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8>

“동이씨, 나랑 하기 싫어?”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호빠 선수들에게 돈은 너무 쉬운 것이었다
명자씨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가슴과 따로 노는 몸

화장실에는 아까 했던 토악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단 그것부터 씻어 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그냥 잠자리를 해야 하나? 아니면 어떤 핑계를 대지? 그렇다고 이런 순간에 무슨 핑계를 댈 수 있단 말이야?
샤워를 하기 위해 팬티를 벗는데 안에서 수표가 나왔다. 어젯밤 받은 팁이었다. 아, 드디어 어젯밤의 일들이 조금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고 진 사람이 벌칙을 받곤 했었다. 얼음을 입에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상대 파트너와 주고받기, 몸의 일부에 마요네즈를 발라놓고 빨아먹기, 몸속에 숨겨놓은 물건 찾기…. 손에 쥐어져 있는 수표들은 모두 그런 벌칙들의 대가였다. 순간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돈이란 게 이런 건가? 너무 쉽게 벌어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것,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호빠 선수들에게 돈은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오늘 번 것을 오늘 다 써도 상관없다. 내일 출근하면 또다시 수십만원을 빵빵하게 지갑에 채울 수 있으니까. 푼돈만이 아니다. 스폰서 하나 제대로 잡으면 최소 1억의 전세집에 외제차 정도는 기본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스폰을 잡을까’에 골몰한다. 그들에게는 돈이 곧 행복이었고, 그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공사’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큰 스폰서가 생기면, 작은 스폰서는 어김없이 내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럴 때마다 여자들은 더욱 더 선수들에게 매달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빚을 내서 선수들에게 갖다 바치고, 선수들은 그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묘한 것은 그 이후의 전개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큰 스폰서를 물어서 ‘들어앉는다’고 해보자. 여기에서 들어앉는 건 함께 동거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에게는 이것이 공사의 완성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공사의 끝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함께 살다보면 보기 싫은 모습도 보게 되고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환상도 깨지게 마련이다. 왠지 무능력해보이기도 하고 늘 함께 있으니 예전에 보았던 매력도 없어진다. 그때부터 여자의 눈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호빠 선수들이 아닌가. 그러면 얼마 가지 않아 그 선수는 버림을 받는다. 그렇게 버림받은 선수는 다시 호빠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호빠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왕자’가 되어 있는 선수들이 일반 직장인의 한 달 월급으로는 절대로 성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시원한 샤워물줄기가 그나마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버림받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공사를 칠 것인가, 단물을 빼먹힐 것인가?
욕실에서 나갔다. 명자씨가 길게 담배를 내뿜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자가 무섭다는 느낌…. 남들이 들으면 우스울지 모르지만, 공사를 앞둔 나의 상황으로서는 정말로 옷을 벗고 누워있는 명자씨의 모습이 무서웠다.

■ 돈 냄새 맡은 선수들
그런데 역시 명자씨는 프로였다.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이씨,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동이씨, 나 직설적인 성격인 거 알죠? 그냥 물어볼게요.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호빠를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을지도 모른다. 순간 동료 선수인 ‘훈이’의 말이 생각났다. 여자들이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건 선수들의 ‘간’을 보기 위해서라고. 그럴 때는 필요한 게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싼티가 나지 않고 더 큰 공사를 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명자씨가 계속해서 물어봤다.
“고급빌라? 외제차? 뭐가 필요해요?”
“어, 전 필요한 게 없는데요.”
명자씨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사실 명자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선수들은 부지기수다. 그녀의 돈 냄새를 맡은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에게 공사를 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런 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선수들은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안달인데… 동이씨는 안 그러네… 생각보다 순진하네! 호호”
명자씨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남자의 욕망을 자극시킨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게 맞는 일인지 더 의심이 든다. 지금 이 한 번의 잠자리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은영씨의 빚도 못 갚는 무능력한 남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때 또다시 ‘훈이’라는 녀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녀석은 한 번의 잠자리로 여지없이 ‘지명’이 짤리고 공사가 물 건너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잠자리를 너무 일찍 끝낸 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일’을 마친 후 손님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그냥 앞으로는 친구로 지내자.”
훈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위 도중에 자세를 자주 바꿨다고, ‘그곳’에 인테리어를 너무 많이 했다고 짤린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했다. 심지어 입 냄새가 많이 난다고 구박받고 더 이상 지명을 해주지 않는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의 잠자리가 오히려 공사를 떠나서 영원히 지명의 자리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눈을 감고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있는 명자씨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했다가는 나도 그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 순간 최후의 방법이 떠올랐다. 입술이 거의 포개어질 무렵, 그래서 격정적인 순간이 다가올 그 즈음에 내가 입을 뗐다.
“명자씨… 전 명자씨를 사랑해요. 저에겐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렇게 소중한 순간을 이런 싸구려 모텔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면, 이제 앞으로 저는 명자씨를 함부로 대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런 관계가 함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에게 소중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사이로 발전해나갔으면 해요.”
일단 이 말은 명자씨에게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불붙은 여자의 욕망은 그리 쉽사리 잠재울 수 없는 듯 했다. 명자씨는 ‘그래도 난 동이씨가 갖고 싶어’라며 더욱 거세게 몸을 밀착해봤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그녀가 갑자기 쏘아붙였다.
“동이씨, 나랑 하기 싫어?”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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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