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발’ 여종업원 사망설 추적

북한 탈출해 단식하다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귀순에 대해 북한정권은 ‘유인납치행위’라고 주장하고 우리 정부는 ‘자유의사에 의한 탈출’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입국해 경기도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머무른 지 한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단식에 의한 사망설이 흘러나왔다. 발신지는 북한의 한 민간단체 홈페이지에서였다.

지난 15일, 미국의 친북매체 <민족통신>은 자사 페이스북에 “국정원에 의해 강제 납치당했던 북 여성 식당 종업원 12명 중 한 명인 서경아양이 ‘우리들 모두를 공화국으로 보내달라’고 단식투쟁을 하던 중 사망한 사실이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의 추적에 의해 오늘 15일 확인됐다”고 전했다. <민족통신>은 제7차 노동당 대회 기간에 노길남 대표를 특파원으로 평양에 보내 취재토록 했다.

북 관련 매체들
같은 내용 보도

앞서 국내 북한전문매체 <NK투데이>도 지난 9일, 북한의 민간단체 아리랑협회에서 운영하는 <메아리>를 인용해 동일한 내용을 보도했다. ‘최근에 퇴직한 정보원 관계자’를 인용해 “집단 탈북한 여성 속에서 여러 명이 단식을 하다가 빈사상태에 빠져 있어 청와대와 국정원이 매우 당황해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생사기로에 헤매던 한 명의 처녀가 끝내 사망했다”는 것이다.

<메아리>는 “지금 국정원은 이들과 언론의 접촉을 일체 금지시키고 있으며 외부와의 련계(연계)조차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메아리>는 국내서 유해 매체로 분류돼 접속이 차단돼 있다.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국내 주요매체는 보도를 자제하고 있지만, SNS를 중심으로 귀순자의 단식 사망설이 빠르게 퍼졌다. <민족통신>이 지목한 사망자는 서경아씨로, 집단 귀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고 설명했으며, 자사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지배인 남성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족통신>은 1999년 LA에서 창간됐으며, 상근자 없이 편집위원 9명이 일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대표인 노씨는 이번 당 대회 취재를 위한 체류가 69번째 방북 취재라고 기사에서 밝혔다. 노씨는 1944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경력이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1973년 텍사스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민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등에서 조속한 진상 공개를 국정원과 통일부에 요구했으나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며 “북한 선전전의 일환”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실제로 이들 13명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이하 센터) 내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기자회견이나 변호인 접견 등을 통해 확인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류경식당 집단 귀순녀 1명 사고 의혹
“공화국에 보내달라” 투쟁하다 사망?

뿐만 아니라 북측이 판문점에서 이들 귀순자와 북측 가족들의 만남을 주선하자고 제의해왔으나 응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종업원과 그 가족들을 함께 공개 기자회견장에 세운다면 자유의사에 의한 탈북인지 혹은 유인납치인지 명확히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측 주장이다. 현재 북측은 강제랍치피해자구출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외신 취재를 허용하거나 동영상을 제작, 공개하는 등 이번 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북한 만이 해온 것은 아니다. 국내서도 이들이 자유의사에 의해 집단 탈출과 입국을 감행한 것이라면 이들의 신변과 의사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과 통일부는 왜 북한정권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전문가는 “이들이 귀순했던 지난달 초에 원래 새누리당 측이 성명서 발표와 귀순자의 기자회견을 준비했으나 이들 13명 중엔 한국행을 모르고 따라온 사람이 있어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회견 중 어떤 돌발 발언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외 식당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파견된 보위원이 근무자들을 감시토록 하고 있다. 여권도 근무자 개인이 소지할 수 없고 지배인으로 위장한 보위원 등이 걷어서 일괄 보관한다. 13명이나 되는 규모의 인원이 한 번에 이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을 이끈 남성 지배인 허모씨가 여권을 모두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국한 13명 외에
따라온 사람 있나

김희태 북한인권선교회장(개신교 목사)은 “제2의 ‘김련희 사태’가 우려된다”면서 “북한 사람들은 당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개념을 갖고 산다. 영업이 잘되는 말레이로 가야 한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나설 수 있다”고 했다.

