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친박계 배후조종설’ 진상

제2의 이한구? 드러나는 '친박본색'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와 친박(친 박근혜)계의 공조가 심상치 않다. 소통과 화합을 전면에 내건 정 원내대표는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때마다 친박계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이에 정 원내대표의 행보가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과 닮아간다는 평도 정치권에서 들려온다. 체질 개선에 나서도 부족한 시간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친박 패권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정치권 전문가들은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갈등을 보였지만 두 계파 모두 ‘정권 재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했다는 측면에서 패권주의로 단정 짓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계파의 이익만을 쫓는 모습이 친박계 내에서 보여 패권주의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지도부로 선출된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진석-이한구
완벽한 닮은꼴

정 원내대표는 부인한다. 최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친박계 핵심이 정 원내대표에게 입김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며 질문하자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그는 당내에서 친박계로 통한다. 정 원내대표 자신도 이를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다. 취임 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전원이 친박이 되어야 한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에 당의 운영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 가소롭다”고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 공천권을 행사했던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과 닮아있다는 게 당내 시선이다. 이 전 위원장 역시 자신이 친박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치면서도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공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해당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천이 한창 진행 중이던 날 당사로 출근하는 길에 누군가와 통화하며 “저 남구(지역)에 그러면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기준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요. 예. 실망 안 시킬 테니까”라고 말해 배후 세력을 의심케 했다.

공관위원이었던 홍문표 의원은 언론에 “(이한구 위원장이) 회의를 하다가도 갑자기 무슨 연락을 받거나 자기 생각이 뭐가 있다 싶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그만입니다’라고 (회의를) 그만뒀다”고 말해 의혹을 제기했다. 배후 의혹은 공천 중 이 전 위원장이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서울 모처의 호텔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더욱 불거졌다.

친박계 대표단
물 건너간 혁신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의 공천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귀결됐다. 친박계가 ‘책임론’에 휩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책임론은 친박계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선출직 지도부에 대한 하마평이 나올 때마다 책임론은 비박계의 주된 레퍼런스가 됐고, 친박계는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당권 욕심이 있는 친박계 입장에서 책임론은 반드시 잠재워야 할 요소다.

앞서 원내대표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도 친박계 주류 쪽에서 먼저 책임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자숙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심’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자숙하자”며 스스로 손발을 묶었다. 총선 후 친박계의 운신 폭이 좁아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정 원내대표가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총선 참패는 ‘친박 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책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지만, 책임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친박계 책임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에 친박계 의원이 70∼80명 정도인데 모두가 (총선 참패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친박계가) 떼로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했느냐. 덤터기를 씌워선 안 된다. 친박계 전체를 책임론으로 등치하는 것, 이를테면 ‘친박=책임’이라는 등식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내가 중립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친박과 비박 다 책임이 있는 것이지, 어느 계파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정 원내대표가 서서히 ‘친박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정 원내대표 당선 이후 친박계가 서서히 본인들의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단적인 예로 최근 친박계 내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거론되는 상황인데, 지난 원내대표 경선이 있을 당시 마땅한 후보조차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을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원내대표단 친박인사로 전격 물갈이
비대위 겸직 두고 혁신위 무용론 대두

거론되는 후보들에는 이정현·이주영·홍문종 의원 등 직·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내비친 사람뿐만 아니라 원유철 의원(전 원내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4일 첫 당대표 경선 후보로 등록한 친이(친 이명박)계 심재철 의원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특히 원유철·이정현·홍문종 의원 등은 친박계 핵심에 속한다.
 

원내대표단이 꾸려질 때부터 계파 편향 얘기가 나왔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를 포함한 13명의 원내부대표단 당직 인선을 발표했다. 강석진 의원은 최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코레일 사장 출신의 비례대표인 최연혜 당선인 또한 친박으로 통한다. 원내대변인에 추가 선임된 민경욱 당선인의 경우, 자타가 공인하는 진박 후보로 공천 당시 유승민계 민현주 의원을 경선에서 꺾고 공천권을 따냈다. 이러한 대표단 인선을 두고 하태경 의원이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원내대표단 인선”이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원내대표단은 자신들의 계파색 논란에 반발하고 있다. 수석부대표가 된 김도읍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사회자가 ‘이번 원내대표단 인선에 대해 친박 일색이다라는 비판이 나오더라. 어떻게 받아들이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 정 원내대표께서 탈계파를 선언하면서 당선됐고, 우리 부대표단들도 보면 초선 의원들의 지역이라든지 전문성을 배려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꼭 친박계로 꾸려졌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기 어렵다.”

정진석 체제
친박 뜻대로

비대위 구성 문제는 친박-비박이 서로 이견을 보인 지점이다. 친박계는 ‘관리형’ 비대위를 내세운 반면 비박계는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했다. 물리적으로 전대까지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형 비대위가 세워진들 바꿀 수 있을 건 없다는 친박계의 현실론과 지금과 같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선 외부 인사를 데려온 혁신형 비대위 뿐이라는 비박계의 당위론이 서로 부딪혔다.

