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저번에는 여자친구랑 오더니 이번에는 엄마랑 왔나봐?”
공사도, 스폰도, 은영씨의 사랑도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 배신의 연속
그 순간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칫하면 내가 그녀에게 공사를 친다는 것을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보다 위여도 한참 위였다. 화류계에서는 보통 고단수가 아닌 그녀다.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도 뭔가 더 대화가 필요했는지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의 잔머리는 또다시 돌아갔다. 어쩌면 나는 그런 식의 대화를 유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순간에 여자와 대화가 시작되면 순간적으로 불 붙었던 욕망을 서서히 꺼뜨리고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하자’에서부터 ‘동이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어’ 등등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계속해서 ‘나 같은 선수라도 괜찮아요?’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라는 말로 대응해 나갔다. 이렇게 계속 대화를 하자 그녀도 잠자리에 대한 생각을 잊은 듯싶었다.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저는 앞으로 명자씨를 저의 여자로 갖는 게 소원이에요. 정말로 성공을 해서 떳떳하게 명자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모델로 성공하는 거예요. 그때 되면 저도 더 이상 이런 선수 생활을 하지 않고 명자씨와의 행복한 생활을 꿈꿀 거예요.”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은 지금 당장의 잠자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와 나는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와, 오랜만에 바람 쐬니까 정말 좋아요!”
밥을 먹기 위해 대성리로 향했다. 은영씨와 함께 갔던 그곳이었다. 사실 그곳에 가려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고, 내가 아는 곳이란 그곳밖에 없었다. 명자씨의 차는 BMW5 시리즈.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왕자’다. 집이야 월세를 살든, 직업이야 호빠 선수든 아니든,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다. 명자씨가 내 지갑을 가져가더니 족히 50만원은 돼 보일 듯한 돈을 넣어준다.
“나도 돈 있는데…”
“그냥 가지고 있어요. 그걸로 밥이나 사줘요.”
욕정에 불타던 명자씨의 얼굴은 사라지고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여자, 명자씨로 되돌아 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은영씨와 함께 간 쌈밥집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삼류 코미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질 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느낌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음식을 가지고온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 총각. 자주 오시네요. 쌈밥 정말 좋아하나봐요.”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설마, 설마, 나는 그 뒷말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안은 곧 현실로 닥쳐왔다. 마치 나의 예상을 미리 알고라도 있었던 듯이, 아주머니는 내 머리에서 생각하고 있던 우려스런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고야 말았다.
“저번에는 여자친구랑 오더니 이번에는 엄마랑 왔나봐?”
■엇갈린 사랑
명자씨는 밥을 먹는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그녀는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반찬과 밥을 휘젓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5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지갑을 들고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고단수인 그녀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나도 서둘러 그녀를 따라 나섰다. 차 안에서는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가시방석도 그런 가시방석이 없었다. 모텔에서 그녀에게 했던 말, 여자친구는 전혀 없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것이다.
“저, 명자씨, 전 여기서 내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서울 시내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한참 먼 거리지만, 어떻게든 그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명자씨도 그랬는지 아무 말 없이 차를 세우고 내리는 나를 향해 무표정하게 ‘연락할게요’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차는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누구에게도 노력 없는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함께 있는 걸까? 정말이지 나는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고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모든 것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말았고 나는 ‘선수’로서의 나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했다. 대충 다른 음식점에 가면 될 텐데, 왜 꼭 하필이면 은영씨랑 함께 갔던 그 곳에 갔단 말인가.
그러나 모든 것은 끝났다. 공사도, 스폰도, 은영씨의 사랑도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그렇게 터벅터벅 서울을 향해 걸어가는데 은영씨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의 이 괴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여자는 은영씨밖에 없는 듯 했다. 주변의 택시를 잡고 은영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연락이라도 하고 가는 게 예의가 아닌가 싶어 잠시 내려 커피숍에서 삐삐라도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좀 귀찮아졌다. 낮이니까 특별한 일 아니면 집에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늘 데려다주는 곳이니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것이 은영씨의 집이었다. 같이 영화라도 보고 밥이라도 먹으려 했다. 좀 치졸하지만 명자씨가 준 50만원의 돈도 그대로 있었고 어제 밤에 받은 팁도 있었다. 하루 저녁 신나게 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돈이었다. 그래도 은영씨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까 명자씨와의 일도 조금은 가볍게 생각됐다.
‘그래, 뭐 선수들에게 이런 일이 한 두 번이겠어? 선수들이 공사 치려고 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선수를 때로는 헌 신발짝 버리듯이 버리는 거 아냐? 에이, 잊자. 그냥 선수로서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버리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후면 은영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누군가가 내려오는지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딩동!’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서둘러 타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내렸다.
어? 근데 이게 누군가. 바로 은영씨였다. 매끈한 짧은 반바지를 입고 섹시한 몸매를 드러낸 은영씨. 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은영씨. 그런데 그녀의 옆에서 한 남자가 있었다. 그것도 은영씨의 어깨를 손으로 감싼 채. 은영씨와 나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는 놀라는 눈치였고 나는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오빠, 잘 들어가세요!”
“그래 은영아 연락할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