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발 ‘친이당’ 로드맵

‘대권 도전’ MB 가신들 뭉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이계 좌장’ 이재오가 움직였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창당을 시사했다. 전공인 ‘개헌’을 전제로 한 ‘중도 신당’이 바로 그것. 앞서 그는 친이(친 이명박)계 전현직 의원 20명과 만나 창당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알렸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중도’ 바람에 합류하는 모습. ‘제4지대’ 창조에 나선 정의화 전 의장과 안철수·유승민 등 여타 중도 성향 인사들과의 셈법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7년으로 예정된 제19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정계 개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다수의 전현직 의원들이 군불을 지피는 중이다. ‘중도’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 한때 ‘왕의 남자’라 불렸던 이재오 전 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부는 개헌론 바람에 오랜 침묵을 끝마친 그는 ‘중도 신당’이라는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제시한 상태다.

개헌론 바람에
침묵 깬 이재오

이 전 의원은 지난 2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임을 알렸다. 그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정권부터는 새로운 헌법에서 새로운 정치 체제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국민의 동의를 받기 위한 개헌 추진 국민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개헌을 전제로 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 내 정치적 노력을 하려고 한다.”

그를 깨운 것은 최근 정치권에 불고 있는 '개헌 바람'이다. 여야를 초월해 개헌에 공감하는 의원들은 최근 목소리를 높이며 그 필요성을 부르짖고 있다.


단적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친박(친 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등 야권에서는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대통령 4년 중임제 등 다양한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체로 정부 형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알려진 대로 이 전 의원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더민주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 함께 19대 때까지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는 복수의 언론 인터뷰는 물론 시민단체 포럼에서도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말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일례로 지난해 7월경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의 주최로 열린 ‘지방분권개헌원탁토론’에 참석한 이 전 의원은 “개헌은 블랙홀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재 국가 경쟁력 장애요인 중 제일 큰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말한 내용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후에도 이 전 의원은 지금의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공고히 할 뿐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제
“이젠 바꿔야”

앞서 라디오에서 밝혔듯 이 전 의원은 향후 계획으로 ‘개헌 추진 국민운동’ 또는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런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창당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지난달 31일, 이 전 의원과 친이계 전현직 의원 20여명은 만찬 회동을 가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 전까지 개헌을 기본으로 한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구상을 참석자들에게 전했다. 회동에 참석한 이들은 정병국·권성동 등 현역 친이계 인사들과 주호영·고흥길·진수희·최병국 등 전직 인사들로 모두 이명박정부 당시 요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해당 소식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 전 의원이 대선 후보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회동 자리에서 “당을 만들어 후보도 상황에 따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당은 정권 창출을 목표로 했을 때 생명력이 유지된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당들이 많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그리고 국민의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외연 확장에 신경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전 의원의 발언 또한 단발성에 그친 정당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전 의원 본인이 직접 나설 뜻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회동 자리에서 그는 “직접 공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동 참석자들의 만류도 있었다. 창당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정치 인생의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중도 정당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개헌론에 잠행 풀고 활동 재개
친이계 회동서 “차기 대선주자 낼 것”

친이계 좌장의 창당 소식에 정치권은 속칭 ‘친이당’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창당 계획을 최초로 알린 곳이 친이계와의 회동 자리였기에 더욱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해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낸 세월만큼이나 친이계의 유대는 끈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친이당으로 불리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하나로 묶여 있어야 하느냐”며 “나는 내 길을 갈 테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이계 재결집으로 비쳐지는 것에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확장성을 고려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만약 시작도 하기 전에 친이당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다면 여야의 중도 세력을 흡수하는 데 그만큼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도 신당을 위한 환경적 요건은 갖춰져 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4·13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하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바 있다. 지난 3월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그는 “불의한 권력에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친정을 떠났다.
 

최근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복당했음에도 이 전 의원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내가 복당시켜달라고 이야기할 그런 형편이 아니다”며 “그런 생각(복당)은 갖고 있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즉 현재 이 전 의원은 당적이 없는 상태다.

창당에 무게
대선 후보도?

이 전 의원은 과거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적이 있어 중도 색채가 강하다. 박정희정권 당시 유신독재를 비판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도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옥살이 5번 중 3번을 박 전 대통령 시절에 겪었다”며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지난 1990년 김문수, 장기표 등과 함께 진보 정당인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민중당 후보로 지난 14대 총선에 출마한 적도 있다.


