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왕국’ 북한 마약유통 실태

최상급 아편 전세계로 배달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필로폰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투약한 탈북자와 중국동포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까지 북한산 마약을 중국에서 구해 국내에 가져와 투약할 정도로 북한에서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한반도 내 마약 제조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조선총독부 내 전매국에서 ‘식물분석국’이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실제론 모르핀과 아편을 취급했다. 전매국은 공식적으론 인삼과 담배를 독점 취급하는 부서였으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전국의 양귀비 농장을 관리하고 양귀비를 수확·분석해 군납용 모르핀 생산에 관여했다.

집집마다 재배
상비약처럼 구비

이렇게 생산된 모르핀은 만주의 야전병원으로 보내져 부상병 마취와 고통 경감에 쓰였다. 당시 일제가 함경도 지역에 광범위하게 양귀비 농장을 조성하고 운영한 것은 함경도의 토양이 양귀비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양귀비 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15 국제마약통제전략(INCRS) 보고서>는 북중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북한에서 마약이 성행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북한 당국이 만든 마약은 아편을 뜻하는 ‘백도라지’ 와 필로폰, 헤로인뿐만 아니라 진통진정제 역할을 하며 일명 ‘총탄’으로 불리는 화학합성제 ‘덴다’, 각성제 ‘얼음’, 강심지혈제 ‘파인디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내가 북한에 있었을 땐 아편 엑기스가 비상 상비약처럼 집집마다 있었다”며 “진통제, 몸살 감기 등에도 쓰고 만병통치약처럼 썼다. 대흥, 장진, 요덕, 맹산, 양덕군 일대에 아편재배지가 많다”고 북한의 마약실태를 전했다.


강 대표는 지난 1992년 함남 요덕군에서 거주하다가 탈북했다. 그의 진술로 볼 때 당시에도 마약류가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 대표와 센터 측은 현재 미국 국무부에서 의뢰한 북한 내 마약 실태를 조사 중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조사를 완료해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 초 해외공관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마약 제조를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아편 재배와 마약 생산을 대대적으로 증대시켜왔다.

탈북자들 중국 통해 국내로 들여와
국경지대 광범위 양귀비 농장 조성

특히 1989년 8월, 김정일이 양귀비를 심어서 외화를 획득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재배면적이 대폭 확대됐다. 이후 김정일 직속의 노동당 39호실과 대성무역총국의 주관 아래 은밀하게 마약사업이 전개돼왔다.

이미 김일성 시절부터 마약은 정권이 장려하는 주요 시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양귀비를 많이 심어 이것을 정제해 외국에 팔고 인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교시했다.

김일성은 “백도라지 농사를 잘 지어 백도라지만 수출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식량난을 해결하고 우리 인민들은 가까운 연간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의 마약 거래는 북한주민이 두만강을 직접 건너가거나 압록강에 소형 배를 띄워 마약 원료가 들어가고 완성품이 중국으로 나간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기차 화물칸과 선박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도 마약을 숨겨 밀거래한다고 알려졌으며, 회당 0.5∼1㎏ 단위로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 2002년부터 마약은 대대적으로 중국으로 밀수되기 시작했다. 당시 필로폰 1㎏은 미화 5600달러에 거래됐다.

이렇듯 북한에서 마약 제조 및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일반 주민들 입장에선 굉장한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8세 어린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가 아닌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오다 ‘마약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이들이 ‘장마당세대’로 불리면서 마약 제조와 운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외국에 팔고
식량문제 해결

개인의 급여가 월 5000원 정도라면 실제 생활비는 일주일에 평균 5만원 정도 든다. 마약을 취급하면 하루에 10만원도 벌 수 있다. 정권에서 사형을 시킨다고 선전해도 마약 판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북한산 마약은 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순도 99%를 자랑하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중국 마약은 불순물이 많이 첨가돼 복용 후 환각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를 유발한다. 북한 마약은 “뒤끝이 깔끔하고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남한처럼 주사기 투여 방식보다 서양처럼 코로 흡입하거나 은박지 위에 놓고 가열해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70년대 해외공관 운영비 조달 위해 시작
90년대 들어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탈북자 진술을 인용해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탈북자에게 물어보니 회령 출신자는 다 한다. 중학생 이상은 다 한다고 언급했다”면서 적어도 국경지대 주민의 70∼80%는 복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탈북연도를 기준으로 2005년 이후 탈북자는 50% 이상 복용 경험이 있다고 말했고 2008년 이후 탈북자는 70∼80%대로 높아졌다. 최근엔 100% 다 한다. 애들도 다 한다고 하더라. 드문 현상이 아니고 꽤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 충격을 안겼다.

2009년 실시됐던 화폐개혁 이후 보유하고 있던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 새로운 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자녀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 장마당(시장)에서 장사로 먹고 살 만한 능력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북한의 고급 식당은 ‘사우나’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수성찬을 먹은 후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약을 함께 한다고 알려졌다. 상류층 사이에서도 마약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탈북자들은 “마약에 빠지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물건” “마약을 (복용)하면 겁이 없어진다” “폭행, 살인, (성적) 문란이 온다” “포고문도 내고 사형도 시키지만 근절이 안 된다”고 했다. 
 


