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산업은행 무용론

엄청난 나랏돈 주물럭 ‘믿어도 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엄청난 금액의 나랏돈을 운영하는 국책은행. 우리가 알고 있는 KDB산업은행의 단면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은행은 각종 금융비리와 정치금융 논란에 휘말리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안팎에서 쉽게 해결하기 힘는 난제가 겹겹이 쌓여 있는 양상이다. 커져가는 ‘산업은행 무용론’이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다.

1954년 설립된 KDB산업은행은 기업금융 및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 구조조정 및 컨설팅 등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민영화됐다가 2015년에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산업은행은 IMF외환위기를 전후로 대우그룹 등의 워크아웃을 주도하는 등 금융시스템을 지켜내는 데 지대한 역할했다. 산업은행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 약 309조원에 이른다. 불과 5년 새 자산이 2배 넘게 급증했다.

외압엔 굽신
책임전가 급급

이처럼 막중한 책무를 떠안고 있지만 산업은행을 향한 안팎의 시선은 싸늘하다. STX와 대우조선해양이 좌초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데다 정권의 눈치를 봐야하는 실상이 만천하에 공개된 탓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터트린 폭탄 발언은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했다. 지난 8일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은 타의에 의한 결정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꾸준히 지적된 산업은행 관치 논란이 표면화된 순간이었다.

홍 전 은행장은 한 매체를 통해 “대우조선해양 공적 자금 투입을 두고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청와대·기재부·금융 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의 발언을 기점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서별관회의’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속기록 없이 이어져 온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인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주축으로 열리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로 알려져 있다.

역시 철밥통…곳곳에 산피아 포진
안팎서 거듭된 비리 혐의로 구설

홍 전 회장의 발언 직후 야당은 즉각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나섰고 후폭풍은 생각 이상으로 커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홍 전 회장이 서별관회의를 통해 최경환, 안종범, 임종룡 등 3인이 모인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며 “조선업의 부실로 인한 수많은 실직자들의 실직과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 구조적 부실이 결국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곧바로 홍 전 회장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임 위원장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관련 기자간담회서 “내부적으로 어떤 식의 보고가 이뤄졌기에 홍 회장이 서별관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처음 봤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금융 당국은 이미 그 전에 국책은행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부실
도대체 뭐했나

흥미로운 점은 홍 전 회장으로부터 촉발된 산업은행 외압설이 궁극적으로 산업은행 무용론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부각된 시점부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간 국책은행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분출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공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산업은행은 5억원 이상 여신 기업에 대해 ‘재무 이상치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재무 상태를 분석하도록 내부 지침을 마련해 둔 상태였다. 재무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의심되는 ‘최고위험 등급(5등급)’에 대해선 원인 규명 등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13년 2월 정부와 산업은행의 합계 지분이 48.61%였던 대우조선해양은 분석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 시스템을 활용한 재무 분석을 실시하지 않았다. 조선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점에서 의도된 누락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된 건 당연했다.

실제로 감사원이 감사 기간 중 이 시스템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2013∼2014년도 재무 상태는 ‘최고위험 등급’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이 같은 기간 8785억원이라고 공시한 영업이익은 6557억원의 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1조5342억원이 과다 계상된 셈이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5700억원, 2014년 2조187억원 등 해양플랜트 사업 40개의 총 예정원가를 임의로 차감했던 정황도 포착됐다.

뻥튀기된 영업지표의 수혜는 임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대우조선해양은 임원들에게 2014년 48억원, 지난해 17억원 등 총 65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직원들 또한 성과배분상여금 명목으로 2013년 1057억원, 2014년 927억원 등 총 1984억원을 받았다.

도덕적 해이는 3조2000억원대 영업손실이 드러난 지난해 7월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은 4조2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말 1176억원을 임직원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이 중 877억원은 성과상여금 명목이었다. 산업은행은 성과상여금 성격이 포함된 격려금 지급이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려놓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2012년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제출한 허위 경영실적 자료를 그대로 인정해 임원 성과급 35억원이 부당 지급되도록 방치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실적은 성과급 지급이 제한되는 G등급에 해당했지만 산업은행이 허위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50% 성과급 지급이 가능한 F등급으로 판정했다.

대우조선 수수방관에 싸늘한 여론
감시는커녕…부당한 돈잔치 나몰라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도 산업은행 무용론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한다. 산업은행 회장은 사실상 정권이 낙점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에 의해서 회장 자리가 채워지다 보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정부 당시 임명된 강만수 회장은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간사를 지낸 인물이다. 홍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인 홍 전 회장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을 맡아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스스로를 낙하산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은 2013년 국정감사 때 “낙하산으로 왔기 때문에 오히려 부채가 없다. 실력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발언해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홍 전 회장의 후임인 이동걸 현 회장 역시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금융권 인사들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 선언을 주도한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산업은행이 지속적으로 구설에 시달리는 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 본연의 업무보다는 정부의 국정철학에 따른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항상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산업은행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일 처리를 해왔던 게 화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은 낙하산
산피아 횡포


공교롭게도 낙하산 논란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했던 산업은행은 또 다른 낙하산 논란의 주범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이번에 낙하산 인사가 추진되던 사외이사 외에도 최고재무책임자로는 거의 예외 없이 산업은행 출신 이른바 ‘산피아(산업은행+마피아)’가 낙하산 인사로 임명되는 게 관행이었다.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위원으로도 산업은행 출신들이 연이어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고, 사외이사의 상당수도 관료와 정치인 출신 등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경영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에도 산업은행 출신들이 연이어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산업은행 출신들이 부실기업의 요직을 차지하며 경영 부실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 무용론은 결과적으로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퍼진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산업은행의 역할 재정립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 21일 정의당,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회 특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과 방만 경영을 내버려두었던 정부와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사태 수습에 나선 모습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방만한 경영과 부실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 고통만 안겨주고 있다”며 “공적자금만 투입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밝힐 수 있도록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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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