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넥슨 사태 풀스토리

기업인-검사장 검은 커넥션 "더러워도 너무 더럽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검찰의 칼날이 넥슨을 겨누기 시작했다. 비상장 주식을 구입해 대박을 친 진경준 검사장과 넥슨의 검은 커넥션을 그냥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된 넥슨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지난 4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들의 최근 1년간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을 공개했다. 청와대 및 행정부처 1급 관료, 국립대 총장, 지방자치단체장, 시·도 교육감, 광역의원 등을 포함한 명단에서 156억5600만원을 신고한 진경준 검사장은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이었다. 약 40억원에 달하는 진 검사장의 재산 증가폭이 공직자 2328명 가운데 단연 으뜸인 까닭이다.

넥슨 주식으로
100억 갑부 등극

공교롭게도 재산변동내역은 진 검사장과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NXC 회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부각시키는데 일조했다. 진 검사장의 재산내역이 그의 발목을 잡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넥슨을 사이에 둔 진 검사장과 김 회장 간 협력 관계의 시작은 200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넥슨은 김 회장과 그의 부인이 전체 지분의 70%를 지닌 사실상 오너 지배체제의 비상장사였다. 김 회장은 핵심 인력들에게도 회사 주식을 나눠주길 꺼려할 만큼 지분에 민감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 검사장은 넥슨의 장외주식을 대량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승승장구하던 넥슨의 지분을 얻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진 검사장은 예외였던 셈이다.

진 검사장이 보유했던 넥슨 주식의 진면목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2015년 돌연 넥슨 주식 매각에 나선 진 검사장은 결과적으로 12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는데 성공했다. 넥슨이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된 이후부터 주식이 폭등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마냥 평탄해 보였던 진 검사장의 재산 증식 과정은 공직자 재산내역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진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매입할 때 사용한 자금의 출처를 두고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 무렵이다.

자신을 둘러싼 구설이 꼬리를 무는 상황에서 진 검사장은 넥슨 주식 1만주를 자신의 돈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보유한 자금과 장모에게 빌린 돈을 사용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진 검사장이 2005년 6월 넥슨으로부터 4억2500만원을 빌려 비상장 주식 1만주씩을 구입한 정황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파악한 것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05년 10월까지 분할상환 방식으로 자금을 모두 갚았던 사실마저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윤곽 드러나는 주식 특혜 의혹
진경준, 넥슨 돈으로 120억 꿀꺽

넥슨은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빠른 거래를 위해 일시적으로 자금을 대여했던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만 주식 매수 자금을 대여한 이유에 대해서는 긴박했던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넥슨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진 검사장을 향한 의혹 어린 시선은 어느덧 특혜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주식 매입 대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김 회장이 관여했을 법한 정황 역시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넥슨으로부터 주식 매입자금을 빌릴 때 넥슨이 상환 때까지 넉 달간 이자를 요구하지 않은 점, 또 주식 양도 당시 정관 명시 사항과 달리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점 등은 일반적인 금전 거래와는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넥슨은 차용증이나 대금 상환 문서 등 당시 상황을 증명할 자료에 대해서는 “11년 전 일이라 당장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공개를 꺼리는 상태다.

넥슨 측은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주식 판매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상법에 따라 정상 거래된 것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부정 취득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는 시점에서부터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검찰은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에 대한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주식 매입 자금을 둘러싼 진 검사장의 소명이 거짓으로 확인된 만큼 처벌 가능성을 떠나 의혹 전반을 소상히 규명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돈놀이
속 보이는 꼼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심우정 부장검사)는 지난 3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 자료와 법무부의 자체 감찰 자료를 검토하며 소환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우선 진 검사장이 어떤 배경에서 넥슨 주식을 매입했는지, 매입 자금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를 잘 알만한 관련자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진 검사장이 사들인 넥슨 주식을 현직 검사와의 친분 유지를 위해 회사 측이 매수 기회를 제공한 ‘보험성 뇌물’로 볼 수 있느냐다. 이 경우 진 검사장에게 4억원이 넘는 주식 매입 대금을 빌려준 김 회장의 소환조사는 불가피하다. 수사 과정에서 뇌물수수 혐의 외에 친구 사이인 진 검사장과 김 회장 간 부적절한 거래나 진 검사장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 다른 불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파장은 더욱 키질 수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도 사안의 중요성 등을 감안해 진 검사장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된 후 법무부에 징계를 청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사-후징계' 방침은 수사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검찰 수사에는 갖가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진 검사장의 주변 자금 흐름을 규명한 공직자윤리위의 계좌추적 관련 자료는 이번 수사의 핵심 사안이지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법규상 비공개 대상이어서 공문으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이 확보한 자료에도 이 부분은 빠져 있다.

