 대외경쟁력보다 국민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을 ‘복지’에서 찾았다. 소통과 통합의 국민적 요구에 답하기 위해, ‘경제 성장’이 아닌 ‘복지’라는 키워드를 꺼내든 것이다. 지난 20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박 전 대표가 주최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안 공청회: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은 대선 출정식 같은 분위기였다. 축사를 맡은 박희태 국회의장은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오늘 취임하시는 날”이라며 차기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연평도 포 사격 훈련으로 서해안은 긴장감이 돌았지만, 행사장은 여야 의원 70여명을 포함해 9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석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1층 좌석 모두 차버릴 정도였고,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서둘러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준비했던 정책자료집 1000권도 동났다. 박 전 대표는 인사말에서 “바람직한 복지는 소외계층에게 단순히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꿈을 이루고 자아실현을 이루게 해주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들의 생애 주기에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돈을 써도 국민들이 복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 각자 평생의 단계마다 필요한 ‘맞춤형’ 복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3분간의 연설에 박수가 6차례 나왔다. 공청회에서 선보인 박근혜표 복지 개정안은 4장 35항의 현행법을 7장 42항으로 확대한 것이다. 지금처럼 현금만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 현금지원은 하되 교육이나 고용 등에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로 전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복지 관련 정책이나 예산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복지 중복이나 누수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숨은 조력자’
스터디그룹 5인방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후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빠지지 않는 모임이 하나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대구 달성에서 선거 운동을 지원하다가 이 약속이 잡혀 급거 상경했을 정도다. ‘박근혜표’ 복지를 다듬은 스터디그룹 5인방 얘기다. 신세돈(숙명여대 경제학),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 김영세(연세대 경제학), 김광두(서강대 경제학), 최외출(영남대 행정학)교수가 팀원이다. 이번 공청회를 계기로 박 전 대표의 정책 브레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연말이나 연초 각 분야 정책을 공개할 계획인 만큼, 이 과정에서 정책 브레인들이 자연스럽게 더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복지 아젠다를 통한 정계 일선 복귀 신호탄은 연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내놓은 ‘한국형 복지’는 지난 20일 이후, 대한민국 정치권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찬반에 대한 양론이 갈리긴 했지만, 이슈 선점 효과가 분명했다. 반대측에서도 내용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 예산 확보나 보완책 등에 관한 지적이 많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22일 박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 관련해 “주제를 참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복지국가화가 하나의 시대적 진전이라고 보여진다”며, “복지국가가 어떤 식으로 가야 제대로 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지 논의하는 것은 아주 큰 과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진보 진영에서도 일견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진보신당 노회찬 전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시스템을 법률·제도적으로 구비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한다”면서, “하지만 본질에 대한 접근이 부족해, 상당히 보완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필두로 야권
연일 박근혜 때리기

민주당에서는 박 전 대표의 본격적 정치 활동 움직임이 포착되자 연이어 집중 포화를 날리고 있다. 복지는 그동안 ‘경제 성장’을 앞세운 보수진영보다 진보진영이 선점해온 이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보편적 복지국가’를 당의 노선으로 선택했고,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3대 핵심 복지 과제를 선정해 정책으로 다듬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1일 “우리가 왜 박근혜 의원을 ‘대표’라고 하느냐. 오늘부터 그냥 의원으로 불러라”말 하면서 “박 의원이 성역화돼 있는데 우리가 인정할 필요는 없다. 왜 박 의원에 대한 비판 논평을 내지 않느냐”며 원내대변인들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21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의 ‘선별적이고 말로만 복지정책’에 침묵하고 감세정책에는 사실상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어떠한 철학과 비전, 대안도 없다”며 “속 빈 강정형 복지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 24일엔 “복지는 기본적으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며 “예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복지는 ‘말뿐인 복지’ ‘빈수레 복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조영택 원내대변인은 공청회에서 축사를 통해 박 전 대표를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치켜세운 박희태 국회의장을 거론하며, “‘근혜어천가’를 부르며 아부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국회의장으로서의 위상을 망각한 추태를 보였다”며 “박 의장의 이 같은 처세는 과거 국회의장의 신분으로는 전대미문의 일이며, 동료 국회의원과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대물’로
가는 힘찬 발걸음

한편 한나라당 내에서도 복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친이계인 신임 심재철 정책위의장은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에 따른 돈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라며 “때문에 복지를 얘기할 때는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이냐를 반드시 따져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 얘기는 감춰놓고 ‘무조건 복지만 잘 해 주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며 박 전 대표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임 정책위의장의 비판으로 박근혜표 복지가 한나라당 당론으로 채택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있을것으로 보인다.

복지 정책 관련 계속된 친이계의 반발과, 대권 레이스 막판까지 청와대 권력이 살아 괴롭힌다면 박 전 대표는 또 다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사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현 정부의 모든 부분을 자신이 담고 가기엔 부담이 있다. 그런 이유로 세종시 수정안 관련, 국회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도 ‘소신’ 발언을 했다. 대권을 염두에 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분명한 손익계산서가 그 앞에 놓인다면 심각한 고뇌에 빠질 수 있다. 임기 절반을 돈 이명박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달리 현재 뚜렷한 레임덕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2012년까지 이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면 박 전 대표와 계속된 신경전을 벌일 수도 있다. 

야권, ‘빈수레 복지’ ‘말 뿐인 복지’ 비판
여권에서 협조 안 하면, 설마 ‘독자행동?’
 

박 전 대표는 2004년 천막당사 시설 탄핵 역풍을 맞은 가운데 당을 지켜냈고, 2007년 대선 예비후보 경선에서 막강한 여론을 등에 업은 이 대통령이 당에서 튕겨 나가지 않게 적절히 조율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SBS 드라마 <대물>의 서혜림처럼 또 다른 조율을 해야될지 모른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불가론’은 지엽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불가론’은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힘 센 보수를 경험한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 정권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전 벌어진 예산안 단독처리와 같은 독단적 행위나, 권력형 비리가 또 다시 터진다면 ‘한나라당은 안 돼’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이 대통령이 지난 10월1일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도 했다. 이런 행보에 ‘변신’이라는 분석이 쏟아졌고, ‘박근혜 불가론’도 자연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박 전 대표와 친이계 모두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과 18대 국회를 거치며 절감한 ‘세력 부족’을 타파하기 위해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또한 친이계 의원들도 2012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은 ‘선수(選數) 쌓기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전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면 ‘박근혜 불가론’이 여러 차례 튀어나왔겠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다르다. 대선 8개월 전에 치르는 총선을 감안하면,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할 의원도 많지 않다. 2012년 수도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박 전 대표를 공격한다면,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표를 잃을 건 뻔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친박계 행사에 친이계 또는 중립 성향 의원들이 참석하는 일도 잦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3회 탄신제’에 친이계인 강석호 의원이 참석했고, 박 전 대통령 31주기 추도식에도 중립 성향 이범관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친이계도 날선 공격
‘이대로 두면 2012년 간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박근혜 불가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콘텐츠 채우기에도 열심이다. 박 전 대표가 복지 외에도 경제, 외교안보 분야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분야별 다양한 자문그룹을 만나 조언을 받으며 시야를 넓히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조언을 받는 사람은 당내 경제통인 이한구, 서병수 의원 등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한 인사는 ‘진보성향의 전문가를 만나 자문하는 등 한층 유연해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여야 어느 곳에서도 박 전 대표와 겨룰 진정한 대항마가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현재, 그는 ‘대물’로 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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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