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소동’ 이화동 벽화마을은 지금…

땅값 올랐어도 공동체는 와르르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지난 6월 초에 찾은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은 휴일 오후인데도 예상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계단의 잉어와 해바라기는 사라졌지만, 계단 곁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중국인 유학생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왔다”며 웃었다.

마을에선 벽화 복원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마을이 여전히 관광지로 활성화되길 바라는 주민들은 ‘벽화 복원 동의서’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한켠에선 “그리면 또 지우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했다. 대로변에 가게를 소유한 한 주민은 “다른 동네에 (관광객을) 빼앗길 수 없다”며 “복원을 원하는 주민이 반 이상 된다. 삭막하고 흉하지 않나? 물고기가 얼마나 예뻤는데 다 지워놔서 지금 관광객이 없다”며 근심을 드러냈다.

이해관계 충돌

인근 한 상인은 “벽화 복원도 현재 분위기로선 어려워 보인다”며 “우리 벽인데도 눈치가 보여서 맘대로 못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이 상인은 가게 흰 벽에 벽화를 그리려다가 지난 4월 중순의 벽화 삭제 소동을 겪고 계획을 보류했다.

그는 “예전엔 시간제 직원을 3명 썼는데 다 그만두게 했다. 벽화가 지워진 영향이 크다”며 “메르스 이전엔 현재의 10배 정도 관광객이 찾았다. 줄서서 올라올 정도였다. 서울성곽 유네스코 등재, 재생사업, 외국인 손님 등을 보고 들어온 사람은 손해가 크다”고 피력했다.

또 다른 주민은 “벽화를 복원하는 것이 급한 게 아니다”라면서 “반대 주민을 이해시키고 달래는 게 먼저지 그림이 먼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제 와서 시가 주택지구로 제한한다고 해서 관광객이 안 오겠나? 참고 살았는데 제한을 하니까 참지 못하고 지운 것”이라고 밝혔다. 


벽화가 지워진 것은 지난 4월15일이었다. 마을주민 박모씨와 권모씨 등 주민 5명이 회색 수성 페인트로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계단의 해바라기 그림을 지웠다. 8일 후인 23일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해 잉어 그림이 지워졌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수년 전부터 몰려든 관광객의 소음과 낙서, 쓰레기 투기 등으로 고통을 겪어왔다고 진술했다.

잉어 계단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도 “관광객이 와도 사진만 찍고 떠들지 사먹는 것도 없다”면서 “우리 동네엔 봉제공장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이 많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더 시끄러운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원래 서울 이화동은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현장, 빈민촌으로 그려졌지만 마을공동체의 정이 살아있고 도둑이 없고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낙후지역 환경개선사업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들여 벽화조성 사업에 나섰다. 68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마을 곳곳의 담벼락에 벽화 16점을 그렸다. 적은 비용으로 환경을 개선하는 저층위의 도시재생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한 주민은 “10년 전에 노인정에서 물었었다”며 “공청회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관 주도의 공공사업과 이주 예술가, 상인들 사이에서 정작 주민들은 소외됐다. 올해 초엔 지난 2003년부터 추진돼온 재개발사업이 전면 백지화되고, 서울시에서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관광화하는 재생사업안을 내놨다. 이 역시 개발이익이 주민에게 골고루 가지 않으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공동체는 와해됐다. 

서울시가 상업지구 사이에 주거지구를 샌드위치처럼 설정하는 계획안을 내놓자, 전체 131가구의 마을은 그 즉시 찬성과 반대로 갈려졌다. 상업지구에 포함된 가구는 찬성했고 주거지역에 포함된 가구는 반발했다. 전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등을 낼 수 있고 가옥을 팔고 이사를 나갈 수도 있지만, 후자는 집값이 떨어지고 매매도 되지 않아 집을 팔고 나가기도 어렵다. 벽화를 지운 박씨도 후자에 속했다. 박씨 입장에선 관광지로 개발돼도 아무 실익 없이 사생활 침해와 소음 공해 등 고통만 가중되는 꼴인 것이다.

현재 주민들은 각자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시에선 딱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난 2014년 종로구청장실을 점거하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으나 구 역시 시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수차례 전화를 하고 메모를 남겼으나 부서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 떠넘기기를 반복했다. 주거환경정책팀 담당 주무관은 끝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해바라기 계단 사라져도 관광객 북적
찬반 주민들 갈등 심화…해결책 없어

원래 이화동은 관광지로 개발하기엔 ‘주거지’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이화장과 서울성곽이 있어서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으나 낡은 가옥이 공방이나 카페로 리모델링되면서 대학로 연극인이나 봉제공장 노동자가 세들었던 10만∼15만원짜리 값싼 월세가 사라졌다. 벽마다 특색 없는 키치 풍의 그림이 점령했다. 예술가들이 이주해와 카페나 공방을 냈어도 주민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기업,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박물관과 게스트하우스, 도시텃밭 등 계획은 거창했지만 실현된 것은 없었다. 시유지에 세워졌고 시예산도 투입된 마을박물관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간의 언론 보도와는 달리 원주민이나 그 자녀가 운영하는 상업시설은 찾기 어려웠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집주인은 웃었지만 세입자는 울상을 지었다. 

인근에선 “벽화 그림에 왜 억대 예산이 들어가냐” “시에서 준 지원금과 보조금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주민은 배제하고 벽화 화가 말만 듣는다”는 말이 돌았다.  
 

벽화가 지워진 것에 대해 문화 파괴 행위라는 비판이 있고 마을 주민 몇몇은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주 예술가들이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전국적으로 지자체마다 공공미술사업이 경쟁적으로 추진돼왔으나 주민생활과 연계된 완성도 높은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화동도 이주예술가에 의해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정주기능이 저해됐고 이러한 시설을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마을의 한 주민은 “이미 관광지가 됐고 시장이 됐기에 이제 와서 못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지가가 올랐다고 해도 내려가서 타 지역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미 관광지가 된 곳은 주민을 관광 가이드나 도슨트로 고용하는 등 주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방법을 모색해 그 과실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접 가본 이화동은 벽화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부근에 낙산공원과 대학로가 있고 청계천, 창경궁, 창덕궁이 가깝다. 1950년대 지어진 일본식 기와와 작은 테라스를 갖춘 영단주택, 서울성곽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등 오래된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마을이다.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로 공방, 카페, 박물관,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 야경도 매력적이다.

답답한 주민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공공미술사업에 대해 “해당 공간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의미 부여가 어렵고 공공미술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재한 것 같다”며 “해당 공간 속에서 이미지가 어떤 의미를 파생시킬지,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공간과 이미지와 주민의 삶과 문화 속에서 진지하게 프로젝트를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단선적으로 작업들이 이뤄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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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