지난 1994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민주자유당으로 전향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진보주의자”라며 “국가경영에서 건전한 진보주의자가 건전한 보수와 함께 나가야만 우리 시대의 과제인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최근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이 전 의원을 친이계 인사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이 전 의원의 경우 합리적인 보수 인사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때 국민의당이 이 전 의원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선을 도와달라”며 이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갔다는 기사가 종편을 통해 보도된 후였다. 국민의당 창당 전부터 “합리적 보수 인사는 끌어안겠다”고 밝혀온 안 대표였기에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이 전 의원과 안 대표의 인연이 과거 이명박정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도 영입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안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의화 새한국의비전과 연대 가능성↑
친정 복귀 여부…정병국 당권에 달려

결국 향후 이 전 의원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제4지대’에서 독자 세력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어느 누구와 손잡게 될 지가 더욱 주목된다.


가장 힘을 받고 있는 것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을 잡는 그림이다. 정 전 의장 또한 최근 사단법인 ‘새한국의비전’ 출범식을 갖고 제4지대 세력화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퇴임식에서 “정파를 뛰어넘어서는 미래지향적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펼쳐 새로운 정치 질서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 이는 중도를 표방하는 이 전 의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또한 정 전 의장, 이 전 의원 두 사람 모두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측면에서 가능성을 높인다. 이 전 의원처럼 정 전 의장 또한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명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 전 의원의 주도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꾸려졌을 당시 정 전 의장은 개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최근에 있었던 새한국의비전 창립 기념사에서도 “단임제를 선택했던 시기의 장기집권 우려는 사라진 지 오래고 이미 권력 집중 등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개헌을 통해 단임제의 흠결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이다.
 

새한국의비전 발기인 명단에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친이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도 두 사람의 연대에 힘을 보태는 요소다. 새누리당 김용태·정병국 등 현역은 물론 여권의 정두언·조해진 전 의원 등 다수의 친이계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개헌에 적극적인 더민주 우윤근 전 의원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정 전 의장과 이 전 의원 사이의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화·이재오
개헌으로 단결

새한국의비전이 예상보다 바람을 못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연대를 예상케 하는 요소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정 전 의장과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합심해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6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손 전 고문에게 ‘정 전 의장과 제4세력에 함께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함께 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답변을 해서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전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최근 새누리당 복당에 성공해 정 전 의장과의 정치적 연대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중도 신당을 내건 이 전 의원의 등장은 정치결사체를 생각하는 정 전 의장 입장에서 반가울 수 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제3지대에서 정 전 의장이 초당적인 신당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초당적인 것들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개헌 문제가 부상하면서 나에게 의견을 묻는 데가 여럿 있다”라며 “정 전 의장이 (개헌 등을 추진)하는 것도 좋다”는 입장을 전했다.

비록 이 전 의원이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신당을 통해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향후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통해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충분히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 대표 출마자들이 많으며, 실제로 이주영·이정현·정병국 의원 등은 이미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 중 친박계는 이주영·이정현 의원 등 다수의 후보가 난립한 반면 비박계는 정병국 의원 단일 후보로 정리된 모습이다.

정 의원이 당선된다면 이 전 의원의 거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이자 이명박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인 정 의원은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이 전 의원이 신당 청사진을 내비친 자리에서도 정 의원이 참석해 있었다.

때문에 정 의원이 당권을 잡은 후 이 전 의원의 신당과 새누리당이 흡수·통합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민련·선진통일당 등 군소정당들이 새누리당과 합쳐진 사례만 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이달 초까지 개헌 추진과 창당을 위한 조직 정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2014년에 출범한 ‘개헌추진국민연대’의 임원들과 만남을 갖고 향후 행보에 대한 조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개헌전도사’의 신당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 전 의원의 다음 행보는 국회 개헌 특위 구성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성동 전격 사퇴 내막
전대 잡기 위해 내쳤나?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보였던 권성동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전격 사퇴했다. 권 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복당 결정의 책임을 나에게 묻는 듯한 처사로 인해 사무총장직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오늘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전반적으로 유감을 표명해주고 앞으로 혁신비대위를 잘 이끌겠다고 각오를 말씀하신 만큼 (사퇴를 요구하는) 비대위원장의 뜻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권 총장의 사퇴로 계파 대리전 양상은 일단락됐다. 앞서 혁신비대위가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여권 무소속 의원 7명의 ‘일괄 복당’을 승인하자 친박계가 권 총장 책임 사퇴를 주장하고 나온 바 있다. 이에 권 총장은 “명분이 없다”며 버텼지만 결국 사흘 만에 자진 사퇴로 선회했다.

친박계가 권 총장 사퇴를 주장한 것이 전대를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주장이 비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당규상 비대위 사무총장은 전대준비위원장으로 임명돼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친박계가 권 총장 찍어내기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친박계에서는 해당 주장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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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