결국 정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현실론을 받아들였으며 비대위원장까지 겸임하게 됐다. 정진석 체제는 이제 앞으로 있을 전당대회(이하 전대) 실무를 준비하는 일을 맡게 된다. 친박계의 당권 장악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문조사까지 간 끝에 나온 결과였다. 지난 10일 비대위 구성에 관한 당내 총의를 모으기 위해 정진석 지도부는 당선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뒷말이 많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문조사가 의견을 모으기 위한 목적이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지에는 ▲관리형 비대위 ▲관리형 비대위+별도 혁신위 ▲진단형 비대위 ▲혁신형 비대위 ▲기타까지 총 5개의 보기로 이중 하나를 고르는 5지선다형이었다.

불만이 터져 나온 이유는 해당 설문조사가 사실상 친박계가 원하는 관리형 비대위로 가기위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항목 중 ‘혁신형 비대위’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항목이 사실상 같다는 것이다.

“전대 늦춰라” 8월 연기 지시 있었나?
당·대권 결합론 부상…친박으로 통일?

즉 ▲당 지도체제 개편 ▲원외 당협위원회의 정비 등 지도부 시스템을 손봐야 함에도 혁신형을 제외하면 혁신의 주체가 차기 지도부 또는 비대위가 구성한 혁신위로 같다. 다시 말해 외부 인사 영입이 없는 나머지 3개 항목은 행위가 주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다.

불만이 터져 나온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밀이 아닌 실명 공개를 전제로 한 설문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관리형 비대위를 찍도록 유도했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일고 있다. 이는 특히 입지가 튼튼하지 못한 초·재선 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혁신위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기자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최근 새로운 원내대변인으로 취임한 민경욱 대변인과의 질의에서는 몇몇 기자들이 과거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맡았던 보수혁신위원회처럼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민 대변인은 “새로 선출되는 당대표에게 혁신위에서 결정한 문제를 다 받아들이도록, 수용하도록 하자는 그런 구체적인 방법까지 논의는 됐지만 결정된 건 없다”고 답해 부분 수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혁신위원장으로는 김용태 의원이 선임됐는데, 이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소통과 화합을 위해 비박계인 김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앉힌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획기적인 혁신안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김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은 비박계에게 덤터기를 씌우기 위한 술수라는 견해도 있다.

결과적으로 혁신위가 ‘유명무실’해 질것이란 비관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행권한이 없는 특별기구의 성격이라서 정진석 체제의 입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친박계 핵심의 입을 통해 혁신위의 지위를 격하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총선 당선 직후 차기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이정현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비대위와 혁신위는 문제 진단과 전대 관리의 역할로 한정하고 새 지도부가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자가 ‘혁신안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냐’고 질문하자 “그렇다”고 답했다.

유명무실
혁신위원회

이처럼 혁신위의 지위와 역할에 의문부호가 달리자 정 원내대표는 수습에 나섰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혁신위는 단순히 이번 총선 패배에 대한 미봉책을 땜질하는 기구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향후 비대위·혁신위에서 정해질 ▲전대 날짜와 ▲당권·대권 결합 여부가 계파전의 새로운 뇌관이 될 전망이다. 또한 친박계의 입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도 이때를 기점으로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전대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앞서 예상됐던 7월보다 한 달가량 늦은 8월에 열리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확한 날짜가 잡히지 않았지만,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전대 시기가 늦어지면 질수록 ‘친박 책임론’이 잠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권·대권 결합론도 친박계 내부에서 얘기가 나온 만큼 향후 불씨가 될 예정이다. 새누리당 당헌에는 ‘차기 대선주자는 대선 1년6개월 전에 모든 선출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당권·대권을 분리시켜 놓은 규정이다.

이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는 친박은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음을 근거로 내세운다. 즉 인력난을 겪고 있으니 당권·대권을 함께 가져가 강력한 1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박계는 그 1명이 당내 과반을 넘긴 친박계에서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나오는 최고위원회의 폐지론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지금과 같이 9명(당대표 1명+원내대표 1명+정책위의장 1명+최고위원6명)이 정하는 집단식 의사결정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니 이를 당대표에게 몰아줘 과거 총재 시절의 강력함을 되살리자는 취지다.

‘범친박계 당직 장악→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전대 연기’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분명 친박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과연 친박계의 의중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혹을 받는 정 원내대표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총선 참패 후 한 달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새누리당에 혁신의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철우의 최고위 해체론

현재 새누리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최고위원회의다. 선출직 4명+지명직 2명에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까지 9명으로 구성된 이 기구는 과거 당 총재의 독단적 결정을 제어하기 위해 지난 2002년 탄생했다. 지금까지 당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지만 반대로 많은 사공으로 인해 배가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중진으로 올라선 이철우 의원은 최고위원회의를 해체하는 수준으로 당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선자 총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런 식으로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안 된다. 차기 당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비대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최고위를 해체해야 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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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