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지난 6월 초에 찾은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은 휴일 오후인데도 예상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계단의 잉어와 해바라기는 사라졌지만, 계단 곁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중국인 유학생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왔다”며 웃었다.
마을에선 벽화 복원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마을이 여전히 관광지로 활성화되길 바라는 주민들은 ‘벽화 복원 동의서’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한켠에선 “그리면 또 지우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했다. 대로변에 가게를 소유한 한 주민은 “다른 동네에 (관광객을) 빼앗길 수 없다”며 “복원을 원하는 주민이 반 이상 된다. 삭막하고 흉하지 않나? 물고기가 얼마나 예뻤는데 다 지워놔서 지금 관광객이 없다”며 근심을 드러냈다.
이해관계 충돌
인근 한 상인은 “벽화 복원도 현재 분위기로선 어려워 보인다”며 “우리 벽인데도 눈치가 보여서 맘대로 못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이 상인은 가게 흰 벽에 벽화를 그리려다가 지난 4월 중순의 벽화 삭제 소동을 겪고 계획을 보류했다.
그는 “예전엔 시간제 직원을 3명 썼는데 다 그만두게 했다. 벽화가 지워진 영향이 크다”며 “메르스 이전엔 현재의 10배 정도 관광객이 찾았다. 줄서서 올라올 정도였다. 서울성곽 유네스코 등재, 재생사업, 외국인 손님 등을 보고 들어온 사람은 손해가 크다”고 피력했다.
또 다른 주민은 “벽화를 복원하는 것이 급한 게 아니다”라면서 “반대 주민을 이해시키고 달래는 게 먼저지 그림이 먼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제 와서 시가 주택지구로 제한한다고 해서 관광객이 안 오겠나? 참고 살았는데 제한을 하니까 참지 못하고 지운 것”이라고 밝혔다.
벽화가 지워진 것은 지난 4월15일이었다. 마을주민 박모씨와 권모씨 등 주민 5명이 회색 수성 페인트로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계단의 해바라기 그림을 지웠다. 8일 후인 23일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해 잉어 그림이 지워졌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수년 전부터 몰려든 관광객의 소음과 낙서, 쓰레기 투기 등으로 고통을 겪어왔다고 진술했다.
잉어 계단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도 “관광객이 와도 사진만 찍고 떠들지 사먹는 것도 없다”면서 “우리 동네엔 봉제공장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이 많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더 시끄러운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원래 서울 이화동은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현장, 빈민촌으로 그려졌지만 마을공동체의 정이 살아있고 도둑이 없고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낙후지역 환경개선사업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들여 벽화조성 사업에 나섰다. 68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마을 곳곳의 담벼락에 벽화 16점을 그렸다. 적은 비용으로 환경을 개선하는 저층위의 도시재생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한 주민은 “10년 전에 노인정에서 물었었다”며 “공청회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관 주도의 공공사업과 이주 예술가, 상인들 사이에서 정작 주민들은 소외됐다. 올해 초엔 지난 2003년부터 추진돼온 재개발사업이 전면 백지화되고, 서울시에서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관광화하는 재생사업안을 내놨다. 이 역시 개발이익이 주민에게 골고루 가지 않으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공동체는 와해됐다.
서울시가 상업지구 사이에 주거지구를 샌드위치처럼 설정하는 계획안을 내놓자, 전체 131가구의 마을은 그 즉시 찬성과 반대로 갈려졌다. 상업지구에 포함된 가구는 찬성했고 주거지역에 포함된 가구는 반발했다. 전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등을 낼 수 있고 가옥을 팔고 이사를 나갈 수도 있지만, 후자는 집값이 떨어지고 매매도 되지 않아 집을 팔고 나가기도 어렵다. 벽화를 지운 박씨도 후자에 속했다. 박씨 입장에선 관광지로 개발돼도 아무 실익 없이 사생활 침해와 소음 공해 등 고통만 가중되는 꼴인 것이다.
현재 주민들은 각자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시에선 딱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난 2014년 종로구청장실을 점거하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으나 구 역시 시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수차례 전화를 하고 메모를 남겼으나 부서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 떠넘기기를 반복했다. 주거환경정책팀 담당 주무관은 끝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해바라기 계단 사라져도 관광객 북적
찬반 주민들 갈등 심화…해결책 없어
원래 이화동은 관광지로 개발하기엔 ‘주거지’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이화장과 서울성곽이 있어서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으나 낡은 가옥이 공방이나 카페로 리모델링되면서 대학로 연극인이나 봉제공장 노동자가 세들었던 10만∼15만원짜리 값싼 월세가 사라졌다. 벽마다 특색 없는 키치 풍의 그림이 점령했다. 예술가들이 이주해와 카페나 공방을 냈어도 주민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기업,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박물관과 게스트하우스, 도시텃밭 등 계획은 거창했지만 실현된 것은 없었다. 시유지에 세워졌고 시예산도 투입된 마을박물관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간의 언론 보도와는 달리 원주민이나 그 자녀가 운영하는 상업시설은 찾기 어려웠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집주인은 웃었지만 세입자는 울상을 지었다.
인근에선 “벽화 그림에 왜 억대 예산이 들어가냐” “시에서 준 지원금과 보조금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주민은 배제하고 벽화 화가 말만 듣는다”는 말이 돌았다.
벽화가 지워진 것에 대해 문화 파괴 행위라는 비판이 있고 마을 주민 몇몇은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주 예술가들이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전국적으로 지자체마다 공공미술사업이 경쟁적으로 추진돼왔으나 주민생활과 연계된 완성도 높은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화동도 이주예술가에 의해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정주기능이 저해됐고 이러한 시설을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마을의 한 주민은 “이미 관광지가 됐고 시장이 됐기에 이제 와서 못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지가가 올랐다고 해도 내려가서 타 지역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미 관광지가 된 곳은 주민을 관광 가이드나 도슨트로 고용하는 등 주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방법을 모색해 그 과실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접 가본 이화동은 벽화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부근에 낙산공원과 대학로가 있고 청계천, 창경궁, 창덕궁이 가깝다. 1950년대 지어진 일본식 기와와 작은 테라스를 갖춘 영단주택, 서울성곽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등 오래된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마을이다.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로 공방, 카페, 박물관,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 야경도 매력적이다.
답답한 주민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공공미술사업에 대해 “해당 공간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의미 부여가 어렵고 공공미술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재한 것 같다”며 “해당 공간 속에서 이미지가 어떤 의미를 파생시킬지,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공간과 이미지와 주민의 삶과 문화 속에서 진지하게 프로젝트를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단선적으로 작업들이 이뤄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