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가만히 있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에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가지런히 아니 영란이 옷을 벗기기 쉽게 자세 잡았다. 이어 바지를 벗긴 영란이 다시 석원의 팬티를 내렸다. 아직도 가운데 부분에 액체가 남아 있었다.
가만히 그를 살피던 영란이 손으로 액체가 남아 있는 부분을 만지더니 이내 입을 그리로 가져갔다. 그러기를 잠시 후 몸을 세워 자신의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석원을 덮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영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여 침대에 누워 있는 석원에게 건넸다. 이어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힘차게 빨아들였다.
“준비는 차질 없이 잘 되고 있겠지?”
“무슨…”
석원의 입에서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영란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던 때문이었다.
“그러면 전에 이야기했던, 남조선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는 일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저야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석원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간신히 입을 연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하려는가.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겠다는 전에 그 각오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물론 전혀 변화 없습니다.”
영란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반사적으로 석원의 목소리 역시 올라갔다. 그를 살피던 영란이 미소를 띠고는 석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석원 씨, 반드시 우리 민족의 영웅이 되어야 해. 그리고 또한 나에게도 영웅이 돼주어야 하고. 그래야 나도 석원 씨 덕을 보지.”
말을 마친 영란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순간 잠시 전에 머물렀던 방과 지금 자신이 있는 방을 비교해 보았다. 아울러 잠시 전에 접했던 공포 그리고 지금 영란과 함께 있는 순간 역시 비교해 보았다.
둘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지만 그 뿌리에는 두려움이라는 공통의 요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를 입증이라도 하듯 가운데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어 욕실 문이 열리며 영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용변을 보았는지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한순간 석원이 눈을 감았다. 영란의 배 아랫부분이 하얗게 변해 있던 터였다.
“이리 가까이 와!”
침대 가장 자리에 자리 잡은 영란의 목소리에 방금 전과는 달리 애교가 아닌 힘이 실려 있었다. 어색하게 다가오는 석원의 손을 잡아 이끌어 자신의 배꼽 아래 부분과 석원의 얼굴이 마주하도록 했다.
석원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곳을 바라보는 순간 절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그 부분 자세히 볼 수도 없었지만, 그곳을 뒤덮었던 털을 밀어내자 마냥 하얗게만 느껴졌던 살에 끔찍한 상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란이 그 상태에서 석원이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상반신을 뒤로 젖혔다.
“자세히 살펴봐!”
영란의 주문에 석원이 얼굴을 그곳 가까이 가져갔다. 역겹고 아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상처가 중요한 부분에까지 나 있었다. 고개가 저절로 돌려졌다.
“고개 돌리지 말고 자세하게 살펴봐!”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에 석원이 다시 고개를 바로 하고 찬찬히 그곳을 살펴보았다. 흡사 날카로운 꼬챙이로 찔렀거나 혹은 불에 달군 쇠로 지진 듯했다.
“왜 생긴 상처인지 알겠나!”
북조선 배신 대가는 과연?
의심 눈초리 보내는 그녀
영란이 옷을 입으며 싸늘한 표정을 짓자 순간적으로 잠시 전에 들었던 비명 그리고 호룡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석원도 급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남편이란 놈이 북조선을 배신해서…아이들은 죽고 그나마 나만 이렇게…”
영란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석원이 마치 그 이유를 훤히 알겠다는 듯 측은한 그러나 두려움이 가득 찬 시선으로 응시했다.
“나갈 수 있겠지!”
옷을 다 입은 영란이 담배를 피워 물며 싸늘하게 석원을 주시했다. 그 모습에 석원이 뭐라 제대로 말도 못하고 문을 열고 더듬어 온 길을 따라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마음만 급했지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했다.
간신히 배에서 벗어나자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밖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만경봉호가 흡사 악마의 소굴처럼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남조선에는 뭐 하러 가는데?”
“일종에 여행이지.”
“혹시…”
석원이 간략하게 말을 끝내자 기미코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를 인정하듯 석원이 미소를 보였다.
“가능하면 윤대중 선생도 만나보려고.”
“만날 수 있어?”
“현재로서는 확단할 수 없어. 그러나 한번 가서 가능성을 타진해야지.”
“그래서 관광을 빌미로 남조선에 입국하겠다는 이야기잖아.”
“둘이, 부부로 말이야.”
석원이 부부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자 기미코가 석원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난조 상, 진심으로 나를 아내로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비록 민족적인 문제로 결합하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당신뿐인 거 잘 알고 있잖아.”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오히려 속으로는 내가 더 간절하다고 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기미코가 대답 대신 석원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저만치 앞에 아담한 여관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곳을 바라보던 석원이 기미코의 머리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저녁은.”
“난조 상, 저녁 먹기 전에 우리가 정말 부부 사이인지 확인해봐야 할 듯해."
기미코가 살짝 눈을 흘겼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어떻게?”
“번거롭게 자리를 옮기고 자시고 하지 말고 여관에서 음식을 시켜먹으면서 사랑을 나누도록 하자고.”
“그런데 난조 상. 남조선에는 언제쯤 가려 해.”
“8월 중순경이 어떨까 싶은데.”
순간 기미코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왜 그래?”
“그때쯤이면 휴가철이고. 아울러 그 인간이 휴가 가자 보챌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야!”
석원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안 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야.다만 상황을 보자는 이야기지. 그리고 그때 가서 정 안된다 싶으면 당신만 비자 받아 다녀오면 될 거 아니야.”
“그러면.”
석원이 말하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왜?”
“당신 가지 않으면 나도 안 가려고.”
“난조 상, 비록 내가 함께 남조선에 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항상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거야.”
기미코의 손이 석원의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석원이 흡사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