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라인’ 엇갈린 행보 내막

‘순망치한’서 ‘각자도생’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사자성어가 이만큼 잘 어울리는 관계도 없었다. ‘김무성-유승민’은 비박계 투톱으로 불리며 서로 공조했다. ‘증세 없는 복지’가 정치권에 떨어졌을 당시 두 사람은 “불가능”이라 입을 모았다. 덩달아 비박계는 수에서 친박계를 압도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상생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지난해 6월경 지금과는 다른 ‘국회법 파동’으로 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면서 두 사람의 상보적 관계도 막을 내렸다.

김무성-유승민, 소위 ‘K-Y라인’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을 신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서 서로 힘을 합쳤던 모습과는 달리 1년이 지난 지금은 각자의 길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서울의 모 식당에서 측근들을 만나 ‘만찬정치’를 시작한 반면, 대학을 찾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강연정치’로 활동을 알렸다. 김 전 대표가 음지에서 기회를 노린다면 유 전 원내대표는 양지로 나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잠행하던
여권 두 잠룡

4·13총선 이후 여권의 두 잠룡은 잠행을 거듭해왔다. 김 전 대표는 간혹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마주칠 때 “총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김 전 대표는 새누리당이 비대위 문제로 내홍을 겪을 때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20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도 불참할 정도로 ‘자숙 모드’를 유지하는 모습. 여당에 대선 주자가 없다는 평도 김 전 대표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유 전 원내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갖은 방해를 뚫고 당선된 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침묵하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때는 지난 4월19일. 바로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을 때다.

이후에는 다분히 복당을 의식한 행보였다. 그는 대구지역 의원들과의 회합도 자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유 전 원내대표와 관련해 “자기 정치한다고 대통령을 더 힘들게 만들고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평소의 비애와 허탈감 같은 것을 전반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국회법 파동 당시 ‘배신의 정치’를 언급했지만, 유 전 원내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두 사람이 최근 활동을 재개하고 나섰다.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간 지 1년이 흘렀고, 총선이 있은 후 한 달 반여가 지난 뒤였다. 촉매제가 된 것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이었다. 이를 전후로 두 사람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앞서 반 총장은 5박6일간 국내에서 일정을 보냈으며 대권 출마를 시사하는 발언을 남겨 국내 정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졌다.

김무성 음지
측근과 만찬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서울 모 음식점에서 서울지역 의원 다수와 만찬을 가졌다. 현장에는 김 전 대표와 가까운 김성태, 이종구, 정양석, 박인숙 의원 등 서울 지역 의원과 김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학용 의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당 대표로 있을 당시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당 대표를 하면서 박 대통령과 제대로 독대하면서 얘기한 적이 없다”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러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도가 나간 후 김 전 대표 측은 친목 도모 차원의 단순한 만남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당 혁신을 앞두고 대선 후보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수장이 움직이자 친무(친 김무성)계 인사들의 잰걸음도 덩달아 빨라진 모습이다. 그간 외부 활동을 자제해왔던 계파 인사들이 최근 당 요직에 출마할 뜻을 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군현·강석호 의원이 당 중책에 도전한다. 김 전 대표 체제에서 두 사람은 각각 사무총장과 사무부총장을 맡은 바 있는데, 이 의원은 국회부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의도에서는 김 전 대표의 대권을 위한 ‘사전정지작업’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을 떠나야 하는 국회의장과 달리 국회부의장은 당적이 유지된다. 때문에 국회부의장직은 정치적 발언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자리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0월경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도마 위에 올랐을 당시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비박계 투톱 1년 만에 달라진 위상
반기문 방한에 여권 잠룡들 기지개

당시 정 부의장은 “역사 교과서 검정제가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인사들에 의해 집필·검정·채택이 이뤄진다면, 본래 의도했던 다양성·자율성·창의성 구현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 의원이 국회부의장을 맡게 되면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표 당선을 위한 세몰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 의원은 당권 도전이 예상된다. 이미 나경원·이정현 등과 하마평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 의원이 설령 당 대표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고위원으로서 지도부 입성을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현 새누리당 당헌·당규 상에는 최다 득표자가 당 대표, 이후부터는 선출직 최고위원이 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한 상황이다. 더 나아가 최고위원이 되면 김 전 대표가 대권에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김무성 호위무사’로 불리는 김성태 의원은 김 전 대표의 비공식 대변인이 된 모습이다. 최근 만찬 소식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여러 해석이 달리자 김 의원이 직접 TBS 라디오에 출연해 설명에 나섰다. 김 의원은 사회자가 ‘김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박 대통령과 독대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정이 됐다고 보는가’라고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김 전 대표가 거의 속병이 걸리다시피 한 상황인 거 같다. 박근혜정부에서 선뜻 나서지 못한 그런 중요한 정책들을 당이 선두적으로 치고 나가서 총대를 메고 했는데 막상 돌아온 것은 당론으로 정한 국민공천제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아마 본인(김 전 대표)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 같다.”

유승민 양지
박근혜와 차별

그런 김 의원이 김 전 대표를 두고 ‘킹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김 전 대표는)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각오”라고 말했는데 사회자가 ‘킹이 아닌 킹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논란이 되자 김 의원은 보도 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렇다’라고 한 답변은 그간 각종 인터뷰에서 답변을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질문에 대한 ‘동의’와는 다르다”고 했다.

