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의 일원, 아니 식구가 된 지 어느덧 2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완연히 나의 본가로 자리매김한 <일요시사>가 창간 20돌을 맞이하였는데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일요시사>에 무한한 축하를 보내며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필자와 <일요시사>의 만남은 한 사건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요시사>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스러진 달>이 그 매개체다. 이 작품은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로 간주되고 있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이면을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되었던 광복절 경축행사 중에 발생한 동 사건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과정에 심각한 괴리를 발견했다. 우리 측의 조력이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는 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또 그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근거들을 찾아냈다.
그런 연유로 문학인의 양심, 나아가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입장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말 그대로 소설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의 정보기관을 포함해 여러 기관이 개입된 것으로 풀어나갔다.
이어 원고를 탈고하고 동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각 언론사에 근무하는 동문들을 위시해 지인들에게 홍보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 모 일간지에는 사전 인터뷰까지 예약될 정도로 깊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정작 작품이 발표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태도를 바꾸었다. 사건 왜곡의 당사자가 정권 실세인데, 혹여나 그로 인해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언론에 대해 필자는 분노를 떠나 진한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나와의 개인적 차원의 약속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사 내부의 결정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처사 때문이었다.
정론을 고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언론들이 집단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살피면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언론이 바로 <일요시사>였다. 나의 항변 아닌 항변을 고스란히 받아준 언론이 <일요시사>였고 그 이후 여타의 모든 언론과는 거리를 두고 <일요시사>에 오로지하며 지금까지 관계를 이끌어오고 있다.
언론, 흔히들 ‘제4부’라 칭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기능과 역할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3부(입법·사법·행정)와 견줄만한 위치에 있다 하여 생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우리 현실에서 입법·사법·행정의 3부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아쉽지만 한마디로 ‘천만에’다. 그런데 제4부로 지칭되는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고수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물어볼 것도 없다.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 혹은 선도자가 되어야 할 언론이 사리사욕에 빠진다면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제 당당하게 성년을 맞이한 <일요시사>에 요구한다. 변함없이 지금처럼 정론직필의 고집을 고수해 달라고. 또한 진중하게 제언한다. 이는 조선조 예종 조에 모함으로 죽임을 당한 남이 장군의 시 중 일부로 대신한다.
『사나이 20세에 나라 평정 못 한다면
후일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