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열정을 빌미로 저임금 노동 착취를 자행하는 ‘열정페이’가 어느 순간부터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열정페이를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미화한 ‘총각네야채가게’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청년들의 열정을 대변하는 회사로 각인됐던 기존 이미지와 상충되는 현실이 낯설 뿐이다.
청년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열정 넘치는 회사. ‘자연의모든것’이라는 회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다. ‘총각네야채가게’라는 이름의 유망 농축산물 유통채널과 이영석 대표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순수한 열정쯤으로 비춰진 까닭이다. 그러나 이 회사 역시 열정페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현실은 영∼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연의모든것의 사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직원 복지 관련 슬로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혹독한 훈련이다’라는 커다란 문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문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문구 하단부에는 ‘회사가 존재해야 내가 존재한다’ ‘회사가 정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회사에 건전한 이익을 주어야 한다’ 등의 표현이 나열돼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회사 중심의 가치관이 표출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즐기면서 일하는 총각네’라고 적힌 표어는 ‘일은 결과로만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한층 뚜렷이 전달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목요일은 목 빠지게 일하는 날’ ‘금요일은 금방 일하고 또 일하는 날’ ‘토요일은 토하도록 일하는 날’ ‘일요일은 일어나지 못하게 일하는 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재치 있는 표현쯤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직원들의 모든 행위를 회사와 연결 짓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앞에서 열거한 문구들 상당수가 열정페이 논란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문구들이 온라인상에 퍼지자 열정페이를 당연시 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노동의 가치를 회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해석한다는 게 주된 평가였다.
일각에서는 회사 슬로건에서 불거진 총각네야채가게의 열정페이 논란을 단순 실수로 보긴 힘들다고 평가한다. 이 대표의 지난 행적을 돌이켜 보면 회사에서 추구하는 젊음이라는 이미지가 허상에 가깝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 우선' 강요하는 슬로건 질타
드러나는 착취 구조에 따가운 눈총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대표는 ‘총각네야채가게’를 통해 ‘맨주먹 성공신화’를 쓴 인물이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했던 이 대표는 능력보다는 편법이 판치는 기업문화에 좌절을 겪은 후 트럭 행상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배우고 트럭 행상을 시작했다. 지금의 총각네야채가게가 탄생한 배경이다.
1998년 트럭 행상으로 번 돈을 모아 개업한 그는 총각네야채가게를 대한민국에서 평당 최고 매출을 올리는 상점으로 성장시켰다. 굴지의 대기업들도 총각네야채가게의 열정과 독창적인 마케팅 방식을 눈여겨 볼 만큼 그의 성공스토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사회 활동에 얼굴을 비추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를 향한 시선이 많아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그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징조가 극명해진 건 그의 저서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가 출간된 직후부터다. 이 책은 무모해 보이지만 꼭 달성해내고야 마는 일일 재고 0%를 향한 도전 등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독창적인 경영방식을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다만 젊음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은연중에 '갑'의 시선이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실제로 상당수 독자들은 이 책이 ‘갑을문화’의 착취구조를 명백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가령 미숙련자의 임금 요구를 도둑놈 심보쯤으로 이해한다거나 ‘똥개 마인드-진돗개 마인드’로 사람을 구분 짓는 그의 인식은 ‘나는 성공했다. 너는 왜 성공 못하냐’ 같은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한 한 독자는 “저자의 시선이 열정페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열정페이를 직접적으로 옹호하지 않을 뿐 실상은 순수한 열정을 이용한 노동착취를 미화하는 내용”이라고 언급했다.
잘못된 허상
이렇게 되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회사 내 슬로건을 단순한 흥밋거리가 바라볼 수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 대표 개인의 문제를 떠나 회사에서 추구하는 기본 이념이 열정페이와 결부되는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