칼 겨눈 검찰
처벌은 글쎄

압수수색 영장 등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려면 수사할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일단 뇌물죄 법리와 공소시효부터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넥슨 주식을 뇌물로 본다고 해도 취득 시기가 2005년이므로 뇌물죄 공소시효(당시 법 기준으로 10년)를 넘긴다. 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이 발부해줄 가능성이 희박한 셈이다. 검찰은 수사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으로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 수뢰 후 부정처사는 뇌물수수가 아닌 부정처사를 기준 시점으로 삼는다. 부정한 돈을 받은 뒤 직무에 관해 부정한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 시점부터 시효를 따진다. 검찰이 공직자윤리위의 자금 추적 내역을 확보한다면 이 법리를 적용할 가능성을 감안해봄직 하다. 특히 진 검사장이 넥슨을 둘러싼 송사나 수사기관의 내사 과정에서 입김을 넣으며 넥슨의 뒤를 봐줬거나 직접 부정행위를 했다는 단서가 있다면 적용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

다만 수뢰 후 부정처사 적용 방안 역시 한계점이 명확하다. 일단 넥슨 주식거래가 뇌물인지부터 입증하기 어렵다. 넥슨의 뒤를 봐줬다는 단서를 찾아내고 이를 뒷받침할 진술 및 관련 물증을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모님 팔더니…금방 드러난 거짓말
칼날 치켜든 검찰…좁혀드는 수사망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주식 매매 과정에 관여한 넥슨 관계자 등 참고인들을 조만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로부터 모종의 수사 단서가 나올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수사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자 법무부의 초기 부실 감찰을 꼬집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 검사장 의혹이 불거졌을 때 법무부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법무부 차원의 징계의결 등의 조치 없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우선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전에 진 검사장에 대한 직권감찰의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감찰규정에 따르면 법무부나 검찰청 소속 공무원이 형사처벌 또는 징계처분의 요건이 되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이유가 있을 경우 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한 언론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항으로 검찰 자체 감찰로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감찰을 명령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공직자 재산 공개가 윤리위 소관이라는 이유로 법무부 차원의 조사를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진 검사장의 사표가 제출됐을 때도, 징계 요구가 빗발칠 때도 추후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법무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일 넥슨이 진 검사장의 주식매입에 4억원을 대여했다고 밝힌 후였다. 그제야 법무부는 대검에 검찰총장 징계 신청을 요청했다. 법무부의 징계와 동시에 검찰의 형사 처벌 가능성에 대한 조사가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 사안임에도 모든 책임을 공직자윤리위에 떠넘긴 전형적인 ‘제식구 감싸기’란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명확한 수사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진 검사장의 부당 주식거래 의혹과 관련과 자기 돈 한 푼 없이 1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을 공론화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재경 더민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넥슨의 비상장 주식 거래로 1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는 진 검사장이 주식 매입 당시 넥슨의 자금을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진 검사장의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난 만큼 검찰은 조직의 명예를 걸고 진경준-김정주 커넥션의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질타했다.


지난달 19일 진 검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던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김 회장마저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김 회장이 뇌물공여를 목적으로 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을 저가에 양도했다며 조속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빗발치는 비난
흠집 난 명예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회사의 주식을 양도하기 위해서는 김 회장의 승인이 필수”라며 “만약 진 검사장에게 17만원 이하에 주식을 양도했다면 이는 특혜를 제공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주-진경준 관계 재조명

넥슨 주식 부정 취득 의혹이 불거지면서 진경준 검사장과 김정주 NXC 회장의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진 검사장은 서울대 법학과 86학번으로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인 김 회장과 동문이다. 이들은 졸업 이후 사회에서 관계를 유지해 온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넥슨사태에 연루된 또 다른 인물이 김 네이버 대표가 LG에서 네이버로 옮기게 된 배경에도 진 검사장과 김 회장의 소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진 검사장이 김 회장에게 서울대 법대 4년 선배인 김 대표를 소개했고 이후 김 회장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의장에게 김 대표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과 진 검사장을 중심으로 이 의장, 김 대표의 인연이 형성된 셈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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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