김련희씨는 친척집 방문을 위해 2011년 5월 중국에 나왔다가 탈북브로커에게 속아 남한으로 왔다. 지난 5년간 줄기차게 북한 송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녀는 남한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브로커에 의해 감금돼 있었고, 현재 평양에 아들과 노모가 있다. 김희태 목사는 이들 종업원들이 센터 조사와 하나원 수료 후 사회에 나오면 김련희씨와 마찬가지로 ‘북한 송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들 13명 중엔 한국행을 알고 온 이도 있으나 모르고 따라온 이도 몇몇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 당국이 이들의 외부 접촉을 차단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센터 내에서의 단식 시도 가능성이나 사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민족통신>의 보도 직후인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정말 만에 하나 단식이 있었더라도 단식 중 사망이 나올 정도로 (센터의) 관리가 허술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는 “단식설 혹은 단식 중 사망설은 조금만 남북관계 혹은 북한이탈주민 관리의 현실을 안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라며 “북한 이탈주민들의 관리는 모두 부득이한 접근의 통제가 이루어진다. 탈북자들의 심리상태가 안정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북한에 남은 식구들을 인질로 한 북한의 우회적 선전선동 및 회유전이나 말 그대로 탈북자 본인에 대한 위해가 걱정되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두 매체의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15일자 <민족통신> 보도는 기사 상에서 별다른 취재원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내 주요 매체가 해당 기사를 인용보도 하지 않는 이유도 정확한 취재원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NK투데이> 보도는 북한 매체 <메아리>를 인용보도하고 있다. <메아리>는 ‘정보원’의 퇴직자를 인용했다. 이것이 정확히 국가정보원을 의미하는지 다른 정보당국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경기도 시흥의 센터 내에 있는 귀순자들의 소식을 북한과 해외 소재 매체에서 먼저 파악한 것이다. 그간의 보도 관행으로 볼 때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외신이나 국내 매체의 보도여야 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루트로 볼 수 있다.

“재판정 나오면 
진실 알게 될 것”

그간 북한정권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영향력 있는 외신에게 취재를 허용하는 등 외신을 적절히 활용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번 집단귀순 사건도 <CNN> 취재진에게 “특종이 준비돼 있다”며 평양으로 불러 류경식당의 남겨진 종업원들과 귀순 종업원의 가족을 만나도록 했다.

북한정권 입장에서 서경아씨의 사망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그간 굵직한 북한 관련 보도를 도맡아 보도해온 <CNN>에게 취재를 허락했을 것이다. <CNN>에 보도를 허락한다면 관련 기사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될 것이고 그만큼 우리 정부는 수세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민변 측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류경식당 종업원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에 ‘인신보호구제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가족에게 대리권을 위임 받았다고 덧붙였다. 위법한 ‘구금’을 긴급히 해제시키기 위한 절차인 인신보호구제신청을 하려면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기열 칭화대 초빙교수가 직접 민변의 대표 메일에 북한의 가족이 대리권을 민변에 위임한다는 의사를 밝힌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자필서명이 담긴 위임장을 보내오면서 성사된 것이다. 정 교수는 직접 북한의 가족과 접촉해 위임장을 받고 민변 측에 전달했다.  

소문 SNS 타고 빠르게 퍼져
국정원·통일부 미온적 대응

민변 측은 <일요시사>에 “정 교수는 평소에 아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보내온 동영상은 재생이 안됐다. 인신보호구제신청은 유가려(유우성씨 동생)씨 이후 두 번째”라고 전했다. 동영상을 제외한 가족이 위임장을 작성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위임장을 민변 홈페이지에 게재해 공개했다. 그러나 위임장만으론 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 가족이 실제로 현재 센터 내에 있는 류경식당 종업원의 가족이 맞는지 입증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경욱 민변 변호사는 <일요시사>에 “법원이 통일부에 가족관계임을 입증하는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하면 통일부도 협조할 것”이라며 “법원이 (귀순자) 본인을 통해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법원이 (귀순자에게) 사진을 제시해 부모가 맞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귀순자 본인의 의사로 한국행을 선택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인신보호구제신청은 피수용자 본인이 직접 재판정에 출두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사망설이 떠돌고 있는 서경아씨를 비롯해 나머지 귀순자들의 생사 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3년 유가려씨가 이 제도를 통해 구금에서 풀려나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유씨는 법정에서 “센터로 돌아가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전화상으로 들은 후 “하루만 변호사를 따라가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당시 외신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민변 변호사들과 유씨를 데려온 국정원 직원들이 대치했다. 이후 유씨가 다시는 센터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번에도 귀순자들이 법정에 나와서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면 집단귀순에 얽힌 진실이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 변호사는 현 센터 내 ‘임시보호조치’의 문제점을 들어 변호인 조력권이 절실함도 지적했다. 그는 “현재 귀순 동기 등 조사과정에서 센터 내 탈북자들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이 침해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형사피의자도 변호인 조력권이 있는데 피수용자들은 조사과정에서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현재 센터 조사는 행정조사와 수사의 경계가 없다. 조사주체도 국정원이 아닌 통일부가 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시보호조치
“문제점 많다”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민변 통일위원회 소속 변호사 10여명은 “종업원들이 자유 의사로 입국한 게 맞다면 변호인의 접견을 허용해야 한다”며 접견을 신청했으나 거부 당했다. 국정원은 “센터가 구금시설이 아니고, 종업원들이 난민이나 형사피의자 등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접견신청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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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