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여성 상위시대 막후

무능한 남편이래 콕 처박혀 있으라우∼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2010년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속 한 여성 등장인물이 “내가 장사를 안 하면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나”라며 “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것은 북한의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대사로 보인다. 계획경제가 붕괴된 후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북한에선 여성이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일명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고, 주민들은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로 먹고 살기 시작했다. 현재 북한엔 400여개의 장마당(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계획경제는 실종됐고 사적 경제가 주요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국영기업은 제 역할을 못하고 경쟁력이 없어진 지 오래다. 사경제의 발원지이자 사회변화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장마당이 지목됐다. 이러한 장마당의 구성자는 4분의 3 이상이 여성이다.

400여개 장마당
대부분 여성들

탈북민을 대면조사한 결과를 담은 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의 90% 이상이 북한에서 사적 경제 활동을 했고, 70% 이상이 장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약 70%가 집을 사고팔았다고 진술했다. 이미 전체 경제의 80%가량이 사적 소유로 구성돼 있다.

이렇듯 ‘고난의 행군’ 이후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하면서 남성들이 가동을 멈춘 공장에 출근하는 동안 여성들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했다. 1998∼2008년 사이 비공식적 경제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북한 가구 전체소득의 78%에 달할 정도였다. 북한 노동자가 받는 한달 3000∼4000원가량의 급여로는 쌀 1㎏을 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여성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원래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초의 여러 사상 중 가장 ‘여성주의적’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제도적 성평등 뿐 아니라 양성의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추구했다. 1920년대 레닌이 지도자였던 시절의 소비에트 연방에선 실제로 차별철폐 정책이 시행됐다.


1945년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다음해 성평등법이 선포됐다. 이에 따라 축첩이 금지됐고 이혼에 대한 제약이 완화됐다. 법으로 여성의 재산권을 보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북한사회는 제도적으로만 양성평등을 부르짖을 뿐 실제론 극단적인 ‘가부장제’ 사회다. 북한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론 무신론 사회인 것과 마찬가지다. 동유럽 국가에서 사회주의 경제 붕괴는 성평등 붕괴로 이어졌지만 반대로 북한에선 여성지위 향상을 가져왔다.

1995년부터 도시에 장마당이 생겼다. 장마당은 곧 경제생활의 중심이 됐다. 수백만의 여성들이 장사와 가내수공업으로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처음엔 가재도구를 음식과 물물교환하다가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았다. 더 큰 규모의 장사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2006년 12월 북한정권은 신체 건강한 남성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북한에서 남성들은 공식적인 직장(국영기업)을 가지도록 강제된다. 만약 결근하면 노동단련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남성이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규제는 실제론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90년대 중반 대기근 후 배급제 해체
각자 전역 돌면서 장사로 먹고 살아

1년 후인 2007년 12월, 당국이 50세 미만의 여성은 시장거래를 할 수 없다고 금지시키자, 이번엔 달랐다. 여성들은 즉각 반발했다. 다음해 3월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특히 청진시에서 크게 일어났다. 당국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나이든 여자 친척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보안원(경찰)이 물어보면 "시어머니가 장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잠시 들렀다"고 둘러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금지령은 흐지부지 됐고 여성들은 예전처럼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다. 시장을 직접 단속해야 하는 하급관리들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눈감아 준 영향이 컸다.


이렇게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달라지면서 미미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으로 보이는 징후도 포착됐다. 일례로 여성이 신청하는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탈북자를 직접 면담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는 “북한은 모든 통계를 비공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할 순 없지만 결혼연령이 늦춰졌다거나 여성이 먼저 이혼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예전처럼 온 동네가 나서서 비난하진 않는다”고 귀띔했다.

갈수록 지위 향상
먼저 이혼 요구도

여성의 사회 진출도 증가했다. 북한은 2002년 9월 유엔에 제출한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에 대한 최초 보고서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적 영역의 여성간부 비율을 증가시켰으며 여성재판관 비율이 10%, 외무성 직원의 15%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국제기구에 제출된 국가 발간 정식 보고서이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 북한 여성은 바지를 입을 수 없게 돼 있다. 바지가 ‘여성에게 걸맞지 않으며 조선의 미풍양속에 배치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법적으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없다.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점차 사문화됐고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이제 북한 전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지를 입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다.  

북한 여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과거와 비교해 여성의 지위가 나아진 면은 있다”며 “말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다거나 원하는 것을 추구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장사를 하면서 많이 다니고 아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예전엔 25세가 넘기 전에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현재는 돈을 잘 벌고 똑똑한 여자는 혼자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통념도 있다. 그래도 독신은 없는 것 같다. 결혼연령이 서른 정도까지 용인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김석향 교수는 북한여성이 여전히 ‘열악한’ 지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마당에 나가서 돈을 벌어도 가정폭력이 줄지 않았다. 인민반(20∼40가구 정도 묶어 감시관리하는 우리의 통·반 개념) 기준으로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를 조사하면 90% 정도는 맞고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학교나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을 제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버지나 남편의 지위에 여자가 편승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체소득의 80% 부인 수입
반대로 남자들 위치 급락

김 교수에 의하면, 시장에서 큰 규모로 장사하는 여성의 뒤엔 거의 언제나 ‘카바꾼’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영어 ‘cover’의 한국식 변형이지만, 정작 북한인들은 이것이 영어인 줄 모른다고 한다. 뇌물을 ‘카바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힘 있는 남성이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북한에선 여성이 높은 직위에 있으면 "누구 딸이냐" "남편이 누구냐"고 먼저 물어본다. 가족이 고위직이 아니라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직접 만난 소위 ‘접견자’여야 한다.

북한 주체사상을 연구해온 정대일 북한인권제3의길연구소장은 “사회가 병영화되면 근력 숭배 사회가 된다. 배급이 끊기면서 국경지대 거주 여성들이 중국으로 나와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 평양과 변경은 차이가 많이 난다. 변경과 하층의 변화가 유의미하려면 평양에서 개혁개방으로 나가야 한다. 계속 폐쇄적으로 남아있으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시장화를 주도할 주체로 신흥부유층(돈주), 젊은 학생그룹과 함께 ‘여성’을 꼽는 전문가가 많다. 북한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공권력 지식인이 주도해야 하지만 신흥부유층과 장마당 여성 등 변경의 변화도 ‘주요변수’라고 본다.

잘 버는 여성
뒤엔 카바꾼


대북접촉을 30년간 해온 김천식 통일평화연구원 특임연구원(전 통일부 차관)은 “여성들이 사회변화에 수용성이 더 높다. 사회변화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민생에의 요구가 시장활동을 자극, 확산했고 시장화는 정보화, 자유화와 서로 의존적 관계다. 김정은 승계 이후 학생들이 변화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shin@ilyosisa.co.kr>


[참고문헌]

안드레이 란코프 <리얼 노스코리아> 개마고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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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