북한사회서 마약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단속을 하고 적절한 처벌을 내려야 하는 인민보안원, 보위원, 법관 등이 마약을 복용하고 압수된 마약을 은밀히 빼돌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마약을 선물로 주고받기를 즐기고 단속된 마약을 착복해 가족을 시켜 장마당에 내다팔도록 하며 지인이나 친척에게도 나눠준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은 판단과 부패, 탐욕, 빈곤으로 인해 북한사회 전반이 ‘마약공화국’으로 변질됐다. 마약을 위해서라면 권력자가 주민을 생산자로 부리고, 생산자는 권력자를 속여 빼돌린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마약은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국경지대 주민
70∼80% 복용

지난 1997년 탈북한 이애란 박사는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에서 “북한주민들의 이러한 일탈과 도덕적 해이는 앞으로 통일조국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임을 감안할 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마약’ 어떻게 풀렸나  

 


원래 북한 불량정권은 마약 제조 및 유통을 외화벌이 목적으로 시작했다. 실제로 전 세계를 상대로 마약밀매와 위조지폐 유통 등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박스 기사 참조) 그러나 현재와 같이 북한 내부에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것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김정일이 직접 마약 생산을 지시하면서 생산량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과잉생산이 초래됐고 중국 당국이 지난 2003∼2004년께부터 마약밀매를 엄격히 단속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수로 풀린 것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 또 1990년대 중반 대량 아사 사태(고난의 행군 시기)가 발생했을 당시 북한당국이 집중 육성했던 마약제조기술자들이 내수용 마약을 대량 제조했던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함남 함흥시 흥남구역 내엔 유명한 ‘흥남비료공장’이 있다. 해당 공장은 1927년 일본질소비료(주)에 의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세워져 1930년대에 화학비료와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했다. 함흥 앞바다에서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핵실험’을 했다는 미국의 정보자료도 존재한다. 그러한 이유로 6.25 당시 혹시 잔존할지도 모를 핵실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미군이 흥남을 폭격한 후 흥남철수작전을 감행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부터 화학실험과 관련 제조에 능한 곳이었던 것이다.

현재 함흥시엔 함흥약학대학과 흥남제약공장이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마약을 생산했고 최근엔 흥남비료공장 6직장에서도 마약을 생산한다는 보도가 일제히 나왔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공장 가동이 멈추자, 그때까지 국가에서 특별 배급을 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던 화학전문가들이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다. 그때부터 생존을 위해 중국에서 마약원료를 들여와 마약 제조가 시작됐고 현재 마약 제조의 ‘본산지’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처음 마약을 연구하고 시험생산을 한 평양시 상원군 마장리 연구소에서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한 흥남제약공장, 나남제약공장, 평양선교제약공장에 몸담았던 기술자와 전문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마약 제조와 유통이 시작됐다. 결국 2000년 이후 북한 전 지역은 마약의 늪에 빠지게 됐다. <신>

<기사 속 기사> 북한의 국제범죄는?

2006년 10월11일자 <타임> 영국판은 북한이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의 마약중개상, 아일랜드 해방군(IRA)의 테러리스트, 아프리카의 밀렵꾼, 이집트·이란·리비아·파키스탄·시리아·베트남·예멘의 군대 등을 상대로 위조·밀매·밀수 등의 불법거래를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북한은 마약을 해외 공관의 ‘외교 행낭’을 이용해 밀반출하고 있다. 본국과 대사관을 오가는 외교 행낭이라고 불리는 큰 자루 안에 마약, 위조지폐, 가짜 담배 등을 넣어 이동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마약사업은 아편ㆍ필로폰ㆍ헤로인을 비롯해 최근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유행 중인 ‘샤부’ 등 각성제도 포함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2007)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은 지난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라오스·인도·이집트·동독·파나마·스웨덴·러시아·중국·잠비아·일본·멕시코·시리아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마약을 소지, 밀반입, 판매해 온 혐의로 추방당했다.

북한은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범죄조직과 연계하는 한편 중국 베이징의 신흥 폭력조직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육성해 마약밀매 하부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주요 밀매 루트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현지 파견된 벌목공과 임업대표부 직원들을 활용해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아편·헤로인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러시아 마피아와 손잡고 아편과 헤로인을 유럽으로 밀반출하고 있다.  지난 1999년 1월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북한이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마약 밀수로 벌어들인 외화로 전투기와 헬기 등 러시아제 군사장비를 구입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신>

[※참고문헌]

이애란,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 북한연구소, 2009
이석영, <북한은 어떻게 마약천국이 되었나>, 북한연구소, 2015
윤황, <동북아 평화질서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 통일문제연구19, 2007
김철추, <덴다, 총탄, 돌이돌이, 위폐, 무기...북한의 추악한 지하경제>, 조선미디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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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