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국정원 대북정보력 논란

'헛다리' 정보당국 믿어도 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국가정보원은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 직후 리영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 종파분자로 지목돼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것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대북정보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원은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당받고 있지만 대북·해외정보 수집에서 ‘아마추어’ ‘흥신소 직원’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국정원은 대북정보와 관련해 여러 차례 설익은 정보를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현재까지 국정원은 2008년께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2013년에 있었던 장성택의 실각 정도를 제외하면 잇따라 잘못된 발표를 내놨다. 국정원이 흘린 정보를 언론이 ‘받아쓰기’ 했다가 오보 낸 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계속 헛발질

국정원은 지난 2010년 민간인 2명과 해병 2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예측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군 정보당국이 감청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국정원에 넘겼음에도 국정원 측은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

2011년엔 당시 후계자로 막 떠오른 김정은이 중국을 단독 방중한다는 발표를 냈으나 김정일이 직접 방중하면서 망신을 샀다. 같은해 12월엔 김정일 사망을 조선중앙TV가 공식 발표할 때까지 감지하지 못하면서 무능의 극치를 드러냈다. 사망 발표 당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중이었다.

지난 2012년께에도 김정은이 리설주를 대동하고 나왔을 때까지 그의 결혼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복수의 전문가들은 리설주를 여동생 김여정으로 판단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생전에 비밀리에 여러 명의 처를 뒀기 때문에 서방 지도자들처럼 공식적으로 부인을 대동한다는 것을 북한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같은해 12월 북한이 갑작스럽게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에도 그 전날까지 로켓이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4년 5월엔 처형됐다던 인민가수 현송월이 조선중앙TV에 나왔다. 전해 8월, <조선일보>는 현송월을 포함해 은하수관현악단 및 왕재산예술단원 9명이 음란물 제작·유통 혐의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다. 직후 <아사히신문>까지 김정은이 리설주가 유사한 행위에 연루됐다는 소문을 막기 위해 처형을 지시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신빙성을 더했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국회에서 발언하면서 관련 보도를 부추겼다. 그러나 현송월은 지난해 말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에도 나타나 인터뷰에 응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4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은이 모스크바 전승절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다음 날 북한이 불참을 통보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국정원은 북한 당군정의 동향이나 인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엔 핵심 측근의 한 사람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추방돼 지방의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국회에서 보고했으나 올해 1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상 혁명화 교육기간으로 2~3개월 정도면 매우 짧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가 평양에서 자숙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기도 했다. 최룡해 역시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것이 확인되면서 신변이상설을 불식시키고 최측근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도 얼마 뒤 <노동신문>을 통해 등장했다.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시에도 미국과 일본은 핵실험을 사전에 인지한 반면 국정원은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러한 국정원의 반복되는 ‘헛다리’는 근본적으로 북한체제의 폐쇄성 탓도 있겠으나 국정원의 대북정보력 부재에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북전문가들은 국정원이 확보하고 있는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인적 정보망)의 질과 양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로부터 동향을 청취하거나 중국 내 조선족, 탈북자, 한족 정보원, 북한 내 북한인으로 구성된 정보망을 통해 대북정보를 수집, 분석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북한인 휴민트를 구축하는 것에 크게 공을 들이지만 국경 밖에서 북한 내에 연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대북정보 라인이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붕괴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2009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부임 직후 대북전략국이 해체됐고 북한 전문요원이 크게 줄어드는 등 대북관련 업무가 홀대받았다.

국정원이 “2중 스파이여도 상관없다. 정보만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정보원들이 사례를 목적으로 부정확하고 설익은 첩보를 넘기는 일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렇게 국정원 측이 조선족이나 탈북자 정보원이 주는 첩보를 오판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국정원 내부에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가 적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집된 대북정보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일도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리영길 처형 발표…노동당대회 등장
“1조원 예산이 아깝다” 흥신소 수준?

특히 이명박정권 들어 대북강경책 일로의 정책이 시행됐고 이에 따라 대북사업이 전면 중단된 영향도 크다. 믿을 만한 휴민트의 상당수는 그나마 북한을 드나들며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나 상사원이었다. 소위 대북사업가들이 사업 협의 과정에서 북한 고위당국자를 만나 북한 내의 여러 소식을 청취했으나 대북 신규 사업이 모두 중지되면서 이러한 방식이 단절됐다. 이렇게 휴민트가 붕괴되면서 인공위성, 정찰기, 이지스함 등 첨단 장비를 통한 전자 정보 수집 체계인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그간 국정원이 내놓는 정보마다 ‘정국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것은 국정원이 오랫동안 본연의 임무는 제쳐두고 지나치게 정치화되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다. 국정원이 해외 정보수집엔 무능하고 정권의 안위 등 ‘정치공작’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덩치나 무제한의 권한에 비해 독자적인 해외정보 수집능력이 지극히 부족하다”며 “대북·해외·국내 정보수집을 독점하고, 기획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각급 정부부처와 기관들을 쥐락펴락하며, 대내 심리전을 빙자해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정치에 개입하는 등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을 통한 대선과 정치 개입 의혹에 휩싸였고 같은 해 6월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7월엔 이탈리아 해킹팀이 국정원 등 각국의 정보기관에 해킹프로그램을 대량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휴대전화 불법감청 및 해킹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수십 년간 민간인 사찰과 간첩 조작 의혹이 끊임없이 반복됐음에도 사이버테러방지법 법안 통과가 재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유우성씨 증거조작사건, 세월호 참사 개입, 어버이연합 게이트, 류경식당 집단 탈출 건 등 해외 정보 수집보다 국내정치에 집중해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해선 수사 기능을 없애고 국내 파트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정치만 기웃?

익명을 원한 군 정보당국 전직 간부는 “정보기관 내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정보를 능숙하게 다루는 유능한 인사가 수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동안 비 전문가인 정치인, 공무원, 정권실세의 측근이 수장으로 왔기 때문에 대북정보력이 점점 약화된 것이다. 국정원의 기관 출입도 철폐해야 한다. 선진국 중에 정보기관이 사회 각 기관에 출입하는 나라가 없다. 휴민트 강화와 대북·대외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바로세우고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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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