김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학용 의원은 ‘미래혁신포럼’을 만든다. 여기에 이군현, 강석호, 권성동, 김성태, 김영우, 박성중 등 다수의 김 전 대표 측근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표도 준회원으로 이름을 올린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해당 포럼이 김 전 대표의 ‘대권 캠프’가 아닐지 정가가 주목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측근과의 접촉면을 늘리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대학 강연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31일 유 전 원내대표는 서울 성균관대 법학관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총선 이후 사실상 첫 공식석상이었다.


[K] 2선 퇴진에도 측근들 몰고 다녀
[Y] 잠행 풀고 강연정치, 차기 노리나?

강의 내용적으로 크게 3가지 부분에서 이목을 끌었다. ▲자유시장경제 ▲공화 ▲5·16이 그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강연 중 “대한민국 자유시장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가 아니다”며 “시장경제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력에 따른 계층 간 갈등이 적절히 통제가 안 되면 한국사회를 무너뜨릴 수준까지 나아갈 것”이라며 “총체적 국가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가 ‘규제개혁’ ‘줄푸세’ ‘작은 정부·큰 시장’ 등을 호기롭게 외쳤음에도 오히려 계층 간에 양극화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의 말은 이러한 현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는 “한국사회 전체가 재벌의 인질이 된 것처럼 ‘재벌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논란은 잘못됐다”며 “재벌 대기업이 비실거릴 때는 꼭 도와야 한다고 하고, 세금도 깎고 규제도 풀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의 ‘공화(共和)주의’ 실현을 강조했다. 강의 초반 대한민국의 저성장, 사회적 불평등, 경제 양극화, 교육 불평등 등을 거론한 그는 “우리나라는 헌법 1조 1항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의 ‘공화국’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공화의 뜻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군사정권이 만든 당이 공화당”이라며 “사람들이 ‘공화’의 참뜻을 생각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데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즉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가 ‘모든 시민이 주인’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뒤로한 채 ‘독재’와 연결되는 원인은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과거 5·16은
군사쿠데타

과거 유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은 ‘상시청문회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다시 한 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특강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과 정확히 반대되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가습기 사건이나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나 어떤 사건이든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국회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청문회를 해야 한다”며 “‘일 하는 국회’로 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 찬성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지향점과 개혁 방향을 유감없이 드러낸 그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권 플랜’이 가동된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현 경제정책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또한 20대 젊은 층을 상대로 한 강연이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총선 후 새누리당에게 던져진 최대 과제는 과연 20·30대 표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다. 즉 젊은 표심을 잡을 인물이 새누리당에 전무한 상태. 유 전 원내대표의 강연정치는 새누리당에게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행위이며, 그가 강조하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도 결국 젊은 층을 겨냥한 슬로건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는 특강 직후 기자들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대 국회 최초' 법안 집중해부
19대 오명 씻기 ‘몸부림’

제20대 국회가 지난달 30일 개원했다. 개원 첫날 총 52건의 법률안이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로 접수됐다. 

앞서 여야 지도부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의 오명을 씻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양은 많았던 데 비해 실속 있는 법안은 적었다는 게 지난 19대 국회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20대 국회는 과연 전과 다를 것인가. <일요시사>는 첫날 접수된 총 52건의 법안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대표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의원의 수는 27명. 접수된 순서대로 박정, 배덕광, 이찬열, 이종배, 위성곤, 홍문표, 박영선, 박명재, 이채익, 황영철, 경대수, 신보라, 김광림, 이학재, 이명수, 김성태, 이완영, 이철우, 박남춘, 박맹우, 윤후덕, 노웅래, 김성찬, 원혜영, 남인순, 백재현, 박덕흠 의원이 그들이다.

그중 대표발의 법안의 수가 가장 많은 사람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이찬열 의원이다. 이 의원은 총 10개의 대표발의 법안을 개원 첫날에 접수했다. 그 중 ‘고용정책 기본법’을 제외한 나머지 9개은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즉 기존의 법률안을 수정하는 내용이다.

고용·노동과 관련된 법률안이 3개, 교육 관련이 3개, 세금 관련이 2개다. 나머지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라도 유전자검사에 의해 친생자가 아님이 증명된 경우에는 친생추정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클린디젤자동차를 환경친화적 자동차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원 첫날 52건 접수…27명 발의
더민주 이찬열 10개로 가장 많아

이 의원 다음으로 대표발의를 많이 한 사람은 3개의 법률안을 발의한 이명수, 박남춘, 김성찬, 백재현 의원이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기업·산업 관련 기본법안 1개, 복지 관련 개정법률안을 2개 발의했다. 더민주 박남춘 의원은 고용·노동 관련을 3개 발의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하는 모습이다. 그중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기획재정부장관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전반적인 근로 실태를 파악해 공표하고, 그 결과를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실적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은 기업·산업 2개, 환경 1개를 발의했고 더민주 백재현 의원은 지역·민생 1개, 기업·산업 2개 법률안을 제출했다.

대표발의를 2개 한 의원은 총 8명이다. 박영선, 박명재, 경대수, 김광림, 김성태, 이완영, 박맹우, 윤후덕 의원이 그들이다. 나머지 박정, 배덕광, 이종배, 위성곤, 홍문표, 이채익, 황영철, 신보라, 이학재, 이철우, 노웅래, 원혜영, 남인순, 박덕흠 의원은 각각 1개씩의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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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